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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덕 신부의 하나님 나라 -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대천덕 지음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6년 4월
평점 :
간만에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가슴 뛰게 하며, 손에서 놓기 힘들고, 계속 읽게 되는 책.
이 책 한 권으로 대천덕 신부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이 무언지 감 잡을 수 있다.
두껍지 않은 이 책에서도 수 차례 반복해서 강조하시기 때문이다.
크게 3가지.
1) 성경 말씀,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
2) 가난한 자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3) 땅이 중요하다. 토지세를 내야 한다.
하나님의 뜻, 성경 말씀은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려고 하지를 않는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성경을 왜 연구해야 하는가?
실제적이면서도 영적이다. 연구하면 우리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 연구하는 게 유익이다. 답과 답을 찾을 단초가 성경에 있다.
정부에게 책임 전가하기 전에, 우리가 할 몫이 있다.
특히 가난한 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책임질 수 있다. 또 그렇게 하라고 성경도 말한다.
하지만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고, 알아도 거부하는 거다.
계속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데, 상당히 도전된다.
대천덕 신부님은 성령을 강조하신다. 기도도 강조하신다.
왜 성령인가? 왜 기도인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잘 따르기 위해서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이어지는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김회권 교수님은 책 뒤에 해제를 쓰셨다.
거기에 ‘훌륭하신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수환 추기경도 도달하지 못한 영성과
신학적 식견의 고봉을 이루고 유산으로 남겼다’고 하셨다.
책 표지에도 적혀 있다.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이다.
굳이 그런 표현을 해야 했을까?
김회권 교수님은 무얼 의도하고 이 말을 했을까?
사실 김회권 교수님의 해제에서 정확히 표현되진 않는다.
대천덕 신부님이 이룬 영성과 신학을 소개하고,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수환 추기경에게 부족한 게 무언지를 말해주진 않는다.
그저 ‘이런 걸까?’하고 스스로 추측할 뿐이다.
성령의 은총은 개인을 변화시키고, 그 개인은 관계 안에서 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 사회 문제에 대한 태도가 남 다르다.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수환 추기경, 개인적으로는 훌륭하시다.
많은 감동을 남기신 분들이다.
하지만 대천덕 신부님의 영성과 신학의 고봉은,
개인의 청빈한 영성 차원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기도와 그 밑바탕을 이루는 성경 이해와 신학이다.
이 책이 그걸 자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토지 문제가 대표적이다.
토지세,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경제 영역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이에 대해 성경에서 제시하는 바가 있다.
이를 이 땅에서 우직하게 살아내려고 하신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자본과의 문제, 국가에 대한 문제,
토종씨앗의 문제(최근에는 유전자 조작 식물GMO와도 연관될 거다),
코이노니아의 구체적 실현 문제가 함께 거론된다.
쓰다보니 책의 울림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 같지 않아 아쉽다.
그 정도로 이 책의 외침은 크고 깊다.
또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대천덕 신부님의 영성과 신학을 잘 배워야겠다.
여기서 끝낼 수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
‘해방신학’에 대한 입장...
그토록 훌륭하신 대천덕 신부님도 ‘편견’에 빠지신 걸 보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17쪽, 124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 공산주의와 손잡아도 되고, 혁명을 일으켜도 된다,
해방신학자들이 데모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바람에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등의 내용을 보며 안타까웠다.
물론 저렇게 말한 해방신학자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해방신학의 전부가 그런 것처럼 말씀하시는 건 의외였다.
인격적으로 훌륭하시다는 말은, 이 상황에서는 깨져버리는 말이다.
비판을 강하게 할 수도 있다.
강도의 문제가 아니다. ‘규정 짓기’의 문제다.
맑스를 긍정하면 문제인가?
그래도 대천덕 신부님은 여느 사람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맑스를 비판하면서도,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이 매우 분명/탁월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해방신학의 영감을 위의 말로 덮을 순 없다.
나는 말하고 싶다.
대천덕 신부님이야말로 해방신학자라고!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 갖는 하나님을 부각시키며,
우리에게 책임이 있고, 우리가 도와야한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우상인 자본, 학벌에 대해 언급하고 거기서 해방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신다는 점에서,
그 누구 못지 않은 해방신학자가 바로 대천덕 신부님이다.
해방신학은 그런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래서 글 제목을 “해방신학자, 대천덕 신부님”으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