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ying of Lot 49 (Paperback) - 『제49호 품목의 경매』원서
토머스 핀천 지음 / HarperPerennial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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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토마스 핀천의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소설로 뽑힌다. 작가는 이 작품에 많은 상징들을 숨겨 놓았고,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얇지만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작품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중산층의 일상을 누리던 외디파라는 주인공이 어느날 1년 전 죽은 자신의 옛 애인 피어스의 유언 집행인이 되었다는 편지를 받는다. 그녀는 유언을 집행하기 위해 산 나르시소라는 도시로 가고 거기서 동료 유연 집행자인 메츠거를 만난다. 그와 함께 우연히 들린 술집에서 W.A.S.T.E라는 지하우편제도에 대해 알게 되고 피어스의 유언을 집행하는 일보다 지하우편제도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이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그녀는 점점 미궁에 빠지게 된다. 소설은 외디파라는 여성이 Trystero, 즉 지하우편제도의 실체에 대해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린 탐정소설 같은 형식을 띄고 있다.

   외디파라는 이름은 오이디푸스를 연상시킨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떠났듯이 외디파도 그러한 과정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피어스는 미국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인물이다.

   작가는 안락하게 살고 있던 외디파가 자신의 공간을 떠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만남으로 새로운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더 직접적으로는 획일화된 미국의 정체성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것을 작품에서는 엔트로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엔트로피처럼 대화가 단절되면 폐쇄회로 속에 갇히게 되어 사회가 정지되고 붕괴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60년대 미국은 풍요의 시대이자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하기 시대이다. 개별의 특성과 기호가 무너지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에 반발하여 히피와 비트족이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지하 우편제도였던 Trystero를 제시하여 역사적으로 비주류였던 사람들 속에 대화가 있고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으로는 Origin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이해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고 하니 정리가 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상징들과 이야기들이 있어 어디까지 의미를 부여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이 작품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음에 다시 읽을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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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ing Asian America: Race and Ethnicity on the Contemporary Stage (Paperback)
Josephine Lee / Temple Univ Pr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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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갖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과 그들이 두 문화 속에서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분석하는데, 그 중 읽어본 작품이 단 하나밖에 없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또한 어떤 작품들은 구글에서 줄거리조차 찾을 수 없어 세계에서 아시아계 미국 드라마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아시아계 미국 드라마의 커다란 흐름을 잡을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제 작품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1. Critical strategies for reading Asian American drama

   19세기 후반 아시아에서 미국으로의 첫 대거 이민이 있었다. 1965년 이민 제한이 법적으로 많이 완화되어 많은 이주가 이루어졌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영향력이 증가됨에 따라, 정치와 문화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취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독자들이 연극을 접하게 된 것은 고작 1970년대 초반부터이다. 미국 관객들은 오랫동안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영향은 연극, 뮤지컬, 아시아 전통 공연이나 영화 등에서도 기대되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사회적 긴장과 문화적 표현에 대한 분명한 연관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인종적 고정관념이 감상에 영향을 주었고 아시아인의 실체를 더 과장된 이미지로 교체함으로써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주의를 강화하였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은 쉽게 일반화될 수 있는 한 덩어리의 사람들로 설명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아시아계 미국인다운 것이고, 이러한 연극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The Asian American spectator and the politics of realism

   20세기에 사실주의를 다룬 연극들이 연극업계를 장악하였다. 리얼리즘은 세상을 해석하려는 태도이다. 작가는 묘사하는 대상을 고스란히 재현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작가의 특정한 사상이 개입될 수 있다. 또한 무대와 관객의 경계선은 제 4의 벽이 되고 관객들은 무대를 몰래 봄으로써, 관객들은 보이지 않는 무대의 관음증자가 된다. 리얼리즘이 이미 완벽한 그림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냥 연극을 현실로 받아들일 뿐이다.

   리얼리즘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브레이트의 소격효과 같은 것이다. 백인들에게 관객과 무대의 관계를 스스로 깨우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적으로 줄거리를 파편화시켜 관객들이 총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도록 한다. 관객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것이다.

 

3. The Chinaman's unmanly grief

   프랭크 친은 프로이트의 거세위협에 대한 설명을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들의 거세에 적용시켰다. 친은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에게 있어 거세 불안은 역사상 인종차별로 인해 아시아와 남성이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프로이트의 패러다임에서 나오는 위협과 역사상의 인종차별적인 위협으로 이중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친은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이 더 남성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족적 생존의 문제 앞에서 감상적이고, 나약한 남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작품이 The Chickencoop Chinaman이다. 라깡에 의하면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순간이 자기형성의 순간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영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모국어와의 유대를 끊는 것은 거세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영어는 지배적인 백인 문화의 언어이고 그는 영어를 자신의 언어로써 완전히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형태의 무력화는 물건이나 신체의 일부에서 나타난다. 동양적인 것은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에게 남성다움의 결핍을 나타낸다. 백인 여성은 동양적인 예술과 남성적인 성적 매력의 결핍을 연관시켜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을 여성화시킨다.

 

4. The seduction of the stereotype

   고정관념은 역사적 힘의 관계의 산물이다. 헨리 황의 M.butterfly와 고탄다의 Yankee Dawg you die 라는 작품은 아시아 남자에 대한 고정된 할리우드 역할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즐기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정체성에 대한 유동적이고 유희적인 접근이다. 과연 정체성이 있는가 하는 물음인 것이다.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더 정형화시킨다. 일부러 잉여(몸짓, 손짓을 극단적으로 강조)를 보여줌으로서 관객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5. Act of exclusion: Asian american history plays

   헤이든 와이트는 역사가는 아티스트라고 말한다. 예술가가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리는 것처럼 역사도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고 구성된다는 것이다. 오마추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이주 정책은 역사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글레이저는 미국을 열린 나라로 제시한다. 이것은 인본주의적 시각이며 이민역사를 보수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하나의 포괄된 자유민주적인 사회이며 사람들은 피부색, 인종, 민족성보다는 그들의 능력이 바탕이 되어 평가된다는 것이다.

   타카키는 글레이저의 자연스러운 동화 이론에 반박한다. 그는 미국의 법과 정책들이 비백인 이민자들을 배제시켰다고 지적한다. 또한 투표권, 참정권 등에서도 북민 원주민들과 흑인을 배제시켰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대안적인 민족주의 관점은 엔더슨이 말하는 상상의 공동체 같은 것이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 문화,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는 깊은 연대이다. 하지만 타카키의 이론은 너무 극단적으로 공동체의 긍정적인 측면만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6. Asian American doubles and the soul under capitalism

   자유시장체제는 인종이나 민족적 지위를 따지지 않고 오직 순수한 능력 사회를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상황에 종종 비극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소개하는 네 작품들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중성에 관해 다루고 있다. 주인공들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는 개별주의와 소비주의를 찬양하고 자유로운 자아를 억누르는 민족적 연대와 대항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또한 인간관계를 왜곡시키는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의 대안으로 민족적 연대를 제시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

 

7. Staging "Passing" on the borders of the body

   race는 생물학적 용어이며 선천적이고 바꿀 수 없다. 그러나 ethnicity는 선택의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다. race나 ethnicity를 넘나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19세기와 20세기의 미국 드라마에서는 과장된 의상, 제스처, 화법, 화장, 피부색과 같은 외형적 부분을 똑같이 재현함으로써 아시아인을 정의하였다. 그러나 아시아계 미국인 극작가들은 작품에서 경계를 넘나들으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이러한 노력들은 잔인하고 자기 파괴적이며, 결함이 있다. 본질적으로 타고난 아시아인의 몸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틀에 맞추기 위해 몸을 변형(성형)시키려는 노력에서 극단적인 실패와 아픔이 분명히 드러나는데도 불구하고 희곡들은 적어도 불확정성의 가능성을 소개한다. 작품들은 그 주체로서 갖는 한계와 인종과 민족성이 만든 장벽을 넘지 못해 씨름하는 주인공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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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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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미셀 투르니에가 부바의 사진에 짧은 글을 쓴 책이다. 투르니에 단편 작품은 읽어봤으나 장편은 한 권도 읽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글보다 그림에 훨씬 애정이 간다. 사람들의 다양한 뒷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았는데, 뒷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뒷모습, 나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은 몇 장이나 있을까? 거울로 뒷모습을 보긴 하지만, 스스로 보려면 늘 반밖에 보여지지 않아 제대로 볼 수 없는 뒷모습. 책을 읽고 나니 괜히 뒷모습에 신경이 쓰인다. 나의 뒷모습은 아름다울까?

   효자동을 산책하다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발견한 책인데, 글도 짧고 그림도 좋아서 한 권 사고 싶은 마음이다. 게다가 양장본이다.(요즘 들어 양장본이 점점 좋아진다. 소설을 늘 페이퍼북으로 봐서 그런가...) 사진 옆에 써 놓았던 글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목-사진은 두 남녀가 다정하게 허리를 감싼 채 바다에 발을 담구고 있는 뒷모습에 관한 설명-을 적어보자면,

 

   저 남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틀림없다! 부자들이라면 아예 수영을 한다. 수영하는 데 필요한 팬티도 수영복도 다 갖춰놓았다. 수영복의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하는 법. 때문에 아주 큰 부자들은 아예 벌거벗고 헤엄친다. 부자들은 물론 수영을 할 줄 알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수줍다.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본다. 남자는 양말을 신은 채, 여자는 치마를 약간 걷어올리고, 그러나 이 즐거움과 정다움이 이 한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 서문 중에서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는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뒤쪽은 진실이다! 이 작은 책은 바로 쉰석 장의 영상들을 통하여 그 등 뒤의 진실을 답사하고자 한다. 또한 이 영상들은 에두아르 부바의 작품들이기에 거기에 담겨 있는 해학,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에서 오는 그 감칠맛 나는 즐거움을 음미할 자리까지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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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 숭고와 시뮬라크르의 이중주 진중권 미학 에세이 2
진중권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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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체에서 가끔 저자가 언급하는 거침없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걸 보면, 그를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롤랑 바르트가 쓴 <저자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과 독서와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역시 책은 매우 훌륭하다. 뛰어난 철학자들의 미학 담론을 읽고 있으면, 어쩜 그렇게 말들을 잘하시는지, 나도 이런 분들과 얘기라도 좀 나눠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많이 알려진 철학자들이라 읽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이들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거나, 관련된 책을 읽지 않았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 같다.

   한 권의 책에 많은 미학 담론이 들어있기 때문에, 압축적인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1장은 벤야민 파트인데 만약 그에 관련된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휙휙 넘겼을 뻔했다. 7장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에 관한 책은 전혀 읽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 놓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았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작품 그림들도 도움이 되었다. 깊이 있는 미학 책을 읽으니, 마음까지 즐겁다. 왠지 조금 똑똑해진 느낌이다.

 

1. Walter Benjamin, 1892-1940

   순수한 언어는 번역=원문의 동일성 속에 있지 않다. 그 언어는 번역가능성, 즉 원작과 번역의 차이, 그 번역과 다른 번역들의 차이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언어의 진정한 본질은 신의 말씀처럼, 없었던 것을 있게 하는 존재수립의 기능, 사물의 참된 모습을 현전시키는 개시 기능에 있다.(상기)

   파사주는 교환가치의 신전이다. 벤야민은 건축, 사진술, 광고 그래픽, 몽타주 등 생산력의 발전이 해방시킨 다양한 예술적 형상화 방식에 주목한다. 그는 봊게의 고유성을 인정한다. 가령 ‘진품성’이라는 개념은 위조 앞에서는 힘을 발휘해도 복제 앞에서는 무력하다. 동시상영되는 영화예술에는 아예 원작이 없다. 작품의 진품성은 그 사물의 ‘지금, 여기’와 결부되어 있기에 아무 때나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복제는 원작의 시간적, 공간적 현존성을 위협한다. 이로써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은 예술품의 진품성”,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은 사물의 권위이다.”(아우라의 붕괴)

건축물의 수용은 촉각과 시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촉각적 수용은 주의력의 집중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익숙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건축의 경우 그러한 촉각적 수용은 상당할 정도로 시각적 수용까지도 결정하게 된다.

   영화예술은 작품으로의 몰입을 막아 관중으로 하여금 늘 비평적 태도를 갖게 한다. (소격효과처럼) 극중 배우와 인격적 일체감을 맛보는 연극과 달리, 영화의 관중들은 스크린 속의 배우의 연기를 시험하는 냉정한 카메라의 태도를 취한다.(요즘관객은 그렇지 않지만...)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작품을 “한 개의 조각으로, 참된 세계의 파편으로, 상징의 토르소로 분해한다.” 순수한 언어는 하나의 개별 언어나 하나의 개별 작품 속에 온전히 드러날 수 없으며, 진리는 오직 파편들의 불연속 속에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2. Martin Heidegger, 1889-1976

   예술작품은 사물적 측면을 갖고 있다.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작품은 우선 돌이며

나무이며 물감이며 소리다. 하지만 작품은 동시에 이런 “사물적 차원을 넘어서는 또 다른 어떤 것”이다. 그리고 이 “다른 어떤 것” 바로 예술의 본질을 이룬다.

도구의 개념 - 하이데거에 따르면 도구는 인간에 의해 제작된다는 점에서 작품과 비슷하다. 하지만 작품은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자족성을 갖는다. 일상생활속에서 구두는 그저 구두일 뿐이다. 하지만 고흐의 작품 속의 구두는 다르다. 거기서 우리는 농민의 삶의 터전이 되는 들과 밭고랑, 즉 습기와 풍요로움을 머금은 대지를 본다. 이렇게 고흐의 작품은 구두의 도구존재를, 그 모든 삶의 연관성들 속에서 비로소 드러내준다. 우리는 진정으로 구두라는 존재자가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모던의 예술문화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통한 수집과 진열의 문화다. 여기서 작품들은 그것이 가졌던 진리를 잃어버리고 한갓 미적 관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세계의 박탈, 세계의 붕괴라 부른다.(모던을 부정하는 하이데거의 보수주의와 그것을 긍정하는 벤야민의 진보적 태도가 극적으로 충돌)

   오늘날 작품은 더 이상 감각적 직관의 대상이 아니다. 새로운 예술은 향유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즉 미적 주체의 매개를 통해 작품 안으로 연장되어 들어온 현실의 객관적 과정에 대한 진리이다.

   사회의 타자로 남기 위해 예술은 끝없이 자신을 혁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예술은 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게 된다. 새로운 예술의 창작은 내용에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그 누구도 아직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아도르노의 사상은 크게 보아 가상, 진리, 화해라는 세 개념의 연관으로 이루어진다.

 

3. Theodor W. Adorno, 1903-1969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예술은 제 본질로 여겼던 특성을 잃어버렸다. 현대예술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 회화는 재현을, 음악은 조성을, 시는 의미를 포기하고, 연극은 부조리해졌다. 카프카와 베케트의 작품은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들의 작품은 현실을 소리높여 비난하지도, 언젠가 도래할 유토피아도 제시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그 모든 부정성을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그 끔찍한 삶의 조건에 계속 깨어 있게 해준다.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예술은 사회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예술은 메시지가 아니라 “자신의 현존을 통해 사회를 비판한다”.

 

4. Jacques Derrida, 1930~

   데리다는 고흐가 그린 구두가 한 켤레라는 사실을 의심한다. 자신에게는 그게 각각 다른 구두에 속하는 왼쪽 신발들로 보인다는 것이다. 샤피로와 하이데거의 공통의 오류는 작품의 진리를 단 한번에 현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의미결정론에 있다. 그리고 이 결정론은 저 두개의 구두를 ‘짝’으로 단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저 구두는 어쩌면 ‘짝’이 아닐 수 있다. 데리다에게 작품의 진리는 결코 작품 속에 한번에 현전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품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한다. 데리다의 기표는 결코 현전에 도달하지 못한다. 재현적 인식은 불가능하다. 텍스트 밖에는 그것이 닮아야 할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차이 속에서 의미를 연기하면, 자신의 의미를 끝없이 다른 시니피앙들에게 연기시키면서 산포되는, 그리하여 결코 현전에 도달하지 않는 텍스트들의 놀이뿐이다.

 

5. Michel Foucault, 1926-1984

   유사 -원본과 복제 사이의 닮음의 관계

상사 -복제와 복제 사이의 닮음의 관계

푸코는 현대의 추상회화가 실물을 닮기를 포기함으로써 현실의 재현이기를 거부한다면, 마그리트의 작품은 실물을 빼닮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물의 재현이기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일종의 칼리그램이다 마그리트는 칼리그램을 파괴하기 위해 칼리그램을 사용한다. * 칼리그램 - 에덴 동산에서 사용하던 언어는 낱말의 청각적 영상 속에 그것이 가리키는 사물의 시각적 영상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는 이미 타락한 바벨의 언어 때문에 낱말이 사물의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클레처럼 재현의 공간을 붕괴시키고, 칸딘스키처럼 재현의 원리를 파괴한 마그리트. 하지만 같은 일을 해도 그는 클레와 달리 재현의 낡은 공간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칸딘스키와도 다르게 그림이 사물을 닮도록 그대로 내버려두는 역설을 두었다. 마그리트는 유사를 가지고 재현을 파괴한다. 그의 그림은 원본과의 동일시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림의 이미는 탈동일화한다.

 

6. Gilles Deleuze, 1925-1995

   들뢰즈가 말하는 감각의 주체는 베이컨의 ‘살’을 ‘고기’로, 즉 포스트-프로이트적인 리비도적 욕망의 주체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현을 포기하고 베이컨이 그리고자 한 것은 감각이다. 베이컨의 작품의 효과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촉각적이다. 그의 그림은 폭력적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스토리로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베이컨의 그림은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할 수 없고, 명확히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성’을 근거로 인간을 다른 동물 위에 올려놓는 인간중심주의는 무효가 된다.

   회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한다. 이 힘을 들뢰즈는 리듬이라 부른다. 회화는 히스테리다. 그것은 우리 앞에 신체의 현실을 세우고, 재현으로부터 해방된 선과 색을 세운다.

구상과 추상을 동시에 벗어나려는 모순적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베이컨은 디아그람이라는 전략을 도입한다. 그는 화폭에 우연적인 표시들을 하고, 어떤 부분은 쓸거나 문지르고, 그 위에 여러각도에서 물감을 뿌리기도 한다.

들뢰즈에게 회화는 단순히 미적 관조의 대상이 아니다. 회화는 감각의 폭력을 통해 신체의 변형을 이룬다.

 

7. Jean-Francois Lyotard, 1924-1998

   바넷 뉴먼의 작품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 안에는 알아볼 만한 대상도 없고, 그 이전에 어떤 형체도 없다. 그저 몇 개의 수직 혹은 수평선으로 나누어진 커다란 색면, 그게 전부다. 작품 안에는 식별 가능한 대상이 없다. 그저 주인 없는 물건처럼 덩그러니 던져진 사물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것을 작품으로 만들어주는가? 이 그림 앞에 선 관찰자의 체험 혹은 느낌. 바로 거기에서 이 그림은 작품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예술은 현실을 묘사하기를 포기하고, 이 침묵으로서 이 세계에는 예술로서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뉴먼에게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회화는 주제를 가져야 한다. 그 주제란 숭고를 가르킨다.

   리오타르의 숭고론은 현대예술이 재현을 포기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주로 비구상 예술에 적용되는 논리이다.

 

8. Jean Baudrillard, 1929-

   소비되는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이다. 인간은 미디어의 확장이며, 하이퍼 리얼리티가 실제보다 더 실재적인 것이 되어버려, 인간이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시나리오의 배우가 되어버렸다. 벤야민의 복제가 원작의 아우라를 파괴하는 데에 그친다면,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은 그 아우라를 자신이 뒤집어 쓴다. 이데올로기는 더이상 실재를 거짓으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실재 자체를 사라지게 하는 하이퍼 리얼리티의 전략을 통해 작동한다. 가량 걸프 전쟁은 전폭기의 조종석에 달린 스크린을 통해 일종의 전자오락 형태로 제시된다. 이를 통해 고전의 실제의 상황, 즉 전쟁의 참혹함은 간단히 증발해 버린다. “걸프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그의 도발적 언급은 바로 이런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피티 예술과 팝아트는 보드리야르 이론과 친화성을 가진다.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예술에서 발생하는 어떤 ‘사라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시뮬라시옹을 통한 실재의 사라짐은 팝아트나 극사실주의를 넘어 현대예술 일반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예술은 사라지는 모든 형태들처럼 시뮬라시옹을 통해 사라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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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미희곡 어디로 가는가 - 낯선 과거와 오래된 미래
김태원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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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000년대 영미희곡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을 골라 개략적으로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서문에서 밝히듯이 아시아계 미국연극, 영국정치극 등 중요한 작품들을 포함시키지 못했다. 이것은 지면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수백 편이 넘는, 주목할 만한 극작품 중에서 단지 16편의 작품이 실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반갑게 느껴지는 건, 그만큼 현대 드라마를 다룬 책을 만나기 힘들어서일지도 모른다. 여러 저자들이 저자와 작품을 소개하고, 간략하게 해설을 덧붙이고 있는데 읽다보니 직접 연극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책은 5부로 되어 있다. 1부는 가족과 사랑, 2부는 섹슈얼리티, 3부는 인종, 민족, 이민, 4부는 전쟁과 폭력, 5부는 연극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1부

1. 도날드 마귤리즈(Donald Marulies, 1954~) <친구들과의 저녁식사>(2000)

   뉴욕 부룩클린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

이 작품은 오랜 기간 우정과 추억을 쌓아온 두 쌍의 부부들의 결혼과 이혼을 통해 관계와 상실을 다루고 있다. 표면적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보였던 한 쌍의 갑작스런 이혼 소식은 그들 모두의 관계 변화를 가져오고, 안정된 가정을 꾸려온 다른 한 쌍의 사랑과 결혼생활이 과연 계속 안녕할 수 있으며 믿을만한 것인지를 불안스런 눈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2막으로 구성된 코미디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에서는 음식과 요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은 주인공들의 사이를 안정되고 친밀하게 묶어주는 공통된 관심사이자 이들의 결속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 트레이시 렛츠(Tray Letts, 1965~) - <8월 오세이지 카운티>(2007)

   오클라호마의 털사에서 교수였던 아버지와 작가였던 어머니 벨리 렛츠 사이에서 태어남.

이 극은 작가의 외할아버지의 익사와 할머니의 마약중독 등 작가의 가족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 자매들은 부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부터 달아나려고 애쓰고 있다. 마약, 가족 상호 비난, 가족 간의 비밀, 진실의 폭로, 폭력, 쇠락해가는 가정 등을 다룬 점에서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나 샘 셰퍼드의 <매장된 아이>와 같은 미국 사실주의 가족극의 전통을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

 

3. 사이먼 스티븐스(Simon Stephens, 1971~) - <광막한 세계의 해변에서>(2005)

    영국 체셔 주의 스톡포트에서 태어남.

스톡포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9개월에 걸쳐서 일어나는 홈스 가족 3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비록 행복한 결말을 맺지만 내면에서 불협화음과 불신 등 가족 구성원 간의 부정적인 감정의 요소들이 작품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다.

 

4. 새라 럴(Sara Ruhl, 1974~) - <클린 하우스>(2004)

미국 태생. 브라운 대학교에서 폴라 보겔 밑에서 드라마 공부 함.

극은 부조리적인 요소와 기묘한 요소들을 지닌 희극이지만, 사실주의적 요소와 낭만주의적 요소가 뒤섞여 있으며, 부조리 기법을 사용하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부조리하지 않다. 이 극은 여성극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청소라는 소재를 통해서 드러나는 세 명 여성들의 희극적 행위와 고백이 영혼을 정화시키고 행복하게 만든다.

 

2부

1. 존 패트릭 섄리(John Patrick Shanley, 1950~) - <다우트>(2004)

   뉴욕에서 태어남. 어렸을 때부터 여러 교육기관으로부터 정학, 퇴학조치를 받음.

이 극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재밌게 보았다.

모두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짧은 연극이고, 가톨릭 교회학교에서 신부와 학생 간의 성적 타락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다. 원장 알로이시스 수녀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우정과 동정심을 보이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엄격한 교육관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학교에 새로 온 플린 신부가 유일한 흑인 학생 뮬러를 성적 타락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의심하게 되자, 신부를 대상으로 추궁과 조사를 해나간다.

   9개의 장면 가운데 3개의 장면은 플린 신부가 교회의 학생들에게 설교하는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 6개의 장면은 주로 알로이시스 원장 수녀가 제임스 수녀, 플린 신부, 도날드 뮬러의 어머니를 만나 자신의 엄격한 교육관과 도덕관, 그리고 학생들이나 플린 신부에 대해 품고 있는 의심에 대해 상대방에게 전달하거나 추궁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극은 확신에 관한 극이 아니라 오히려 모호성에 관한 극이라 할 수 있다.

 

2. 폴라 보겔(Paula Vogel, 1951~) - <운전연습>(1997)

   워싱턴에서 태어남. 오빠가 에이즈에 걸려 죽자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사망을 애도하는 의미로 비영리 병원을 걸립했고 그녀가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그녀 역시 레즈비언으로 2004년 브라운 대학 교수이자 작가인 앤 파우스토 스터링과 결혼했다.

   주인공 리를 빗에게 이모부 펙이 운전연습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펙은 13살부터 어린 리를 빗의 가슴을 만지며 추행을 한다. ㅂ리를 빗은 18살이 되어 대학에 진학하고, 펙이 그녀에게 청혼하자 거절한다. 그 후 그는 직장, 아내, 운전면허증도 잃고 술에 빠져 살다가 실족사한다. 작품의 주제는 순진하고 상처받은 10대 소녀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으로 커가는 리를 빗의 성장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3. 데이비드 해로우어(David Harrower, 1966~) - <블랙버드>(2005)

   에딘버러 출생.

두 명의 등장인물이 극의 거의 대부분을 진행하는 2인극이다. 막장의 구분도 없으며, 장소 전환도 없이 두 등장인물이 한 장소에서 90분동안 서로를 향해,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향해 퍼붓듯이 던지는 질문과 대답으로 극이 이루어진다.

   우나와 레이는 그들이 각각 열두살과 마흔한 살이었을 때 처음 만나서 사랑 혹은 성관계를 맺은 사이이다. 이들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진 뒤 레이는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6년형을 언도받고 3년 이상을 복역했으며, 우나는 성폭행의 피해자로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 극은 그 사건이 있은 뒤 15년이 흐른 상황에서 시작한다. 우나는 우연히 병원 대기실에서 레이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린 잡지를 보았으며, 사진 속 레이의 웃는 모습을 보고 그 길로 여섯 시간 이상 차를 몰고 레이를 찾아왔다.

   우나는 레이가 찍은 자신의 사진들이 어디 있는지, 혹시 더러운 웹사이트에 올린 것은 아닌지 묻는다. 레이는 자신을 소아애호증을 앓는 성도착자와 동일한 부류로 취급하는 우나에게 화를 내며 휴게실을 떠나려는 우나를 붙잡고, 그 때 그 사건이 사랑이었음을 강변한다. 그리고 극은 레이와 우나의 회상을 통해 그때 그 사건이 벌어졌건 시간 속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비로서 우나의 오해가 풀리고 레이는 우나에게 비로소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안고 입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러다 멀리서 피터를 부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가 들어온다. 레이와 현재 동거 중인 여인의 아이가 엄마와 함께 레이를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우나는 그 소녀가 피터의 이름을 부르며 매달리는 것을 보고, 불현듯 레이와 그 소녀의 관계를 의심한다. 레이는 물론 우나의 의심을 극구 부인하며, 자신을 잡는 우나를 뿌리치고 소녀와 함께 휴게실을 떠난다. 그리고 우나는 레이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뒤를 쫒아나간다. 극은 쓰레기가 가득한 빈방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3.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 - <염소, 또는 실비아는 누구인가?>(2002)

   올비는 생후 18일만에 입양된다. 그의 조부는 대부호여서 호사스러운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 사이가 좋지않고, 그도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안 후로는 문제아로 성장한다. 그는 게이 극작가이며, 자신을 어쩌다가 게이가 된 극작가로 인식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극은 염소와 빠진 중년 남자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수간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로 관객을 경악시켰다. 작가는 성적 금기는 부차적이며 실질적으로 이 극은 관용의 한계에 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매우 관대한 사람인 척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틴의 수간이 밝혀지는 순간 평화롭고 성공적이던 그의 가정과 삶은 한순간에 몰락한다. 친구 로스는 그의 고백을 듣는 즉시 그의 부인에게 사실을 알리며 아내 스티비는 염소 실비아를 찾아 살해하고 그 사체를 끌고 온다.

 

3부

1. 닐로 크루즈(Nilo Cruz, 1960) - <열대의 안나>(2002)

   쿠바계 미국인 극작가.

극의 배경은 1929년 플로리다 주 탬파의 한 시거 공장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쿠바계 이주민들로 그들은 새로운 땅인 미국에서 선조들의 방식대로 시거를 만들며 쿠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극은 그들이 지켜가는 전통의 가장 중요한 일부인 낭독자가 새로 시거 공장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새로운 낭독자는 시거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읽어줄 소설로 <안나 카레리나>를 선택하며,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이 소설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삶과 욕망을 돌아보고 이해하며 성장한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전통(낭독자)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2. 알프레드 우리(Alfred Fox Uhry, 1936~) -<밸리후의 마지막 밤>(1997)

   유대계 미국인.

2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성탄절과 독일계 유대인의 사교 모임인 밸리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막에서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집에 돌아온 여대생 서니가 삼촌 회사의 직원인 조 파카스라는 청년을 만나 가까워지면서, 그리고 2막에서는 그와 함께 밸리후에 참석하면서 겪게 되는 사랑과 갈등, 화홰를 그린 낭만 희극이다. 이 극은 반유대주의와 유대성의 정체정 문제를 다루고 있다.

 

3. 브루스 노리스(Bruce Norris, 1960~) -<클라이본 공원>(2009)

   미국 택사스 출신. 배우이자 극작가.

이 극은 가족 코미디로 1막은 1959년에 같은 집을 파는 백인 가정의 입장에서 극을 진행한다. 백인 공동체 대표인 칼 린드너는 흑인들이 백인 거주 지역에 들어옴으로써 집값을 하락시킨다고 주쟁하며 논쟁과 대화를 끌어간다. 2막은 50년이 지난 2009년는 거꾸로 흑인들이 백인들을 자신들의 거주 지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반대를 한다. 이 작품은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백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갈등과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4부

1. 닉 스태포드(Nicl Stafford, 1959~) - <워 호스>(2007)

   영국 스태포드셔에서 태어남.

이 극은 전체 30개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사적인 연극이다. 각 장면은 개별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여러 전쟁터를 넘나드는 사건들을 따라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그 파장을 ‘말’의 시선으로 재현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이 극은 마이클 모퍼고의 어린이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 린 노티지(Lyn Nottage,1964~) -<루인드>(2008)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흑인 작가

극은 여성의 몸을 전장으로 삼는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콩고의 작은 광산 마을에 있는 술집에서, 군인들에 의해 강간과 윤간을 당하고 그로 입은 피해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전쟁을 극대화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3. 마틴 맥노나(Martin McDonagh, ) -<필로우맨>(2003)

   아일랜드 이민자 집단 거주지역인 런던의 엘러펀트 앤 캐슬에서 아일랜드 아민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청소년기는 방황, 좌절, 갈등, 폭력 등으로 점철됨.

극에는 9편의 짧은 스토리들이 마치 연극속의 연극처럼 삽입되어 있다. <필로우맨> 극의 제목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스토리에서 따온 것이다. 9편의 스토리는 투폴스키의 귀머거리 소년 스토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어린아이들을 고문하고, 신체를 훼손하고 살인하는 엽기적인 내용들이다.

   이극은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으로 관객들을 충격과 공포로 전율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아마추어 작가인 주인공 카투리안은 어린아이 세 명의 실종 및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어, 취조실에 갖힌 채 심문을 당한다. 자신의 형 마이클이 자신의 스토리를 모방하여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든 형을 베개로 질식사시키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감당하기로 한다. 그는 자신이 살인범으로 거짓 고백하고, 자신의 스토리를 살려달라고 한다.

이 극이 관객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창작과 그것의 윤리에 관한 것이다.

 

5부

1. 존 로건(John David Logan, 1961~) - <레드>(2009)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출생.

극은 1950~1960년대 추상화로 대중의 주목을 받던 실존인물 마크 로스코가 뉴욕의 한 레스토랑 벽화를 의뢰받고, 가상인물인 켄과 함께 그림을 작업하면서 벌이는 작가의식과 시대 조류, 예술적 표현과 관련된 고민, 대중과 예술 사이에서의 갈등을 그리는 연극이다.

 

2. 닐 라뷰트(Leil Labute, 1963~) -<사물의 형상>(2001)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남.

에블린라는 여성이 아담이라는 남자를 만나 그의 의상, 스타일, 머리, 몸 등을 개선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필름에 담아 자신의 논문 프로젝트에서 발표한다. 에블린은 자신이 아담의 부정적인 내적 변화를 집어내 새롭고 더욱 호감이 가고 성공적인 아담의 외면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담의 겉모습은 아름다워졌을지 모르지만, 속은 금이 간 예술품이 되었다. 예전부터 아담이 입었던 블래이저라고 주장하는 재킷은 버려지고 변화된 아담이 갈아입는 옷들은 누구나 입는 평범한 재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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