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ickencoop Chinaman and the Year of the Dragon: Two Plays (Paperback)
Frank Chin / Univ of Washington Pr / 198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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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친은 아시아 드라마의 대부로 불려진다. 그는 1940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는데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뉴욕의 메이저 극장에 자신의 드라마를 상영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일관되어 있다. 중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서구의 입맛에 맞게 정형화된 그들의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중국인의 정체성을 남성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프랭크 친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는데, 특히 페미니스트 작가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프랭크 친과 맥신 홍 킹스턴의 논쟁은 매우 유명하며 흥미로운 사건이다.

   <용의 해>는 처음으로 아시아계 주인공들이 무대에 등장한 드라마이다. 그러면서도 미국 드라마의 뿌리와 맞닿아 있는데, 가족 해체라던가 아버지 문제를 다룬 것이 그것이다. 작품을 읽다보면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과 기본 구조가 같다. (비프와 해피를 프레드와 조니로 대입할 수 있다.) 작품을 읽다보면, 대체 이게 영어인지 중국어인지 모를정도로 피진(pidgin)영어 사용이 심하다. 특히 Pa의 대사는 소리 내어 읽어야만 어떤 영어인지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작가가 작품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차이나타운이다. 그리고 동시에 실제 중국인 가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통, 아름다운 음식으로 대변되는 차이나타운과 화장실에서 배변을 보고, 밥을 먹는 중국인 가정을 함께 보여주는 현명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 프레드(FRED)는 차이나타운의 투어 가이드이다. 그는 맏아들로써의 부담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눌러야하는 처지이다. 따라서 그의 언어는 분노에 차 있으며,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이 대사 곳곳에 묻어난다. 그는 남성성을 잃은 형태로 묘사된다. 투어 가이드에다 요리책을 쓰는 작가로 나오는데 이는 동양성의 축소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파(PA)는 아시아인의 정형성을 보여준다. 그의 권위주의와 독재는 Yes 아니면 No의 질문으로 나타난다. 작품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정형화된 파의 모습에 화가 날 정도였다. 시스(SIS)는 백인과 동화되려는 여성이며 한편으로는 아메리카 드림을 성공적으로 이룬 표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로스(ROSS)는 관객의 시선(백인)을 대변하고 있는데, 1974년 그 당시 이 연극을 보러 온 대다수의 백인들은 로스처럼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프랭크 친이 로스라는 인물을 창조한 것은 대단한 발상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생동감이 넘친다. 분노가 폭발하고, 서로의 말이 탁구공 치듯 오고 간다. 밖에서는 새해를 축하하는 폭죽이 터지고, 아파트 안은 중국인 가족으로 가득하다. 남성성을 너무 강조하였기 때문에 프랭크 친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작품이 잘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여전히 저돌적이며, 유투브에서 그가 나온 영상을 본다면, 이를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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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Journal of the Plague Year (Paperback) - Being Observations or Memorials of the Most Remarkable Occurrences, As Well Publick As Private, Which Happened in London During the Last Great Oxford World's Classics 55
Defoe, Daniel / Oxford Univ Pr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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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드포의 잘 알려진 저서로는 <로빈슨 크루소>가 있고, 사실 드포의 책은 이것밖에 생각이 안난다. 1660년에 태어난 작가라 그런지 그의 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 책은 1665년에 일어났던 페스트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와 구체적 상황을 제공하는 연대기적 작품이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대체 이건 뭐지? 소설인가? 역사적 보고서인가 고민이 되었다. 일반적인 줄거리가 없이 페스트의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통계자료, 그 당시 재앙을 당했던 사람들의 반응을 자세하기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소설로 분류하는 이유는 작가가 허구의 주인공 H.F를 내세우고, 페스트를 겪는 사람들의 사적인 경험을 기술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 속에 이미 허구적 요소가 있는 것이다.

   드포가 살았던 1719년은 해외의 페스트가 배편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던 시기였다. 이때 드포는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당시 기고하고 있던 저널에 페스트의 참상을 소개하여 사람들의 경각심을 촉구하였다. 이에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1772년 이 책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출간될 쯤에는 프랑스의 페스트가 스러져가고 영국에 침입할 기세도 거의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책에서 그리고 있는 페스트의 재앙은 끔찍하다. 그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 페스트로 인해 죽었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책에는 페스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 당국의 가옥폐쇄 조치, 진실을 왜곡하는 사망기사,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꿈 해몽과 점성사들의 예고 등이 시기순으로 기술되고 있다. 꼭 페스트에 관한 신문 기사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페스트를 다루고 있는 책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카뮈의 <페스트>일 것이다. 그렇다면 카뮈와 드포는 왜 페스트를 소재로 소설을 썼을까? 두 작가들이 이것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페스트는 일상 경험에서는 파악될 수 없는 알 수 없는 세계이다. 이 세계는 상상적 관점으로만 접근해야만 하는 재난인 것이다. 페스트는 인간에게 공포를 야기하며 인간이 논리적으로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없게 한다. 통제 불능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페스트라는 재난이 알 수 없는(unknowable) 세계를 상징하듯 타자의 세계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타자와의 관계가 블랑쇼가 표현한 바에 의하면 ‘바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사람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다. 타인과의 만남에서 서로의 본질을 보여주며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블랑쇼를 좀 더 읽어봐야겠다. 뭔가 답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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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들의 목소리 - 시민과 디아스포라 사이 사이 시리즈 6
이선주 지음 / 그린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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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비 출판사에서 만들었다. 믿음이 간다. 이 책은 디아스포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즘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가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책도 다 이런 책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 학자들의 담론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힌다. 디아스포라를 다룬 소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존 오카다의 <노노보이>, 창래 리의 <네이티브 스피커>, <제스처 라이프>, 수키 김의 <통역사>, 카렌 테이 야마시타의 <오렌지 회귀선>이 그 주인공이다. 수키 김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저자는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기 위해 시민권의 역사부터 시작한다. 기초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해도 빠르고 정리도 잘된다. 이제 디아스포라에 관해서는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공부할 내용이 많구나.

   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두려움과 경계심을 가질까?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에게 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인간이라는 공통점 하나로는 부족한 것일까? 역사적으로 디아스포라가 받은 차별을 공부하다 보면 섬뜩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럽과 미국에서 비인간적인 이민자 차별법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여전히 많다. 세계는 하나라고 떠들지만, 여전히 민족국가는 존재하고, 국가에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민족국가의 개념은 활발하게 부활한다. 세계는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다양한 피부색이 함께 모여 평등하게 사는 미래도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외국에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디아스포라는 기원전 607년 이스라엘에서 바빌론 사람들에게 쫒겨났던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성서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용어이다. 현재도 첫글자를 대문자로 쓸 때에는 바빌로니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유대인들을 특정하게 지칭한다. 히브리 성서가 고대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그리스인들이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은 뒤 그곳으로 자국민을 이주시키면서 이들 이주민을 디아스포라라고 칭하였다. 디아스포라는 ‘흩어진 자들’ 또는 ‘산포된 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37

 

   피부색이 다른 아시아인들의 경우에는 미국으로의 이주 조건이 유럽인의 경우보다 훨씬 강제적이고 열악했다. 서구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포화를 맞은 중국인과 인도인이 맨 먼저 국제적 노동시장으로 떠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쿨리(Coolie)로 상징되는 계약노동자로서 미국과 하와이에 들어갔다. 183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이루어진 인도인과 중국인의 쿨리 교역 규모는 3,700만 명에 이른다 한다. 이 수는 신대륙으로 이주한 유럽인의 이민자 수보다도 더 많다. 쿨리는 계약노동자로서 인력 충원업자에 의해 모집되어 선불금과 이동 비용을 빌미로 고용주에게 팔아넘겨진다. 그들은 고용주에게 진 빛을 상환하기 위해 계약노동을 해야 했으며,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이나 서부의 철도 공사장 등 가장 힘든 노동 현장에 투입되었다. 42.

 

   미국은 자본주의의 폭발적인 팽창과 서부개발에 따른 극심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여러 법적 절차를 만들고 수정한다. 1844년 미국은 중국과 통상을 개시하고 규제하는 조약을 체결하였고, 중국인도 다른 나라 출신의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1868년 조약은 시민권 취득이 가능함을 명문화하면서 대신 중국에게 미국 상품에 대한 문호 개방과 중국인의 해외 송출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1882년 ‘중국인 배제법’으로 이를 번복하여 중국인의 이민을 중지시킨다. 그 일차적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미국에 정착한 중국인의 수가 10만을 넘어서자 미국 당국은 중국인의 세력화와 이에 따른 임금 상승이 염려되기 시작했고, 이에 일본인이나 필리핀인 등 다른 아시아인들을 들어오게 함으로써 이를 견제하고자 했다. 중국인을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대신 1885년부터 일본인 쿨리를 수입하였다.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과 서부의 건설 현장은 일본인들로 빠르게 채워졌다. 1920년대까지 일본인 약 20만 명이 하와이로 이주해 왔다. 그러다가 일본인 수가 많아지면서 파업이 발생하는 등 노동 통제에 어려움을 겪에 되자 조선인 노동자를 충원하기 시작하여 1903년에서 1905년 사이에 7,000여 명을 하와이로 들어오게 한다. 미국은 이처럼 파업 억제와 임금 인하를 위해 같은 민족의 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들을 들여왔다. 이러던 것도 1924년에 개정된 이민법에 의해 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 특히 중국, 일본,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은 약 40년 넘게 금지되기에 이른다. 43.

 

   <통역사>에서 문화번역은 일방통행이다. 주류 문화는 변화하지 않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따라야만 하는 원본으로 인식된다. 주류 사회는 이민자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그것을 이해할 필요성도 잘 느끼지 못했다. 이민자들은 주류 사회에서 제대로 번역되지 못하는데, 심지어 가장 정확하게 번역되어야 할 법정에서도 그렇다.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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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 예술의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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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미술을 철학과 접목시켜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 다른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으로만 놓고 본다면, 문체가 아름답다. 예술을 철학적으로 설명해서 그런가? 문장은 어렵다가도 쉽고, 수필 같으면서도 정보를 담고 있다. 책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하여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에 발견된 작품의 양상과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대 순으로 읽으니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쉽고, 그림도 있어 매우 재밌게 읽었다. 특히 고딕 양식을 소개하면서 건축적인 부분까지 함께 곁들어 설명하여 무척 흥미진진하였다.

 

   구석기 시대 - 동굴벽화. 이 시대의 그림은 빛과 곡선 입체감이 살아있다.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놓은 구석기인들은 우주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의식(주술)은 사실 그들에게는 하나의 과학이었다. 예를 들면, 들판에 물을 뿌리면 비가 내려 가뭄의 고통이 끝날 것이라 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므로 동굴 벽에 그려진 동물 그림이 있으면 동굴 밖으로 사냥을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언제가 되었든 동물은 잡히기 마련이었다.

 

   신석기 미술과 이집트 미술 - 신석기 회화에는 구석기 동굴벽화에 풍부하게 존재했던 화려한 색채와 박진적인 자연주의적 기법이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이 시대 예술은 감각적이라기보다는 사유적이고 시각적이라기보다는 개념적이다. 신석기 시대의 인류는 자신의 감각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아마도 구석기들이 믿어왔던 인과관계(여러 차례 기우제를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끝내 오지 않는 것 등등)가 전면적인 오류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석기시대 인들은 아마도 최초의 실존적 고통에 맞닥뜨렸을 것이다. 이들에게 삶을 규제하는 원칙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고 신은 매우 엄격하고 무서운 존재이다.

   이집트시대의 예술은 ‘정면성의 원리’를 사용한다. 그들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기보다는 생각하는 대로 그렸다. 그들의 세계는 지극히 관념적이다. 즉 물리적 세계가 인간의 감각이 파악하는 법칙이 아니라 천상적 규범에 따라 운행된다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이집트 그림은 얼굴은 옆면이, 눈과 가슴은 전면이, 발은 안쪽이 그려지게 된다. 이 부조의 존재 의의는 분명하다. 이것은 하나의 예술이라기보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작업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얼마만큼 위대한 인물이며, 위풍당당한 풍채를 가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스 고전주의 - 그리스의 인물상들은 어딘가 영원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는 듯한 아득한 느낌을 주며 동시에 초연한 무상성과 무관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스인들은 고전주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자연주의적이기도 했다. 그들은 예술은 아름다움 자체만을 위한, 학문은 지성 그 자체만을 위한 동기를 지녀야 한다고 믿었으며 또한 그것을 과감하게 실천해 나갔다.

 

   로마제국의 예술 - 로마의 전통적인 예술은 상당히 사실주의적이며 실천적이었다. 로마인들은 ‘미를 위한 미’의 개념에 냉담했다. 그들에게 예술은 생존경쟁에서 하나의 직접적인 무기에 불과할 뿐, 보고문이나 설명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로마인들은 공간을 절약한다. 그들은 한정된 장면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그리스 예술 특뷰의 음악적인 우아함과 율동은 사라진다. 로마인들은 시를 희생시키고 산문을 택한다. 로마의 예술은 그림으로 읽는 이야기이다. 그리스의 인물상들은 대체로 젊고 균형잡힌 몸매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인물상은 주로 나이든 사람들을 주제로 한다. 로마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힘, 권력이었다. 그리스 인물상들은 전신상이지만 로마인들의 인물상들은 대체로 흉상이나 두상이다.

 

   고딕 - 12세기. 그리스 신전이나 로마네스크 건조물들이 지표와 평행이 되는 천개와 그것을 떠받치는 기둥과 벽이라는 수평선과 수직성의 비례적 균형에 중심을 둔다면, 고딕 성당은 하늘을 향한 수직적 운동을 강조한다. 즉 가늘고 섬세한 선들이 마치 바퀴살처럼 하늘을 향하는 상승운동을 보여줌으로써 수평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안정적 요소가 본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때 천상과 지상은 분리되고 만다. 신은 인간적 이해가 미칠 수 없는 머나먼 곳의 무한자가 된다. 이러한 수직적 구도는 성당 입구의 문설주에 부속된 인물들의 조각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난다. 고딕 성당의 경이로움은 그 엄청난 규모와 대비되는 전체적인 가뜬함이다.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빛과 기둥의 요철이 희미하면서도 떠오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딕의 빛은 신비의 빛이다. 고딕 건물은 그 내부에 어떤 특권을 지닌 공간도 인정하지 않는다. 첨형아치, 복합기둥, 공중부벽의 세 가지 요소는 그 자체가 자기 충족적이고 자기 지지적인 것이 되어 독립적 골조를 구성한다.

 

   르네상스 - 13세기. 이 시대를 기점으로 서구사회는 스스로의 세계와 삶을 규정지었던 기독교적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세계관은 종교적으로는 종교개혁을 불러왔다. 르네상스인들은 교회의 세속화를 막고 성직자나 독신가를 현실세계에서 분리시키고자 새로운 철학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성서를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지상세계는 신과 교회의 권위로부터 독립해 나갔다. 지오토, 기베르티, 레오나르도 다빈치,라파엘로 등의 화가가 유명하다.

 

   마니에리즘 -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냉정하고 메마른 형식주의. 마니에리즘의 개시는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불안과 동요로 나타난다. 이 시대 그림은 르네상스의 절제되고 안정된 고전적 조화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세계, 즉 뿌리깊은 내적 불안과 동요로 물든 다른 세계를 제시한다.

 

   바로크 - 르네상스 예술이 구심력이라면 바로크 예술은 원심력이다. 미술사가인 하인리히 뵐플린은 이를 다섯 개의 대립 쌍으로 설명한다. 첫째,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이다. 두번째, 평면적인 것과 심층적인 것이다. 셋째, 닫힌 형식과 열린 형식이다. 넷째, 다원성과 통일성이다. 다섯 번째, 절대적 명료성과 상대적 명료성이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구성, 광선, 색조 등의 중요한 회화적 요소들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설명과 담화를 보조하는 입장에 있게 된다. 그러나 바로크 회화에서는 오히려 사물의 존재가 여러 회화적 요소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루벤스,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의 화가가 있다.

 

   로코코 -18세기. 로코코는 자연법에 기초하고 있으며, 상당히 향락적이고 세속적인 예술이다. 이 시대의 이념은 지상적 행복이자 신의 소멸이었다. 이제 인간의 삶에서 지상적 즐거움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주제는 주로 공원이나 섬 등에서 펼쳐지는 향락적인 연회나 소풍, 혹은 숲 속의 음악 연습 등을 보여준다.

 

   신고전주의 - 신고전주의는 거의 전적으로 프랑스 고유의 운동이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안일하고 향락에 빠져 있는 프랑스 귀족의 삶을 경멸하였다. 그들은 반로코코를 주장한다. 형식보다는 소재에 있어서 전형적인 로코코가 아니면 괜찮았다. 자크 루이 다비드, 바롱 앙투안 장 그로 등이 있다.

 

   낭만주의 - 18세기 말-19세기 초. 낭만주의는 우리의 이성이 진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이제 모든 것에 대하여 가치의 무차별화가 진행되며 어느 것이든 균등한 가치를 누리게 된다. 동시에 문명과 권위와 절도도 폐기된다. 이제 멀고 이국적인 주제가 중요시된다. 낭만주의에는 완성이 없고 제한이 없다. 테오도르 제리코, 들라쿠루아, 오귀스트 프레오가 있다.

사실주의 - 귀스타브 쿠르베는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감정이나 상상력을 강조하는 낭만주의는 그 시대가 처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예술가들은 모름지기 자기 자신의 직접적 경험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인상주의 - 보통 현대미술은 인상주의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인상주의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화가가 순수하게 지각적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술가는 우선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사건과는 동떨어져 살아야 했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사건의 외면적 양태, 즉 색상, 색조, 명암인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망막에 비치는 직접적인 시각적 인상의 재현이었고, 이를 위해 그들은 가볍고 맑고 빛나는 색소를 택하여 물에 비치는 빛의 작용과 잔물결 위로 반사되는 색채를 그린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가 있다.

 

   후기 인상주의 - 폴 세잔은 밝은 빛에서 어두운 빛으로 연속적으로 이행하는 톤에 의해 모델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사물 그 자태의 음영을 견고한 고유의 톤으로 처리한다. 그는 자연에 속한 모든 사물의 형태는 원추형, 구형, 원통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현상의 외연적 형태 속에서 이러한 본질들을 찾아내고자 했다. 외부 세계의 기초를 구축하는 이 내면적 진리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참된 주제였다.

고흐에게 있어 그림의 표현적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색조였다. 고갱의 작품은 때때로 종교적 주제가 대두되고 있다.

 

   현대미술- 현대를 가장 크게 특징짓는 무의식적인 정조는 무의미와 절망이다.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가 부조리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세계와 그 안에 속한 나의 존재 의미를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세계는 침묵한다. 현대미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예술가들은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하나는 침묵하는 세계를 무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를 요구하는 스스로의 지성을 잠재우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의 극복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하나는 주변 모든 것의 탈 가치화이고 다른 하나는 흥미의 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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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공격과 수비
안정효 지음 / 세경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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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저자가 인터넷 강좌로 2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아놓았다. 영어를 한국어로 가끔 번역해야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이라면 이 책은 성서와도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나는 이제야 읽어 속이 무척 쓰리다. 10년 전에만 읽었어도 나의 공부 인생이 한층 풍요로워졌을 텐데 말이다. 평소에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궁금했던 부분, 어느 것을 선택해야 좋을지 고민했던 부분이 이 책에 다 나와 있다. 신기하다. 책은 각 장마다 짧은 영어 지문이 주어지는데, 우선 그 지문을 스스로 해석해 본 다음 해설을 읽어야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귀찮다고 해석하지 않고 풀이만 읽는다면 아마 일주일만 지나도 까먹을 것이 분명하다. 다양한 학생들의 번역본을 꼼꼼히 분석하고 설명하는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 가다보면, 훌륭한 번역가에 대한 존경심이 점점 커진다.

 

1. 고유명사의 번역을 철저하게 해라. 고대 로마인이나 희랍인의 이름을 현대식 영어로 번역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려면 플라톤도 플레이토라 해야 하고 소크라테스도 싸크라티스 라고 해야 형평성이 맞기 때문이다.

2. of - ~의 가 아니라 ~ 같은, ~스러운, ~라고 번역하면 좋을 때가 종종 이싸.

3. 마침표, 빈칸도 번역한다.

4.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없애라.

5. can - 하기도 한다. 될지도 모른다.

6. 문체를 번역한다. 문체를 번역하려면 번역할 작가의 문학 세계를 알아야 하고, 번역할 작품의 성격을 이해해야 하고, 번역할 문장의 특성을 공부해야 한다.

7. 시차를 고려해서 어휘를 선택해라. 예를 들면 서부영화 번역에서 “테러단”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이것은 궁합이 맞지 않다. 테러라는 용어가 너무 근대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8. 번역은 귀로 한다. 특히 대화체의 번역을 할 때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9. or 의 용법은 ‘즉’ 이라는 뜻이며 앞에 나온 문장을 추가 설명하는 것이다.

10. then - 그런 다음에, 그러면, 뒤이어서 등 같은 말을 달리해라.

11. feel - 만지다 라는 뜻이다. 명사로는 손 끝에 느끼지는 촉감이다. 모두 ‘느끼다’라는 가짜 용법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느끼다’ 외에는 다른 뜻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12. with 를 have의 뜻으로 풀어놓은 ‘가진’도 걸핏하면 우리말로 사용된다. 나쁜 공기를 가진 서울 > 공기가 나쁜 서울, 큰 입을 가진 하마 > 입이 큰 하마로 고쳐야 한다.

13. : ; 부호는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콜론( : ) 은 쉼표나 마침표, 혹은 - (dash)로 표기하고, 세미콜론 ( ; )은 쉼표로 바꾸도록 권장한다.

14. 번역은 창작이 아니다.

15. 어휘력이 부족한 사람은 글쓰기가 서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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