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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오은숙 그림 / 별이온(파인트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누군가, 나를 위해 책을 써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를 위해 동화를 지어주고,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함께 공감하고 재미를 느낀다면. 나는 실제의 앨리스가 아니라서, 어떤 기분인지는 짐작도 못할 테지만,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인 것 같다. 새삼 그 때의 앨리스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부러운 마음을 갖고서 하드커버를 넘겨본다. 그 속에는 보는 순간 마음을 사로잡는 예쁜, 그리고 환상적인 일러스트가 펼쳐진다. 당장에라도 그 속으로 빠져들고 싶게 만드는 그림들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71991155361649.jpg)
앨리스는 말하는 토끼를 따라간다. 그곳에서 작은 병에 든 물을 마신 앨리스의 몸은 아주 작아져버린다. 그 뒤에 들어간 작은 정원에서 케이크를 먹고는 다시 어마어마하게 길어진다. 부채질을 하면 다시 작아지기도 하고, 버섯을 먹으니 목이 길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앨리스는 말도 안 되는 신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또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 휘말리면서 모험 아닌 모험을 하게 된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은 기억은 나지만,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을 거라는 점이다. 솔직히 이번에 다시 접한 앨리스 이야기는 좀 말이 안 된다. 내가 너무 자라버려서 이제는 꼬마 앨리스와 소통이 불가능해진 것일까? 갑자기 우울함이 내 속에서 번져 나오는 것만 같다. 씁쓸한 일이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여러 모험을 통해 신기한 일들을 겪게 되지만, 그것 못지않게 나를 당황시킨 것은 어마어마한 말장난들이었다. 책 속에서 등장한 말장난들 모두가 완벽하게 이해되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영어공부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부분이기도 했다. 만약 이 책을 지금 원서로 읽고 있다면, 나는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어디선가 슬며시 나를 향한 조소가 흐르는 것 같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커가면서도 자꾸 읽게 되는 이유는 뭘까? 동화 속에는 동화 이상의 그 무언가가 들어있는 게 분명하다. 어린이에게는 꿈과 환상을 심어 주지만, 어린이의 알을 깨고 나온 사람들에도 동화는 또 다른 무엇을 쥐어준다. 그것은 동화를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게는 순수와 명랑, 그 속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음, 재미있군, 아이들한테 좋은 동화겠어.’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내게는 아무런 감성을 주지 않았던, 그냥 스쳐지나간 책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고서 그 속으로 동화될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동시에, 순수한 마음과 영혼을 바라는 감성을 갖게 된다면 거기에 이 책을 읽은 새로운 의의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도 있지만, 앨리스는 내게 그런 것들을 주었다. 순수를 잃지 않고 사는 내가 되기 위해 언젠가 또 다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야겠다.
“길 좀 가르쳐 줄래?
여기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
“그야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에 달렸지.”
“난 어디든 상관없어.”
“그럼 네가 가고 싶은 길로 가렴.
계속 걷다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