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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책을 읽은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실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깐 머리 좀 식혀야지 하고 펼쳐든 책이었는데, 이 책을 뒤로 하고서는 도저히 집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쭉 읽어버렸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것은 더 읽을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섹스 앤 더 시티’처럼 매일매일, 아니 매일이 힘들다면 며칠 간격을 두더라도 연재되는 소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서른한 살, (A) 패션지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서정이다. 책의 서두에서 묘사되는 그녀의 직업은 다소 고되 보이기는 했지만,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틀에 짜인 근무 생활이 아닌, 자유로운 -이걸 자유롭다고 느낀 내가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영혼처럼 보였다. 웬만한 강단 없이는 버티기 힘든 패션계에서 그녀는 그녀만의 방법으로 생활해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잠깐은 그녀를 동경하는 순간까지 만났다. 듣기만 해도 머릿속에 갖고 싶은 리스트가 순식간에 그려지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과 현실적으로 언급되는 연예인 이름들은 책을 읽는 흥미를 더해주었다.
패션지 8년차 기자가 그려가는 일상과 뜻밖의 사랑이 책 속에서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진부한 사랑과 과거의 트라우마까지도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화해>에 관한 성장소설’이라고 말했다. 요약하자면 과거와 현재의, 사치와 기부의 그것 등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상당히 많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은 환상을 그려주고 있었다. 55사이즈를 입고도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빚을 내서라도 명품을 가져야 하는, 끊임없이 부풀어가는 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하는. 이 책은 읽는 내내 나를 정신없이 집중하게 만들었고, 읽고 난 후에는 내 감정 속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진부하지만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사랑은, 따스한 봄날을 더욱 따스하게 만들어주었다.
서른한 살의 그녀는, 아직도 성장 중이다. 꼬마였을 때, 언니를 잃은 성수대교에 대한 끔찍한 기억으로 아직까지 성수대교를 큰 소리의 음악 없이는 건너지 못하는 그녀는, 트라우마와 함께 과거에 묻어버렸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도 하나둘씩 꺼내어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오해도 풀려가고 자라는 것이다. 과연, 사랑이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보듬어주는 것일까? 의학적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말이다. 아직 내가 책 속의 그녀와 동갑이 되기까지는 한참이 남았지만, 진행되는 이야기와 저자의 문체는 나이라는 갭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전혀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1억 원의 고료’라는 충격적인 구문에 깜짝 놀라 ‘어디, 얼마나 잘 썼나, 읽어보자!’ 했던 마음은 그녀의 발랄하고 신선한 글에 묻혀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째서......
이다지도 쉽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오해하는 걸까.
이 세상엔 지구 둘레만큼의 오해와
한 줄도 안 되는 이해만 존재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