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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만 보고 내용이 참 궁금했던 책이다. 표지의 짤막한 소개에는 “쉰네 살의 수위 아줌마 르네와 열두 살 천재소녀 팔로마”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1위”등등 충분히 시선을 끌만한 것이었다.
책을 열자마자, 다른 외국소설들과는 달리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작가의 편지글이 담겨 있었다. 작가의 남다른 애정을 느끼고서 왠지 이 책, 그리고 이 독자에게 더 호감이 생겼다. 그런 호감과 믿음을 갖고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몇 장 읽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마르크스 얘기가 나오지를 않나, 철학 얘기들이 나오지를 않나, 책을 잘못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산돈이 아까우니까 끝까지나 우선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어나갔다.
한 아이, 그러니까 팔로마의 철학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열두 살 소녀 팔로마와 같은 아파트에서 수위로 일하고 있는 르네, 그리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어른들은 겉으로는 가끔,
자기들 삶의 참담함에 대해 차분히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곤 이해도 하지 못한 채 통탄하고,
마치 늘 같은 창문에 부딪치는 파리처럼 행동하고,
고통 받고 쇠약해지고 의기소침해지고,
그들이 가고 싶지 않았던 곳으로 그들을 이끌었던
톱니바퀴에 대해 생각한다.
아주 똑똑한 자들은 심지어 이것으로 종교를 만든다.
아, 부르주아의 경멸스런 허망함이여!
-이게 열두 살 소녀의 머릿속에서 가능한 생각이라니.
나는 열두 살, 팔로마의 나이였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수위 아줌마 르네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유식함(?)을 철저하게 숨기면서 어려운 책들을 모조리 섭렵하고, 우아함과 품격을 지닌 사람, 르네 아줌마. 사소하다면 사소할 뿐인 수위의 일상들을 르네 아줌마만의 박식함으로 분석해내는 게 탄성을 자아낸다.
이 책의 첫 부분을 장식한 지루한(?) 철학 이야기는 물론 소설의 중간 중간에도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엔 오히려 부르주아도, 마르크스도, 반가웠다.
그리고 성장소설을 연상케 하는 그 둘만의 따뜻하고 깊은 우정. 딱히 무슨 말이 필요 없는 둘의 우정은 소름 돋도록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우리가 포착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가 사물의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보는 순간에 일어나는, 사물의 찰나적인 배열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기 생을 끌어가야 하는 것일까?
난 그렇게 생각했다.
아름다움과 죽음 사이에서, 움직임과 움직임의 소멸 사이에서 늘 균형 있게?
아마 이것이 살아있는 것이리라.
죽어가는 순간들을 추적하는 것이.
신기했다.
짜증남으로 시작했지만, 감동과 탄식으로 끝을 맺게 하는 책이었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반전이 아닐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마르크스’가 내게 일으킨 곤란함과 어쩔 줄 모름은 결국에 가서는 내 영혼의 순수를 찾아 헤매도록 만들었다.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슴도치의 우아함> 이었다.
르네 아줌마, 아니 미셸 부인. 그녀는 진정으로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겉보기엔 무감각한 듯하지만,
고집스럽게 홀로 있고 지독하게 우아한 작은 짐승
고슴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