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적에는 제법 등산을 좋아했었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촐라체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아담한 산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푸르른 나무를 보는 것도, 바람소리와 나뭇잎 스치는 소리도 , 가는 길에서 느낄 수 있는 흙냄새, 등산로 나무에서 바람이 불 때 마다 간간이 다가오는 꽃향기도 너무 좋았었다. 그렇게 등산을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여기저기에 있는 산들을 오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힘들기도 했었지만, 마냥 좋았던 시간들이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냥 산에 가지 않게 되었다. 험난한 길을 스스로 찾아 걷는 것도, 땀을 흘리는 것도, 긴 시간들을 산에서 보내는 것, 자체에 대한 흥미가 불연 듯 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시는 커피조차 미안할 정도로 힘겨운 산행을 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산에 오르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캠프지기 정 선생,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자, 촐라체를 오르고 있는 박상민과 하영교. 이들은 산을 오르고, 오르면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되며, 그들 속에 존재하고 있던 서로에 대해 알게 된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오른 그 길은 쉽지 않다. 단기간에 최소한의 장비로 오르려 했던 그 길은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더 많은 시간동안 깨어지라고 말하고 있다.

솔직히, 책 곳곳에 등장하는 전문용어들이 처음에는 글에 몰입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그들의 숨결을 따라, 그들의 속마음을 따라 저절로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경우는 진행속도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보통의 책을 읽는 시간보다 조금 적게 걸린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도 그만큼 책이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 곳곳에는 남성적인 감수성이 많이 보이는 듯 하다. 그렇다고 부담스럽거나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거친 듯 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그런 감수성이 정감 있게 느껴졌고, 글 속에 담겨있는 조금의 투박함이 오히려 책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오를 수는 없겠지만,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빙이라는 것의 푸르름도 궁금하고, 경사진 단면들도, 그리고 그곳의 추위도 궁금하기만 하다. 해가 떠오를 때의 도미노처럼 물드는 산봉우리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정적도, 그 정적의 깊이와 무서움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위험함에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그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했다. 극한의 경험임이 분명하고, 어떠한 예상조차 빗나갈 수 있는 곳이자, 작은 실수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만들어 버리는 그곳. 물론, 이는 촐라체에서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곳을 오른 두 사람과 그들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정 선생을 보면서, 조금의 열망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하다.

갑자기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곳처럼 조용한 곳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조용한 산을 혼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생각 없이 그냥 무작정 걷고 싶다. 아마 너무 힘들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무작정 오르는 그 발걸음이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우리는 말없이 서로 통했다. 나는 정상에서 일종의 ‘열반’을, 마음의 평안을 체험했다. 산은 내려왔을 때, 나의 인생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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