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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부터 나만의 스쿠터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해왔었던 것 같다. 우선은 스쿠터를 타고 있으면 조금은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고, 스쿠터를 타고 있으면 바람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질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스쿠터를 빌려 타보려고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었는데, 생각보다 스쿠터가 무겁다는 사실에 놀라고,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음에 또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배움의 길에서 쉽게 스쿠터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고, 뒷자리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바람을 느끼는 것에 만족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뒤에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스쿠터를 움직이면서, 바람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넘어진들, 다시 일어서면 될 것이고, 고장이 난들, 다시 고치면 그만인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흐르면 두려움이 더욱 커진다. 어렸을 적에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미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어린 시절의 소중함, 그 시간들의 아름다움, 완성되지 않았기에 느껴지는 싱그러움이 얼마나 그리운지. 그리고 어른이 되면 더욱 용기가 없어지고, 더욱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게 되며, 과거에 가지고 있던 빛나는 무언가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알게 된다.
과거의 시간들, 소녀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참 소중했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리는 것 같아서 책을 읽으면서 안쓰러운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소녀, 소년, 참 예쁜 단어인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 내 과거의 시간들은 지금 어디쯤에 있으며, 난 얼마만큼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마법의 스쿠터가 한대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우연히 품에 들어온 스쿠터가 딱 한번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시간으로 그리고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예쁜 스쿠터들이 한국에 상륙(?)하기 전에는 솔직히 스쿠터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주로 배달을 하는 데 많이 이용되는 것이 스쿠터였기 때문이다. 같은 스쿠터이지만, 참 느낌도 다르고, 떠오르는 이미지들도 많이 다르다 라고 생각하면서 웃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도 잃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삶이 힘들다고, 바쁘다고 핑계되면서, 무언가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바람의 시원함도,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의 상쾌함도, 그리고 어릴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느꼈던 많은 감정들이 지금은 조금 사라져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서 조금은 힘이 빠진다.
그래도 다 잃지는 않았으니까 괜찮아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고 있다.
당장 스쿠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을 테니, 스쿠터를 탈 수는 없다. 다만, 이제는 조금 더 바람을 느끼고,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삶을 느끼면서 살자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언젠가 스쿠터를 타면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어떠한가, 그런 기분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스쿠터 대신에 창문을 열어 놓고 크게 음악을 듣고 있다. 달과 별이 없는 하늘이지만, 그래도 검은색이 아닌, 독특한 색으로 물들어 있는 하늘도 보이고, 시원한 맥주도 있는데... 그래도 조금은 스쿠터가 없어서 아쉽다고 말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