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삼킨 책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신혜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조용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덮는다. 책이 삼켜버린 세상을 조심히 바라본다. 순식간에 책만 남고 모든 게 사라진다. 다시 책을 열고 차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책 밖으로 나오는 세상을 확인하고는 비로소 숨을 돌린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몰입을 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얇은 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책을 읽어나갔다. 마지막 숨을 돌리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세상을 삼킨 책>은 나와 함께 그 시간까지 삼켜버렸다.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의 예술 스릴러 마지막 작품이 <세상을 삼킨 책>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을 나는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미술, 문학, 음악과 춤을 다루었다는 나머지 세 권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책은 철학과 사상, 역사 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책 속에서 이야기를, 사건을 이끌어갈 니콜라이 뢰쉬라웁이 그의 손녀딸 테레사를 데리고 기차여행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 시작부터 참 불안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 밖의 아찔한 풍경의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앞으로 주인공에게 얼마나 복잡하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건의 전개는 누가 어떤 결말을 예상했던지 간에, 나의, 그들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을 것이다.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한 니콜라이는 시골 볼커스도르프로 향해 그곳 수녀원의 막달레나를 찾아가나 문전에서 거절당하고 그럴수록 점점 기억의 문틈에서 흘러나오는 막달레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게 드디어 과거의 문이 열린다, 그곳에는 스물한 살, 젊은 니콜라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뜻이 있었지만 선동적인 발언이었다는 이유로 쫓겨나다시피 간 뉘른베르크에서 니콜라이는 의사 생활을 한다. 어느 날, 한 소녀가 그를 찾아와 백작이 위험하다며 그를 성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알도르프 백작은 이미 죽은 상태였고 비극적인 그 가문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알도르프 가문의 약사인 친레히너와 사인을 추측해보며 밤을 보낸다. 이를 시작으로 니콜라이는 거대한 음모와 어둠 속의 소용돌이에 빠져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에 노출된다. 그러던 와중에 ‘막달레나 라너’라는 소녀를 만나 묘한 감정을 느끼고 그녀와 행보를 같이 하기 시작한다. 이 사건은 <세상을 삼킨 책>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질병’을 가장한 사건은 철학과 사상과 생각과 만난다. 그리고 엉켜 있는 실타래의 모습으로 반기고 있었다. 그 실타래를 니콜라이는 막달레나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간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목숨을 건 위험도 감수해야 했으니 말이다.

 

  이야기의 진행은 아주 빠른 듯하면서도 느리게 전개된다. 처음에는 질병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야기는 어느 새 <순수이성비판>에까지 닿아 있었다.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거부했던 그 시대의 변화를 두려워하던 귀족층과의 마찰 또한 볼 수 있었다. <세상을 삼킨 책>은 세 가지 제목을 갖고 있었다. “하늘이여, 제 눈이 보는 것을 제 마음이 믿지 않도록 저를 보호하여 주소서!”와 “네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라!”, 그리고 “절대로 세상 밖에 나와서는 안 되는 생각들도 있어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들을 다시 보면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철학이라고 해서 사상이라고 해서 어렵게만 생각하고 볼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시간도 갖고 그 시대의 상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뭔가 무거운 것이 가슴 속에 ‘쿵’하고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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