다마모에 - 혼이여 타올라라!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고 나서 2007년에 같은 이름으로 영화가 개봉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년, 노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최근에 읽은 <도피행>을 제외하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한 소설을 접한 느낌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어여쁜 그리고 은은한 핑크빛 표지에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를 생각했던 나는 내 상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독한 이야기의 전개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렇다 할 기쁜 일도, 또 가슴을 옥죄는 괴로운 일도 없이 매일을 똑같은 일상으로 보내고 있는 여인, 세키구치 도시코. 그녀에게 어느 날 남편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생기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남편은 병을 앓다 죽은 것도 아니고 샤워 중 심장마비라는 다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남편을 보내는 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그녀는 이제 예순을 앞두고 앞으로의 막막함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미망인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푹푹 꺼지는 한숨과 앞으로의 막막함 뿐이었다. 남편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지라, 순식간에 의지할 곳이 사라지자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진 듯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는 8년 전 미국으로 떠난 아들과 서른한 살 된 딸이 있다. 8년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러 온 아들은 인정머리 없게도 아버지의 유산 상속에만 관심이 있다. 아들도 딸도 어머니의 안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인다. 자기 자신의 생활과 감정을 추스르기에만 급급한 것이다. 그런 점이 더욱 홀로 된 도시코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자식들의 냉담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엄마에게 저런 무뚝뚝하고 쌀쌀맞은 딸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얼마나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쓸쓸한 단독주택 속에서 도시코는 남편을 빨리 발견하지 못했다는 데에 죄책감만을 느낀다. 그러나 미처 해지하지 못한 남편의 핸드폰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그녀의 앞으로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는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순간, 도시코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억눌렀다면 억눌렀던 자신의 자아를 조금씩 끄집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방에게 신경이 쓰일 일이라면 몸서리치며 삼갔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격해지기도 한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분노라는 것이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어머니이기에 앞서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여인이었던 것이다. 도시코는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생활한다. 어쩌면 그동안 갖지 못했던 제 2의 청춘을 맞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에게서 그리고 자식들에게서 받은 배신감과 무시를 도시코는 밖에서 노신사들의 신뢰와 친구들의 달램으로써 위안을 삼는다.

  진정으로 홀로라고 느낄 때 얼마나 외로울지는 <다마모에>의 도시코가 되어보지 않는 한 어림잡은 짐작 말고는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평범한, 너무 평범하여 집안에서 거의 존재감마저 느껴지지 않았던 도시코. 그녀는 남편에게 있어 집 안에 있는 ‘어떤 가구’에 불과했다. 별 신경은 안 쓰이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가구. 한 번 사 두면 어지간해서는 쉽게 바꾸어지지 않는 가구 말이다.

  참 씁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태껏 가족만을 위해 살고 희생하며 모든 것을 참아왔는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았을 때 자신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다.

  이 책 <다마모에>라는 제목은 신조어로 ‘육체는 점점 쇠약해져 가지만 영혼은 갈수록 더욱 불타오른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도시코의 이야기는 이 책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앞으로 그녀의 인생을 그녀만의 것으로 더욱 가꾸어나갈 테고 언젠가는 나머지 인생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를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쓸쓸한 마음이 몰려들었다.

       집에 있으면서 딸이나 아들이 있는 것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된 영문일까.

       이것이 바로 혼자 산다는 것이다.

       도시코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전기밥솥의 전원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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