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화 -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뜻밖의 조선사 이야기
배상열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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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 읽어봤던 역사책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비화’>. 숨길 비와 말씀 화, ‘세상에 드러나지 아니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책은 제목을 제대로 표현해 주고 있었다. 책의 서문에서부터 저자는 역사의 잘못된 재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다. 제멋대로인 역사물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서 말이다. 평소에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 편이라, 사극 드라마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잘은 모르겠지만, 작은 소재부터 심지어는 큰 소재에 이르기까지 저자에 의하면 잘못된 것들 투성이었다. 드라마 속 작은 ‘촛불’ 하나까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 시대의 문화적인, 시대적인 배경들을 근거로 들어가며 일침을 가하고 있었다. 겨우 서문을 읽었을 뿐인데, 앞으로 책에서 전개될 내용들이 몹시 궁금해졌고, 쉽게 가볍게 읽힐 수 없을 것 같았다.




  크게 3개의 주제로 <조선비화>는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사건에 대한 비화, 인물에 대한 비화, 세태에 대한 비화로 말이다. 이를 골자로 해서 20여 가지의 비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어느 것 하나 비화가 아닌 것이 없었다.

  사건비화에서는 왕의 암살사건이나 신문고에 얽힌 이야기들, 그리고 반역 등의 사건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드라마‘이산’으로도 친숙한 정조가 감쌌다던 살인범 이야기는 내 마음에 동요의 물결을 일으켰다. 김은애라는 양가집 여인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녀의 집에 구걸 왔다가 거절당한 안조이가 앙심을 품고 자신의 인척과 김은애가 간통했다는 소문을 뿌린다. 조선의 시대상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런 소문이 나고 나면 소문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결혼의 문도 닫히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의 수모를 견디다 못한 김은애는 안조이를 난자해 죽였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져야 마땅한데, 정조는 오히려 김은애를 칭찬해주고 방면하기에 이른다. 왜 그랬을까?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정조가 자라온 환경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모험’이라는 키워드가 주축이 되는데, 바로 정조의 부친인 사도세자가 노론의 모함을 받아 죽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뒤주에 갇혀서 말이다. 김은애는 안조이의 모함으로 인해 그와 같은 수모를 당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한이 맺혔던 정조는 그런 점에 집중하여 모함 당한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었다.

  인물비화는 인물 중심으로 벌어진 일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신윤복, 섹스 심벌인 유감동과 어우동, 수양대군, 스파이와 배반자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이라는 그림은 아마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것 같다. 이 그림에서 저자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두 명의 ‘중’이었다. <단오풍정> 속의 두 중은 목욕하는 기생을 흐뭇한 표정으로 훔쳐보고 있다. 저자는 이들의 차림새나 얼굴 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시기에 불교는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다. 나라의 온갖 궂은일에는 다 끌려 다녀야 했지만, 좋은 옷이나 넉넉한 음식 등은 취하기가 불가능했다. 중들은 그런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민가에서 멀어져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이 시기에 중들이 민가에 내려와 기생들을 훔쳐보고 있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었다. 게다가 좋은 옷을 입지도 못할뿐더러 배불리 먹지도 못했던 그들의 얼굴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때깔’좋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신윤복을 포함한 조선시대 사람들이 불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론해내었다. <단오풍정>이 널리 알려진 그림이기는 하지만, 글과 함께 책 속에 실렸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태비화를 다룬 장에서는 왕족들의 간음이나 과거급제와 관련된 폐단들, 병영비리와 학력위조 등을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의 과거급제라고 하면 정말 가문의 영광일 만큼 대단한 경사였다. 그러나 어느 조직에나 신입이 거쳐 가야 할 통과의례가 있듯이, 과거에 급제한 이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선배’들에게 많은 비용을 들여 일명 접대도 해야 했고, 그들이 시키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모든 모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책에 나열되는 글만으로도 그 실상이 짐작이 갔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라면 나라를 대표할 수 있고 나라의 모범이 되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서 이런 폐단을 보게 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종종 이슈화되는 문제들이 바로 병역비리다. 그리고 최근에 수면 위로 오른 학력위조의 문제도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 성행했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시대에 따라서 구체적인 모습들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역사는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 <실록>들을 제시하여 그 근거로 삼았다. 역사 기록을 함께 확인하면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보다 신뢰할 수 있었다. 마치 어린이에게 “옛날 옛적에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단다.”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을 읽고 있다는 거부감이 일지 않아서 좋았다.

  역사는 교과서에 나온 것만이 다가 아님을 이 책 <조선비화>를 통해서 또 한 번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직도 역사를 배우는 길을 걷는 것은 멀고도 멀다.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선의 역사, 바로 그 새로운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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