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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 베케이션
아오야마 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새드 베케이션>
이 작품이 영화로도 개봉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런 제목의 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서점에서 우연히, ‘신간 일본 소설’ 코너를 그냥 지나치려는데, 묘하면서도 무거워 보이는 표지가 내 눈길을 끌었다. 한 번 읽어 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마디로 계획에 없던 책을 사고 말았다. 예전에는 서점에 가면 그냥 표지가 예쁘거나, 제목이 맘에 드는 것 위주로 책을 골랐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새로 나온 책들이 있는지도 미리 좀 보고, 베스트셀러도 보고,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들은 어떤 건가도 좀 보고나서 서점엘 가 그런 책 위주로 사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처음 보는 책을 집어 드는 낯선 기분이 참 묘하게 좋았다.
사진 속의 평범하면서도 묘한 분위기와, 제목의 슬프면서도 묵직한 느낌에, 과연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일본 소설이라면,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책이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안 읽으려고 했었다. 나름대로 내 정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런데 요즘 들어, 조금씩 일본 소설에 마음이 열리고 있는 것 같다.
엄마와 아빠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행복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어떤 이유로건 헤어진 가족의 마음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걸까?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더라도 그들만큼의 상처를 안을 수는 없으니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할 것 같다.
이 책은 어렸을 때 집을 나간, 엄마를 향해 끝없는 복수심을 키우며 자라온 시라이시 겐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젊었을 때 남편의 외도를 참지 못하고 아이를 놓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치요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운송회사에 모여 일하고 있는 부랑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엔, 너무 복잡하고 어두운 사건들이 무질서하게 나열되어, 그것을 회상하는 겐지도, 그리고 그 회상을 읽고 있는 나도 힘이 들었다. 겐지는 밑도 끝도 없이, 과거를 돌아본다. 그러다 겨우 현재로 돌아오고, 사에코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나서야 겨우 <새드 베케이션>의 이야기도 흐름이 잡힌다. 핏줄에 대한 상처를 갖고 있는 겐지는, 피가 섞이지 않은 장애아 유리와 중국인 고아 아츈에게 애정을 느끼고 살갑게는 아니더라도 따뜻하게 대해준다. 그러면서 겐지는 그만의 가정을 꾸려나간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하는 여인 사에코까지 함께 말이다.
세상에 우연은 정말 없는 걸까. 모두 인연이기 때문에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는 걸까. 그토록 증오하던 어머니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둘은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본다. 너무나 잘 살고 있는 어머니, 치요코. 그녀를 보고 겐지는 더없는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어머니의 거의 강제적인 권유로 겐지의 식구들과 치요코의 식구들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틈틈이 복수를 엿보는 겐지에게 마침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것은 결국 자기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도 같았다. 이야기는 다시 복잡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말 그대로 인연의 연쇄였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어머니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이냔 말이다. 어머니는 아픔 속에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고, 모두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웃어 보이고 다시 일어선다.
<새드 베케이션>을 통해 작가는 모자간의 갈등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읽어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으면서도 곳곳에 퍼져 있는 모성이라는 것. 과연 이 소설의 결말은 용서일까, 아니면 다시 시작되는 싸움일까. 끝없는 의문을 남기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과연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추측일 뿐이지만, 나도 ‘어머니’가 되면 정답을 찾을 수 있겠지.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누구나가 원래부터 고아이고,
그 뒤의 생은 모조리 평생
단 한 번의 만남인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부모나 자식에게조차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