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을 가다 -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
장 지글러 지음, 모명숙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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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이 책 부제가 인문학적 자서전인데, 이토록 어려운 자서전은 처음이다.

 

‘인문학적’이란 말처럼, 사상적 영감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기에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다르다.

저자의 삶이 펼쳐진다기보다는 저자의 사상적 토대가 펼쳐진다고 봐야 한다.

 

지글러의 사상적 기반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선행되어야 할 공부들이 좀 있다.

프랑스 혁명을 비롯하여 18~20세기 유럽 역사/철학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칸트, 헤겔는 거의 나오지 않고, 맑스도 직접 등장하는 건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사유를 전개한 호르크하이머 등의 신 맑스주의자,

루카치, 그람시, 현대철학자들은 정말 쏟아지듯 이어진다.

 

레비스트로스 뿐 아니라 그의 후임인 로제 바스티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레비스트로스도 희미한데, 그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접하니 낯설고 소화가 잘 안 된다.

 

간간이 시(詩)도 등장한다.

특히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자주 등장한다. <일 포스티노>에서 만났던 파블로 네루다의 시도 종종 나온다.

시를 평소 거의 읽지 않기에, 이 역시도 내겐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읽는 건, 훑어보는 거라는 마음으로 봤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나중에 혹 필요하면 다시 찾아보련다.

 

지금은 서양 철학/역사의 흐름을 먼저 파악하고,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 이 책을 보며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

 

지식의 풍성한 바다 가운데 허우적거리는 느낌,

아마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닐 거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저자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책으로 꼽히는 중요한 책이다.

난 그 책을 통해 세계경제에 대해 감 잡게 되었다.

자본,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이에 맞서는 삶- 특히 칠레 아옌데의 아름다운 저항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의 삶, 지금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책은 정말 쉽다. 중학생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도 쉽게 읽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마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닐 거다.

 

 

좋은 이데올로기 / 나쁜 이데올로기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히틀러의 나치 이데올로기처럼 억압, 착취, 폭력, 죽임의 질서로 가는 나쁜 이데올로기,

조화, 도움, 평화, 생명의 질서로 가는 좋은 이데올로기.

 

얼마 전 라캉의 ‘욕망’이론을 접했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문제인가?

나는 지글러의 ‘좋은/나쁜 이데올로기’ 이론을 통해 분명히 입장 정리했다.

 

타자의 욕망이 좋은 방향이면 괜찮고, 나쁜 방향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순수한 내 욕망이 있을 수 있는가?

인간은 관계 가운데 살아가기에, 타자의 욕망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관건은 그 욕망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살리는 삶이냐 죽이는 삶이냐...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을 읽었는데,

나의 인문학적 자서전을 쓴다면, 거기에 지글러가 들어갈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만난 의미가 있다. 어렵지만 기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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