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있는 침대
김경원 지음 / 문학의문학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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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 와인 빛이 감도는 불그스름한 표지와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요즘은 ‘와인’이 ‘대세’다. 와인 전문가라고 하면 한 번쯤 더 돌아보게 되고, 일부러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 와인에 대한 상식이 많은 사람은 어디서나 환영을 받는다. 종종 식사에 곁들여 가볍게 마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와인과 침대,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리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와인이 있는 침대, 낭만적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기사를 쓰는 프리랜서 다현. 자신의 몸만을 원하는 유부남과의 의미 없는 만남을 반복하다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어느 날 항공관제사라는 직업을 인터뷰하다가 연우를 만나게 되고, 처음부터 인연이었을까. 그들은 연인이 된다. ‘와인 전문가’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연우는 와인 매니아다. 오늘 같은 날은 이 와인, 당신과 함께 있을 때는 다른 와인, 지금 같은 기분을 느낄 때는 또 다른 와인을 마시고 추천해주는 연우에게 나, 다현은 자석의 반대 극처럼 끌리고 만다.

  시종일관 다현은 와인에 해박한 그, 연우를 자신의 ‘와인’이라 칭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와인과 찰떡궁합인 ‘치즈’라 여긴다. 와인과 치즈처럼 그 둘의 현실에서도 그런 결합을 이룰 수 있을까.

  

  ‘와인’과 ‘치즈’는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우선 나, 다현은 어려서 사촌 오빠로부터 성적인 상처를 입는다. 어렸을 때의 그 기억은 다현으로 하여금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불현듯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 연우. 그에게는 배다른 여동생이 있었다. 이쯤 되면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배다른 여동생과의 관계에서 그 역시 상처를 받은 영혼이었다. 그런 상처들은 연우가 자꾸만 현실에서 ‘도피’하게끔 만들어버린다. 어쩌면 연우는 상처를 잊기 위해 와인에 열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렇게 상처를 담고 살아온 두 영혼은 서로를 감싸고 어루만지며 하나가 되어간다.

  다현은 오늘도 와인이 있는 침대 맡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둘의 상처가 과연 서로에 의해 완치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더 이상의 기다림이 없는 사랑의 날들이 펼쳐지길 바라본다.




  이 책은 ‘성’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이었고 노골적이기도 했다. <와인이 있는 침대>라는 로맨틱한 제목을 보고 기대했던 바와는 조금 방향이 달라 기대치에 이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솔직히 내게는 이건 좀 너무 소설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혹은 내 주위에서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상상으로도 들지 않았다.

  ‘와인’이 소개해주는 와인들은 하나같이 그 의미가 인상적이었다. 물론 책을 덮은 지금, 어느 하나 또렷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된 와인은 없지만, 문득 와인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날엔, <와인이 있는 침대>가 스쳐지나갈 것 같다.
















     여행이라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침수작용인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천천히 마음을,

     그리고 영혼을 침식시키는 기억의 입자들.

     마치 흐르는 모래처럼 아주 천천히 흘러서

     우리들 영혼에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아니면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 불현듯 빛의 알맹이처럼

     추억이란 서랍 속에서 반짝거리는 보석이 되어 나타날지도 모른다.

     탄소가 엄청난 압력을 받은 뒤에 다이아몬드가 되어 나타나는 것처럼

     시간이라는 무게에 침적되어

     추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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