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추적자 ㅣ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처음 책을 본 느낌은 ‘와, 두껍다!’였다. 그러면서도 그 두꺼운 책 속에 얼마나 스릴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방송사 생활을 접고 소설가의 길을 걷기로 한 리 차일드의 데뷔작이 <추적자>라고 한다. 그리고 그가 쓴 이 <추적자>는 상을 휩쓸었으며, 가장 성공적인 데뷔작이라는 평을 받기에 이르렀다.

  방랑자 ‘잭 리처’.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방랑의 길을 걷기 시작한 잭 리처는 우연히 조용한 마을, ‘마그레이브’에 들르게 된다. 하나뿐인 형, 조 리처의 편지글에서 찾은 별 신기할 것도 없는 한 줄의 문장 때문이다. 블라인드 블레이크란 재즈 가수가 그곳에서 죽었다는 단순한 문장, 그러나 잭 리처의 우연은 단순히 우연에 끝나지 않고 잭을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경찰서에까지 끌려가게 만들었다.

  살인사건은 커녕 경찰이 나서야할 만한 사건조차 일어나지 않는 극도로 조용한 마을에서 며칠 사이에 몇 구의 시체가 발견되고, 잭은 처음에 발견된 시체가 바로 형의 것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드디어 사건은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형과 연락하지 못했던 잭은 잠시 어렸을 때의 형과의 추억에 잠기며 당연하다는 듯 형의 복수를 다짐한다. 그것은 잭에게 그리고 그의 형, 조에게 어려서부터 습관화되어 있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경찰서에 잡혀왔을 때 자신을 심문했던 ‘핀레이’ 형사과장과,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그리고 이제는 사랑을 느끼게 된 ‘로스코’ 경찰과 함께 그들은 최고의 한 팀을 이루어 사건을 조사한다. 형 조가 남긴 단서를 가지고 그들은 쫓고 쫓기는 추격을 시작한다. 조용한 마을에서는 그동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계획이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액션과 숨겨진 배후 세력까지. 마치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기분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잭 리커라는 캐릭터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방랑을 꿈꾸는 남자. 오랜 군대 생활로 다져진 민감하면서도 강한 신체와 예리한 분석능력, 거기에 치밀함까지. 두려움 앞에서도 당당히 맞설 줄 아는 용기. 이런 그의 추리능력과 상황 판단능력, 문제 해결능력은 여느 주인공보다도 분명 뛰어났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우선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해낼 수 있는 그 능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항상 침착하면서도 또 정확하게 모든 것을 해내는 그는 현대판 람보 같았다.

 ‘잭 리처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리 차일드의 이 이야기는 열두 편이나 연재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500페이지가 넘는 꽤 긴 이야기였지만, 지루하다거나 버겁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주인공이 사건의 중심부로, 진실을 향해 파고들어가는 과정을 숨죽이며 함께 지켜볼 뿐이었다. 잭 리처, 그는 뛰어난 퍼즐 맞추기의 대가였다. 만약 그의 형이 죽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들 형제가 함께였다면 둘은 환상의 콤비가 되어 천하무적이 되었을 텐데. 형과의 몇 안 되는 추억에 잠겼던 잭의 시간은 ‘아. 그도 인간이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해주었다. 차마 깨닫지 못했던 형에 대한 사랑. 이유 없는, 아니 이유가 필요 없는 형제애를 색다른 방식으로 보여준 것 같다. 조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잭 리처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방랑자는 낯선 이의 친절에 기대는 법이다.

     특별한 것이나 물질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마음을 의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