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카트린 레퀴예 지음, 김유경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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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감, 이 말 때문에 이 책을 골랐다.

나도 평소에 경이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라는 명제를 마주하니

저자를 전혀 모르고, 출판사도 보지 않고 골랐다.

 

저자는 네 아이를 둔 어머니로 스페인에서 살고 있다.

스페인이라.. 내가 기억하는 스페인 작가는 없다.

 

낯선 나라이지만, 주입식/기계적 교육을 별 차이 없나보다.

저자의 문제제기가 생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경이감에 대해 설명하고,

2부는 어떻게 경이감을 갖게 할지를 다룬다.

 

글이 하나씩 잘 이어진다. 그리고 각 장이 길지 않다.

짧은 수필이 이어지는 느낌.

지루하지 않게 읽어 나갔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잘 짚어준다.

 

과잉자극을 하지 마라, 그러면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일상에서의 경이감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밖에서 아이에게 주입하려고 하지 말고

안에 있는 아이의 능력을 끌어내라.

 

교육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존중하라.

 

침묵하라.

 

잘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데,

무언가 엄청 깊다는 느낌을 받는 건 아니다.

이게 약간 아쉬운 점.

 

책을 읽으며, 접어서 표시해 놓거나 따로 적어두는 구절은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읽을 가치는 있다.

 

또 이건 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삶에서 경이감을 느끼고, 경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자극을 줄여야 한다.

 

하긴 나 같아도 그렇다.

눈 앞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고,

없으면 다른 걸 떠올린다.

 

강한 자극을 멀리 하고,

아이 스스로 느끼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아, 말은 쉽다.

이 책을 기억하며, 한 번 더 경이감에 대해 떠올리며, 교육의 방향을 다잡는다.

 

 

의아한 점은 주와 참고문헌에 언급된 책 중 한글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없다는 거다.

정말 다 번역이 안 된 것인지, 번역자/편집자가 챙기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럴 만큼 아예 없다. 스페인어라서 그런 걸까?

 

 

이 책은 실로 꿰매어 제본하는 정통 사철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책이 참 튼튼하다.

바람 목욕 시킬 때도 느낌이 다르다.

아마 좀 더 비싼 방식이 아닐까?

표지의 아이 사진, 참 마음에 든다.

천사 같다. 행복해 보인다.

 

‘열린 책들’ 출판사에서 이렇게 책을 정성껏 만든 게 느껴져서 좋았다.

앞으로 더 주목해서 봐야할 출판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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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을 가다 -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
장 지글러 지음, 모명숙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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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이 책 부제가 인문학적 자서전인데, 이토록 어려운 자서전은 처음이다.

 

‘인문학적’이란 말처럼, 사상적 영감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기에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다르다.

저자의 삶이 펼쳐진다기보다는 저자의 사상적 토대가 펼쳐진다고 봐야 한다.

 

지글러의 사상적 기반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선행되어야 할 공부들이 좀 있다.

프랑스 혁명을 비롯하여 18~20세기 유럽 역사/철학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칸트, 헤겔는 거의 나오지 않고, 맑스도 직접 등장하는 건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사유를 전개한 호르크하이머 등의 신 맑스주의자,

루카치, 그람시, 현대철학자들은 정말 쏟아지듯 이어진다.

 

레비스트로스 뿐 아니라 그의 후임인 로제 바스티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레비스트로스도 희미한데, 그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접하니 낯설고 소화가 잘 안 된다.

 

간간이 시(詩)도 등장한다.

특히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자주 등장한다. <일 포스티노>에서 만났던 파블로 네루다의 시도 종종 나온다.

시를 평소 거의 읽지 않기에, 이 역시도 내겐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읽는 건, 훑어보는 거라는 마음으로 봤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나중에 혹 필요하면 다시 찾아보련다.

 

지금은 서양 철학/역사의 흐름을 먼저 파악하고,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 이 책을 보며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

 

지식의 풍성한 바다 가운데 허우적거리는 느낌,

아마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닐 거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저자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책으로 꼽히는 중요한 책이다.

난 그 책을 통해 세계경제에 대해 감 잡게 되었다.

자본,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이에 맞서는 삶- 특히 칠레 아옌데의 아름다운 저항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의 삶, 지금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책은 정말 쉽다. 중학생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도 쉽게 읽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마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닐 거다.

 

 

좋은 이데올로기 / 나쁜 이데올로기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히틀러의 나치 이데올로기처럼 억압, 착취, 폭력, 죽임의 질서로 가는 나쁜 이데올로기,

조화, 도움, 평화, 생명의 질서로 가는 좋은 이데올로기.

 

얼마 전 라캉의 ‘욕망’이론을 접했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문제인가?

나는 지글러의 ‘좋은/나쁜 이데올로기’ 이론을 통해 분명히 입장 정리했다.

 

타자의 욕망이 좋은 방향이면 괜찮고, 나쁜 방향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순수한 내 욕망이 있을 수 있는가?

인간은 관계 가운데 살아가기에, 타자의 욕망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관건은 그 욕망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살리는 삶이냐 죽이는 삶이냐...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을 읽었는데,

나의 인문학적 자서전을 쓴다면, 거기에 지글러가 들어갈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만난 의미가 있다. 어렵지만 기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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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덕 신부의 하나님 나라 -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대천덕 지음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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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가슴 뛰게 하며, 손에서 놓기 힘들고, 계속 읽게 되는 책.

 

이 책 한 권으로 대천덕 신부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이 무언지 감 잡을 수 있다.

두껍지 않은 이 책에서도 수 차례 반복해서 강조하시기 때문이다.

 

크게 3가지.

1) 성경 말씀,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

2) 가난한 자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3) 땅이 중요하다. 토지세를 내야 한다.

 

하나님의 뜻, 성경 말씀은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려고 하지를 않는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성경을 왜 연구해야 하는가?

실제적이면서도 영적이다. 연구하면 우리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 연구하는 게 유익이다. 답과 답을 찾을 단초가 성경에 있다.

 

정부에게 책임 전가하기 전에, 우리가 할 몫이 있다.

특히 가난한 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책임질 수 있다. 또 그렇게 하라고 성경도 말한다.

 

하지만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고, 알아도 거부하는 거다.

 

계속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데, 상당히 도전된다.

 

대천덕 신부님은 성령을 강조하신다. 기도도 강조하신다.

왜 성령인가? 왜 기도인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잘 따르기 위해서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이어지는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김회권 교수님은 책 뒤에 해제를 쓰셨다.

거기에 ‘훌륭하신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수환 추기경도 도달하지 못한 영성과

신학적 식견의 고봉을 이루고 유산으로 남겼다’고 하셨다.

 

책 표지에도 적혀 있다.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이다.

굳이 그런 표현을 해야 했을까?

김회권 교수님은 무얼 의도하고 이 말을 했을까?

 

사실 김회권 교수님의 해제에서 정확히 표현되진 않는다.

대천덕 신부님이 이룬 영성과 신학을 소개하고,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수환 추기경에게 부족한 게 무언지를 말해주진 않는다.

그저 ‘이런 걸까?’하고 스스로 추측할 뿐이다.

 

성령의 은총은 개인을 변화시키고, 그 개인은 관계 안에서 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 사회 문제에 대한 태도가 남 다르다.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수환 추기경, 개인적으로는 훌륭하시다.

많은 감동을 남기신 분들이다.

 

하지만 대천덕 신부님의 영성과 신학의 고봉은,

개인의 청빈한 영성 차원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기도와 그 밑바탕을 이루는 성경 이해와 신학이다.

 

이 책이 그걸 자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토지 문제가 대표적이다.

토지세,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경제 영역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이에 대해 성경에서 제시하는 바가 있다.

 

이를 이 땅에서 우직하게 살아내려고 하신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자본과의 문제, 국가에 대한 문제,

토종씨앗의 문제(최근에는 유전자 조작 식물GMO와도 연관될 거다),

코이노니아의 구체적 실현 문제가 함께 거론된다.

 

쓰다보니 책의 울림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 같지 않아 아쉽다.

그 정도로 이 책의 외침은 크고 깊다.

또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대천덕 신부님의 영성과 신학을 잘 배워야겠다.

 

 

여기서 끝낼 수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

‘해방신학’에 대한 입장...

 

그토록 훌륭하신 대천덕 신부님도 ‘편견’에 빠지신 걸 보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17쪽, 124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 공산주의와 손잡아도 되고, 혁명을 일으켜도 된다,

해방신학자들이 데모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바람에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등의 내용을 보며 안타까웠다.

 

물론 저렇게 말한 해방신학자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해방신학의 전부가 그런 것처럼 말씀하시는 건 의외였다.

인격적으로 훌륭하시다는 말은, 이 상황에서는 깨져버리는 말이다.

 

비판을 강하게 할 수도 있다.

강도의 문제가 아니다. ‘규정 짓기’의 문제다.

 

맑스를 긍정하면 문제인가?

그래도 대천덕 신부님은 여느 사람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맑스를 비판하면서도,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이 매우 분명/탁월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해방신학의 영감을 위의 말로 덮을 순 없다.

 

나는 말하고 싶다.

대천덕 신부님이야말로 해방신학자라고!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 갖는 하나님을 부각시키며,

우리에게 책임이 있고, 우리가 도와야한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우상인 자본, 학벌에 대해 언급하고 거기서 해방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신다는 점에서,

그 누구 못지 않은 해방신학자가 바로 대천덕 신부님이다.

해방신학은 그런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래서 글 제목을 “해방신학자, 대천덕 신부님”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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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 대화, 듣는 것이 사람을 살린다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강주헌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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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도 때가 있다. 2월에 이 책 나오자마자 읽으려하다가 미뤘다.

그러다 소통에 관한 문제로 부대끼는 요즘, 다시 찾게 되었다.

 

이게 웬걸, 생각보다도, 기대보다도 더 좋구나!

 

잔잔한 듯 하면서도 깊은 충격을 받은 구절들이 몇 있다.

 

141쪽, 내가 상대의 말을 미리 마무리하는 습관.

대화하다가 내가 앞서서 상대의 말을 해버릴 때가 있다.

난 그동안 이게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의 의중을 헤아리고, 공감하기에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 듣고 나서 재정리하는 것은 좋지만,

미리 앞서 말하는 건 상대에게 부담을 준다고 한다.

말을 빨리 하라는 압박을 가한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물어봤다. 어떠냐고.

그랬더니 미리 말하는 건 별로라고 한다.

 

아, 충격! 좋은 줄 알았던 것이 오히려 나쁜 것이었다니!

 

 

나의 잘못된 습관은 145쪽에 이어 또 나왔다.

상대방의 말에서 잘못된 부분 바로잡기.

본능적으로 말을 바로 정정하곤 한다. ‘잠깐, 그건 이건데..’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나쁜 습관이다.

‘지난 화요일에...’, ‘근데 화요일이 아니라 수요일 아니야?’

사실 수요일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화요일이든 수요일이든, 아니 목요일이든 언제든

요일은 말하려는 바와 상관없을 수 있다.

그날 벌어진 사건에 대해 말하려는데, 요일 따지다가 논점을 놓칠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와는 멀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왜 지적하려는 것일까?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결함을 지적하고, 잘못을 수정하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밀턴 에릭슨이라는 최면 치료사는, 일부러 실수를 저질러서,

환자가 ‘지적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고,

그 효과로 몇 마디 듣지 않고도 깊은 최면 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심리, 남이 틀리다는 걸 지적하면서 누리는 즐거움.

아, 이걸 발견해서 기뻤다.

 

특히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이런 부분도 꼼꼼하게 따지는 경향이 있다.

정말 피해야 할 습관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물론 깨닫는다고 바로 그 습관을 버리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게 다행이다.

 

 

한 가지 더, 161쪽의 ‘나는 안 지키는 조언’, 이걸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배부르면 그만 먹어.’ ‘꼭꼭 씹어 먹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배불러도 더 먹으려 하고, 꼭꼭 씹지 않고 나도 모르게 삼켜 버리곤 한다.

내가 남들에게 조언하지만, 정작 나도 잘 지키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훌륭한 조언을 많이 하지만, 정작 자신은 1/4도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공감!

 

 

이 세 가지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마지막 부분의 ‘비언어적 경청’도 괜찮았다.

상대의 자세, 말투, 호흡(거시적), 얼굴색, 입의 움직임, 눈동자의 움직임(미시적)을

관찰하라고 권한다.

 

해석이 아니다. 관찰이다.

상대의 기운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았는데,

그걸 또 거시/미시로 나눠 더 세분화 시킨 점이 좋았다.

 

 

저자는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

책을 보며 많이 공감했다. 소통이 잘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왜? 자기 중심적이니까.

 

하지만 본능대로 살지 않고, 이 책에서 말하는 바를 배워 경청할 수 있다.

그러면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그러면 기분 좋고 활기차게 살 수 있으니까.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니까.

 

소통에 관한 수많은 책이 있을 거다.

많이 보기보다는 괜찮은 걸 골라 반복해서 익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맨 뒤에서 반복해서 습득하길 권한다.

한 번 다 읽었지만,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연습하면서

나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건강한 습관-경청하는 방법을 익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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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 어느 시골교사가 세상에 물음을 제기하는 방법
황주환 지음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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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나 내용보다 출판사를 먼저 말해야겠다.

‘갈라파고스’

여기를 알게 된 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책을 통해서다.

 

내 인생의 책이다.

내 삶의 방향, 나의 관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책이다.

 

세계 경제/정치의 현실에 처음 눈을 뜨게 됐다.

5초에 1명씩 어린 아이가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현실!

그럼에도, 쌀이 남아도는데도 불구하고, 쌀을 바다에 버리는 현실!

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이 세상은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니다.

나누면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누지 않는다.

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칠레의 아옌데 등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만남과 배움이 있었다.

여전히 이 책을 마주하면 떨리는 마음이 있다.

 

 

이 책을 봤을 때, 출판사부터 주목한 건 아니다.

책 제목과 저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결정타를 날린 게 출판사다.

 

사실, 난 공교육 현장에 별 관심이 없다.

대안교육 현장을 더 잘 가꿔가고 싶다.

 

그렇지만 이 책은 공교육 현장에 대해 세밀하게 비판했을 것 같고,

그러한 점을 내가 염두에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걸 얻었다.

그건 바로, 저자의 꼼꼼한 논리!

 

내용을 동의하느냐 여부를 떠나, 형식 자체가 탄탄하다.

치밀하게 사유하고 풀어낸 글쓰기다.

 

국어선생님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다.

글쓰기의 모범을 보는 느낌이다.

 

밀도 높고 알찬 글이다.

그렇기에 글을 빨리 읽어나갈 수 없다.

비판적인 이야기는 훌훌 넘겨 읽어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내용도 들어오지만, 내용 전개하는 과정-근거 제시하는 점에서도 많은 유익이 있다.

 

철학/논리학 책이 아닌데, 철학/논리학 책 이상으로 사유 훈련에 도움이 된다.

이런 느낌이 참 좋다.

 

책 날개에 저자 메일 주소가 나와 있는데, 정말 쓸 거다.

앞으로 잘 만나가고 싶은 저자다.

 

저자의 장은 공교육/제도권 현장이다.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불합리하고 생명을 억누르는 체제에 균열을 내면서,

그런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 새로운 사회를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안 사회를 형성하지 못하면,

참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은 존재하기 어렵다.

 

게토화된다는 비판이 있더라도,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내 아이를 정말 보내고 싶은 학교, 배우게 하고 싶은 교사가 있는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관계에서 생활/교육하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대안은, 남들에게 제시하기 위해서보다,

당사자가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하다.

 

목표 성취 시기를 ‘먼 미래에 실현될 지도 모르는 일’로 두지 말고,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 현실화시켜야 한다.

 

다른 삶의 형식/내용을 보며, 억압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사자 자신이 보다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한 기쁨이 자연스레 다른 곳에 전달될 것이고,

거기서 새로운 변화도 생길 수 있다.

 

 

그러기위해,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이 땅의 현실을 면밀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왜,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무얼 주의해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성찰이 치열하게 잘 담겨 있다. 알차다.

다만 여기서 머물지는 말자.

비판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삶과 관계를 통해서 하는 거다.

 

읽었다고 끝이 아니다.

잘 사는 상태는, 나도 누리고, 남도 누려야 한다.

그러한 개인/사회가 되어가도록 애써야 한다.

 

촌지 안 받는 교사? 촌지 받는 교사!

학교에서 학생을 제적시키려 하자 저자가 만류한다.

유급되더라도 지켜보자는 것이다.

 

저자의 진심에 감동한 어머니는 돈 봉투를 내민다.

 

품꾼에겐 큰 돈이었을 터.

게다가 저자는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사람인데..

 

결국 받는다. 그건 촌지를 받았다기보다 어머니의 마음을 받은 거다.

 

이걸 두고 비판할 게 아니다.

오히려 자기 기준을 해체시키며 어머니의 표현을 수용한 게 아름다운 거다.

 

저자가 그 돈을 어떻게 썼을까?

모르지만 그래도 필요한 곳에 의미 있게 쓰였을 거라 생각한다. 기대한다.

 

이런 교사/저자가 있다는 게 반갑다.

또 이런 책/알찬 책을 출판해주는 출판사가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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