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Flag (Paperback)
Myung Mi Kim / Kelsey Street Pr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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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미 김은 1957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시인이며 포스트 모던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시인의 가족은 그녀가 9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오벌린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86년 아이오와 대학에서 예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명미 김은 현재 버팔로에 있는 한 대학에서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는 1992년 Under Flag으로 “다문화 출판도서상”(Multicultural Publishers' Book Award)을 받았다. 시집에는 영어를 배우기 위한 노력, 반독재에 투쟁하는 시민들, 한국전쟁과 거대한 이주에 의해 형성되어 온 미국 시민으로서의 무수한 경험 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시를 읽어보니 이해하기가 대단히 쉽지 않다. 읽어도 읽어도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한국의 역사를 모른다면 잡아내기 힘든 부분도 많다. 그녀의 첫 시집 <깃발 밑에서>는 나중에 나온 시집보다 쉽고, 서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첫 시집에서 그녀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시를 쓸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2006년 어느 인터뷰에서 명미 김은 Under Flag 내용이 자본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와 관련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집합적 기억, 언어의 억압, 군국주의의 폭력, 역사적 의식의 책임에 관한 질문에 대해 쓴 것이라고 말하였다.

   명미 김은 종종 문법에 어긋나는 영어와 파편화된 단어를 사용하고, 시 안에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들이 등장한다. 명미 김은 이러한 언어를 의도적으로 넣음으로써 이 시대의 지배언어인 영어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아닐까? 시 중간에 불쑥 한글을 넣음으로써 영어로는 도저히 표현(해석)할 수 없는 내용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은 아닐까?

   또한 그녀는 모호한 지시어들(저기 너머, 그것, 그들, 그 때 등)을 사용하여 독자들이 확실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든다. 어찌 보면 명미 김은 독자가 시 안에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도록 틈(space)을 허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틈이 너무 넓어 어떤 해석이 맞는지, 어디까지 해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너무 먼 당신, 명미김을 보라.

 

* Books of poetry

Under Flag - Kelsey St. Press, 1991, reprinted. 1998 and 2008

The Bounty - Chax Press, 1996, reprinted. 2000

Dura- Sun & Moon Press, 1999

Spelt (with Susan Gevirtz) - a+bend press, 2000

Commons -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River Antes - Buffalo: Atticus/Finch, 2006

Penury - Omnidawn Publishin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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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 문화저널리스트 박진현의
박진현 지음 / 예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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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미술관에서 <미국 미술 300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람들이 좀 덜 붐빌 때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오키프와 로스코 그림이 기대된다. 작품 수는 별로 없다고 하지만. (그나저나 한국에서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를 볼 수는 없는 걸까?) 이 책은 1년 전에 봤던 책인데 이번에 미국 미술전도 열리고 해서 다시 한번 읽었다. 그림만 봐도 재밌구나. 미국에 있는 미술관을 전부는 아니고 꽤 많이 소개해 주고 있는데 미술관을건립한 창시자와 미술관의 하이라이트 작품을 잘 설명해주고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 중 몇 곳을 뽑아 보았다.

 

1. Smithsonian institution - 산하에 19곳의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하나의 국립동물원을 거느리고 있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 단지이다. 스미스소니언은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스미스순의 유산 50만 달러를 모테로 1846년 설립되었다. 사생아로 태어난 스미스순은 어머니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 말년에 그의 재산을 영국에 기증하려고 했다. 그러나 엄격한 영국사회는 그가 사생아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동생의 아들인 헨리 제임스 디킨슨에게 재산을 넘기면서 “만약 네가 자손이 없을 경우 이 재산은 모두 미국으로 보내라.” 라고 유언을 했고 이 유산 때문에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 세워질 수 있었다 .

 

2. Hirshhorn museum & Sculpture garden - 화려한 야외 조각 공원으로 유명하다.

 

3. National gallery of art & Sculpture garden - 워싱턴 국립 미술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지네브라 데 벤치> 그림을 소장한 미국 유일의 미술관. 다 빈치는 약 15년의 간격을 두고 여인의 초상화를 3점 그렸다고 한다. 바로 <비네브라 데 빈체>, <체칠리아 갈레라니>, <모나리자>이다. 정원에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집1>, 루이즈 부르주아 <거미>, 클래스 올덴버그 <타자기 지우개> 등이 있다.

 

4. Philips collection - ‘마크 로스코의 방’이 유명하다. 그 역시 그 방을 좋아했다고 한다. 조지아 오키프를 발굴한 미술관이기도 하다.

 

5. George Washington's Mount Vernon -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저택이었으나 사람들이 찾지 않는 쓸쓸한 곳으로 전락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교계의 명사 커닝햄 여사가 영향력 있는 여성들과 함께 ‘마운트 버넌 여성 협의회’를 결성해 기부금을 모았고 다시 재건하였다.

 

6. Metropolitan museum of art - 대영 미술관, 루브르 미술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곳이다. 미술관 연평균 관람객이 약 500만명이라고 한다.

7. Museum of

 modern art - 일명 모마라고 불린다. 에비 록펠러, 메리 퀸 설리반, 릴리 블리스 세 여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29년 어려운 시기에 문을 열었다. 현대회화와 조각으로 구성된 3200점 컬렉션을 자랑한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이 있다.

 

8.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 칸딘스키 컬렉션이 독보적이다.

 

9.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젊은 작가들의 후원자로서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던 휘트니 여사는 이들 작품을 기증하겠다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밝혔다. 그러나 미술관이 ‘검증되지도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받을 수 없다’는 듯 거부 의사를 전해왔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휘트니 여사는 직접 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했는데 이것이 바로 휘트니 미술관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2500여점이 있다. 레지널드 마쉬 작품 또한 많다. 무명의 젊은 작가들에게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한 행동하는 미술관이다.

 

10. Brooklyn museum - 일명 빌바오 효과를 이룬 곳. 우범 지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브루클린에 미술관이 생긴 후 문화 특구로 변신함.

 

11. Museum of fine arts, Boston - 세계 최고의 19세기 회화 컬렉션. 존 싱어 사전트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반 고흐 <우체부 조셉 룰랭> 이 백미이다.

 

12. Philadelphia museum of art -영화 <록키1>에서 록키가 매일 아침 챔피언의 꿈을 키우며 오르던 72개의 계단으로 유명한 곳. 토머스 에이킨스 <그로스 클리닉>이 있다.

 

13.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인상주의 작품들이 훌륭하다. 조르주 쇠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구스타프 카유보트 <비오는 날의 파리 거리>,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이 백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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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특별한 미술관 - 메트로폴리탄에서 모마까지 예술 도시 뉴욕의 미술관 산책
권이선.이수형 지음 / 아트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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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그대로 뉴욕의 미술관들만 모아 소개한 책이다. 뉴욕에 여행을 간다면 이 책을 가지고 가면 딱일 듯 싶다. 아직 미국을 한번도 가지 못했기에 책을 읽으며 아쉬움을 달랠 뿐. 언젠가 뉴욕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미술관과 공연장을 돌아다닐 거라는 계획을 세워놓기는 했지만, 아직 몇 년이나 남았다. 에휴.

   책에는 뉴욕 대표 미술관 7곳을 골라 자세하게 소개해 놓았다. 미술관 각 층마다 도면을 그려놓고, 어떤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지 알려주고 있어 꼭 TV를 보는 느낌이다. 중요한 그림 사진도 한 면에 한 작품이라 살펴보기 좋다. 작품 아래 친절한 설명까지 있다.

   책 맨 뒷 쪽에 부록이 있는데 간략하게 뉴욕 예술 70년을 소개하고 있다. 요약해보자면,

 

   20세기,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 예술의 발전은 미국이라는 신흥 대국의 성장사와 그 궤를 같이 해왔다. 나치의 탄압은 몬드리안, 달리, 레제, 샤갈 등이 뉴욕으로 이주, 정착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1940-50년대 - 유럽 출신 및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활약시대이다. 이러한 발전은 예술가들을 대대적으로 지원해준 갤러리들 덕분이다. 특히 1942년 페기 구겐하임이 유럽 출신의 전위 예술가나 젊은 미국 작가들을 후원해 준 공적이 크다.

   1960-70년대 - 팝아트로 대변되는 예술의 대중화이다. 1961년 독일에서 활동하던 조지 마키우나스가 소개한 플럭서스 운동부터 클래스 올덴버그나 앤디 워홀에 이르기까지 추상표현주의에서 촉발되어 팝아트에 이르는 흐름속에 내재한 자유로움은 이후 미국 발전에서 일관되게 발견할 수 있다. 앤디워홀의 친근한 미디어의 활용은 속물적인 부분을 금기시하던 예술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대중소비사회는 팝아트를 환영했다.

   1970년대 - 언어와 개념이 지배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등장이다. 예술가의 손이 닿은 흔적을 극도로 제한해 아름다움의 과잉과 예술품의 기능성을 경계했던 것이 미니멀리즘이다.

   1980년대 - 소호에서 대안 공간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판매해 돈을 버는 상업 갤러리와는 달리 공공기금이나 재단, 개인등의 기부에 의해 운영되는 비영리 갤러리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하거나 판매가 잘 되는 작품 활동으로만 작가를 내몰지 않아도 되었기에 보다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지원할 수 있었다. 또한 히스패닉과 아프리카계 예술가들의 그라피티가 하나의 예술양식으로 진화한 점 역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1990년대 - 다문화주의와 신기술에 기반을 둔 예술 분야의 발전이 도드라진다. 창작자 측면에서는 여성, 동성애자, 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시선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대거 늘어났다. 신디 셔먼, 제니 홀처, 바버라 크루거 등은 사진이나 텍스트를 통해 성이라는 문제를 본격 제기했다. 신기술 면에서는 대중화된 인터넷과 기술 혁신으로 인해 미디어 아트가 새로운 미술 형식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2000년에 개최된 비엔날레에서는 웹 디자인이 새로운 부문으로 신설되었고, 비디오를 활용한 작품들이 급증하면서 대중과 평단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0년대 -21세기에 들어서며 예술계는 미국 내의 소수를 의식한 다문화주의와 해외의 가능성 있는 예술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0년 세계 경매시장에서 거래된 중국 작가는 톱 10안에 총 4명이나 포함되며 중국 현대 미술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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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의 색면 예술 - 숭고한 아름다움의 미학
도어 애쉬턴 지음, 김광우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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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로스코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은 존 로건(John David Logan)이 로스코에 관해 쓴 연극<레드>(2009)에 관한 줄거리를 읽고 나서부터이다. 예전에는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이건 뭐지? 하면서 지나쳤는데 이제라도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책을 펼쳤다. 책을 쓴 저자는 로스코가 젋은 시절부터 타계한 1970년까지 약 18년에 걸쳐 그와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로스코를 낱낱이 파헤치는 느낌이다. 로스코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수많은 화가들이 등장하고, 그가 작품을 그릴 당시 시대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에서 유태인 가정의 막내로 태어났고 부모는 열렬한 시온주의자들이었다. 그가 5살 때 아버지 요셉은 그를 종교학교로 보냈으며 거기서 그는 랍비에게 탈무드와 히랍어를 배웠다. 인문학 교육을 받으면서 교사의 엄격함을 강요받아 그것이 권위에 대한 로스코의 후천적 증오로 연결되었을 거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로스코고 7살 때 가족은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갔으며 포크랜드에 정착한 후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똑똑했던 로스코는 1921년에 예일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으나 중퇴하였으며, 그 후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들어가 맥스 웨버 밑에서 공부했다. 로스코는 1928년에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으나 금방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몇 년 동안 그의 주 수입원은 교직이었다.

   로스코는 밀턴 에이버리의 대담한 색채 사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제 현대 회화는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 그는 재현적인 주제보다는 형태, 공간, 색채 등의 형식적인 면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추상적인 그림이 아니었지만 점점 그의 그림은 단순해졌고 1940년대 말, 로스코는 재현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완전한 추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캠퍼스에 두 개 혹은 세 개의 단일 색으로 화면을 가득 칠하는 방식이었다. 1961년에 로스코는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두며 뉴욕 근대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그러나 예술적으로 슬럼프를 겪으며 건강마저 나빠졌던 그는 1970년에 그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모모 미술관에는 그의 작품만 따로 모아 놓은 방이 있고, 살아생전 로스코도 그 방에서 몇 시간이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로스코의 전기를 읽으니 그의 그림이 새롭게 보인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구나. 앞으로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되면 오래도록 서서 바라봐야겠다.

 

# 로스코가 갈구한 명료함은 천천히 드러났다. 1930년대 중반부터 후반 사이에 로스코는 자신의 회화적 문제들을 다양한 목소리로, 다양한 접근으로 끊임없이 실험했다. 표현을 위한 가능한 입지조건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그의 정체성은 캔버스에 쉽게 해명되어 나타나지 않았다. 음악의 중요성에 관한 힌트들이 몇몇 스케치와 구아슈작품을 통해 음악가들,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로 나타났을 뿐이다. 비극에 관한 그의 성찰의 연상 또한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구성의 평편함에서 드러났다. 플라자, 도심의 거리, 실내의 깊이를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그는 폭이 좁은 무대를 가장했으며, 배경, 줄이 있는 기둥, 비자연적인 버팀목의 환영을 앙양했다. 78

 

# 우리에게 미술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탐험할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세계로 진입하는 모험이다. 101

 

# 로스코는 말이 없었고 완강해졌다. 내 생각에 이는 그가 예술이 아닌 존재 속으로 끌려가는 것을 느꼈을 때 매번 일어났다. 그는 매우 피곤해보였다. 그는 멜에게 말했다. “내가 모마에서 여가를 보내면서 마티스의 <붉은 아틀리에>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당신 기억이 나? 당신은 말하기를 왜 항상 그 그림이었어요?라고 했지. 당신은 내가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 집에 대해서 당신은 마티스의 <붉은 아틀리에>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요. 그 때 수개월 동안 매일 그것을 바라본 것이 나의 모든 그림들을 태어나게 만든 거요.”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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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미학 - 니체에서 후기구조주의까지
피종호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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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진지하고 예술은 명랑하다 -실러의 희곡 <발렌슈타인> 프롤로그 마지막 행

 

    얼마 전 친구가 아는 지인들과 합석하여 밥을 먹었는데, 그 중에 곧 새 영화 개봉을 앞둔 젊은 영화감독 한분이 있었다. 홍상수 영화의 여파로 감독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에 바로 앞자리에 앉았지만 별로 대화를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 감독이 강사로 있는 대학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가 흘러갔고 곧 우리는 ‘미학’에 관해 살짝 열띤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벤야민, 아도르노부터 시작하여 보드리야르,엔디워홀이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그는 엔디워홀을 매몰차게 저평가하였으나 글쎄....) 니체까지 이르렀을 때, 문득 니체에 관한 책은 거의 읽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잠자코 입을 다물고 감독의 말을 경청할 뿐. 그는 미학 담론에서 니체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그러니 도서관에서 <해체 미학> 아래 적힌 “니체에서 후기구조주의까지”라는 소제목을 보았을 때 주저 없이 손을 뻗은 건 당연했다.

   이 책은 저자인 교수가 그동안 쓴 논문들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왠지 공부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총 9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고, 니체의 디오니소스 신화로 시작하여 보드리야르의 몸의 위기로 끝이 난다. 논문답게 독자들이 모든 학자들의 이론을 기본적으로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고 있기에 대충 읽어도 어렵고 꼼꼼하게 읽어도 어렵다. 이해가 안된 상태로 책장을 넘긴 부분도 많지만 9편의 논문을 읽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니체는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초인의 이미지는 ‘바다, 번개, 광기, 마지막 인간, 창조하면서도 몰락하는 자’ 등 비유적으로 나타난다. 삶에 집착하는 니체는 현실주의적인 니힐리스트이면서도, 디오니소스의 세계가 도래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주의자이다. 니힐리즘에 대항하는 니체의 웃음은 이성비판적 웃음이다. ‘크게 웃는’ 초인의 웃음은 현실의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면서도 세계를 고찰하는 방법이다. 그는 미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미’라고 규정한다. 그의 미학은 원칙적으로 인간이 아름답다는 명제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추악함을 드러내는 삶의 범주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거하던 산에서 내려온 차라투스트라가 인간에게 삶의 의지에 대해 설파하는 것이 곧 진리이다. 이 진리는 고통과 관능적 쾌락 속에서 인간을 초인으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1916년에 시작된 다다이즘은 “초현실주의 선언문”이 처음으로 발표된 1924년까지 유럽에 널리 퍼진 문학 및 예술운동으로 표현주의, 큐비즘, 미래주의와 상호연관성을 지닌다. 다다이스트들의 출발점은 표현주의라고 볼 수 있지만, 큐비즘과 미래주의의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다다이즘이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는 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삶에서도 실현되도록 구상한 것이다. 이는 유럽의 이성주의와 휴머니즘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부르주아의 삶을 비판하는 광범위한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다이즘의 우연의 미학은 예술기법적인 면에서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문조각, 벽보, 머리카락, 모래, 유리 등을 붙여 만든 콜라주, 동시성의 기법에 영향을 받은 자동기술법, 실제의 대상물을 문지르면서 이미지가 드러나 보이게 하는 기법인 프로타주, 물건의 폐품을 모아서 만드는 기법인 아상블리주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아도르노는 헤겔보다도 더 예술의 정신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그는 헤겔의 미학적 합리성을 부정하면서,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미 자체를 모방한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이 자연미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미 그 자체를 모방하는 것이다. 유대주의에 정신적 뿌리를 두고 있는 아도르노는 1930년대의 독일의 파시즘을 역사진행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형식적으로 합리주의를 표방하는 서구문명의 극치라고 이해한다. 벤야민이 대중과 문화예술의 치유적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반면에 아도르노는 기만적인 관계를 기술한다. 그에게 있어 대중예술은 조작에 의해 대중을 지배하고 동일성을 강요하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다. 그 중 재즈음악의 아도르노의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재즈음악은 능동적이고 주관성을 자극하는 쇤베르크의 무조음악과는 반대로 상품적인 대중음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음악은 교환의 강요아래 놓여 있다.

 

   상징주의자인 발레리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순수문학의 대변자이다. 발레리가 구상하고 있는 우연의 미학은 비정치적이면서 정치적이며, 예술의 자율성을 갖게하면서도 참여예술을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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