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시원한 파랑이 눈길을 끌었다. 표지 그림만 보는데도 가슴 속까지 시원함이 느껴졌다. 이런 게 바로 그림의 힘인가?

 베스파가 뭔지도 모른 채 책장을 열었고, 안에 만화가 있을 줄은 더군다나 생각도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주위에서 초등학생이라면 꼭 읽었어야 했던 어떤 통과의례 같았던 책 “먼 나라 이웃나라”가 있었다. 만화로 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 책을 마지막으로 그 뒤, 만화책은 읽어본 기억이 없다. 그만큼 나는 만화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하게 된 이유가 뚜렷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싫어하는 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만화책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려고 펼치는 순간 만화책임을 알고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톰’과 ‘제리’가 함께 스쿠터에 올라있는 그림을 보고 나도 모르게 책을 읽어나가고 있었다.

 

 저자 박형동은, 다섯 가지 스쿠터로 다섯 가지 이야기를 만들었고, 만화를 완성했다. 그 스쿠터의 이름들 중 하나가 바로 베스파였다. 이탈리아어로 말벌이라는 뜻인데, 디자인이 말벌이나 눈물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란다. 다섯 가지 이야기는 각각 <톰과 제리의 사랑>, <스노우 라이딩>, <밍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소녀>, <그랜드마마 피시>, <바이바이 베스파>였다. 각각 다른 색깔의 이야기로 되어 있었는데, 제목만으로는 사실 줄거리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졌다. 거친 듯하면서도 깨끗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었다. 어두운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담고 있는 듯한 그림이었다. 여느 만화책들처럼 말풍선에 글이 가득하지는 않았지만, 짤막짤막한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 속에는 많은 말과 생각들이 담겨 있었다.

 톰과 첫 경험을 한 제리의 아련한 추억 -사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이런 전개를 맞이하고 당황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나머지 이야기도 이럴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순간 헷갈려서 내 짤막한 상식을 의심하며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했다. 질문은 “정자가 눈에 보이나요?”- , 눈이 오면 떠오르던 고양이와 사랑하던 여인, 어른이 된 소녀 밍키, 할머니의 품이 그리운, 이제는 커버린 아이, 어른이 되기 싫어 끈을 놓지 않던 소년의 이야기.

 저자의 그림은 정말 독특했고, 매력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그림에 중독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상상력 또한 엉뚱하면서도 기발했다. 인간과 동물을 아우르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이들 다섯 가지 이야기는 모두 어른이 되지 않으려는, 그러나 이미 어른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는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영혼들의 이야기. 왜 그렇게 끈을 놓기 싫어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학창시절에는 빨리 20대가 되고 싶었다. 20대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동경했었다. 막상 20대가 되고 나니, 20대만이 누릴 수 있는 그 자유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랐고, 그리고 그 자유는 생각보다 무거운 것이었다. 물론 아직, 내가 완벽한 어른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섯 가지 이야기 속에 담긴 주인공들이 바로 가슴 속 깊이 있던 내 마음을 끄집어내 준 것 같아 공감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도 그 끈을 놓기 싫은 건 아닐까 모르겠다. 나도 그 경계에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그럼 또 올게.

     뭔가 딴 게 돼서 말이야.

     어른은 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