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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지난학기 수업시간에 ‘바리공주’무가를 배웠다. 일곱 공주중에 막내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은커녕 환영조차 받지 못한 채 함 속에 버려진 바리공주. 버려진 것도 억울한데 15년이 지난 후에야 아비의 병 치료를 위해 부모의 부름을 받고 생명수를 찾아 길을 떠나 9년 동안 고생하는 효녀 바리공주. 전형적인 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리데기>라는 제목을 봤을 때, 최인훈의 구운몽이 문득 떠올랐고, 바리공주 이야기의 패러디인가?? 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는 권정생 작가의 <몽실 언니>가 계속 생각났다.
주인공 바리. 바리 역시 바리공주처럼 일곱 딸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고 역시 버림받게 된다. 바리에게도 비극적인 삶이 펼쳐질 것을 출생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강아지 칠성이 덕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바리는 할머니의 능력(?)을 이어받아 영혼들과, 그리고 흰둥이와도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김일성의 죽음은 북한에서 태어난 바리의 인생에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버지와의 이별과 함께, 다른 식구들과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바리가 가장 의지하고 기댔던 할머니의 죽음도 겪게 되고,.
작가는 이런 이별과 비극들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가슴 아팠던 수난을 대신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분단을 겪었던 우리 민족의 경험, 그 자체를 넘어선 어떤 다른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끊임없는 이별과 떠돌아다녀야 하는 삶. 정착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삶. 바리공주가 아버지를 위한 생명수를 찾기 위해 9년의 고통을 견뎌냈듯이. <바리데기>의 주인공 바리 또한 끊임없는 유랑을 겪고 큰 바다를 건너 런던에까지 가게 된다. 지치고 고될 때마다 바리의 꿈에는 칠성이와 할머니가 나타나 버팀목이 되어주고 나아갈 길을 밝혀준다.
그럼 바리가 찾던 생명수는 무엇일까.
사람의 마음도 밥과 같아서
오래가면 쉬게 마련이라
자꾸 폐를 끼치면
나중에 정말 도움이 긴요할 때는
냉정하게 돌아선다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 소설은 책 두께에 비해 정말 빨리 읽어나갈 수 있었다. 술술 넘어가는 책장들이 아쉬울 정도로.. 구수한 바리 할머니의 사투리도 약방의 감초처럼 따스함을 자아내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리에게 바리공주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은 이렇게 따뜻한 분이신가보다.
그리고 타국에서 만난 할아버지. 달관한 모습의 할아버지는 바리가 지칠 때마다 끊임없이 희망을 심어준다. 그리고 동시에 이 책을 읽은 내게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아.
사람의 인연은 하늘에서 미리 짜놓은 줄에
서로 연결되고 엮이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미리 짜여진 모양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