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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 예술의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3월
평점 :
서양 미술을 철학과 접목시켜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 다른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으로만 놓고 본다면, 문체가 아름답다. 예술을 철학적으로 설명해서 그런가? 문장은 어렵다가도 쉽고, 수필 같으면서도 정보를 담고 있다. 책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하여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에 발견된 작품의 양상과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대 순으로 읽으니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쉽고, 그림도 있어 매우 재밌게 읽었다. 특히 고딕 양식을 소개하면서 건축적인 부분까지 함께 곁들어 설명하여 무척 흥미진진하였다.
구석기 시대 - 동굴벽화. 이 시대의 그림은 빛과 곡선 입체감이 살아있다.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놓은 구석기인들은 우주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의식(주술)은 사실 그들에게는 하나의 과학이었다. 예를 들면, 들판에 물을 뿌리면 비가 내려 가뭄의 고통이 끝날 것이라 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므로 동굴 벽에 그려진 동물 그림이 있으면 동굴 밖으로 사냥을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언제가 되었든 동물은 잡히기 마련이었다.
신석기 미술과 이집트 미술 - 신석기 회화에는 구석기 동굴벽화에 풍부하게 존재했던 화려한 색채와 박진적인 자연주의적 기법이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이 시대 예술은 감각적이라기보다는 사유적이고 시각적이라기보다는 개념적이다. 신석기 시대의 인류는 자신의 감각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아마도 구석기들이 믿어왔던 인과관계(여러 차례 기우제를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끝내 오지 않는 것 등등)가 전면적인 오류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석기시대 인들은 아마도 최초의 실존적 고통에 맞닥뜨렸을 것이다. 이들에게 삶을 규제하는 원칙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고 신은 매우 엄격하고 무서운 존재이다.
이집트시대의 예술은 ‘정면성의 원리’를 사용한다. 그들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기보다는 생각하는 대로 그렸다. 그들의 세계는 지극히 관념적이다. 즉 물리적 세계가 인간의 감각이 파악하는 법칙이 아니라 천상적 규범에 따라 운행된다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이집트 그림은 얼굴은 옆면이, 눈과 가슴은 전면이, 발은 안쪽이 그려지게 된다. 이 부조의 존재 의의는 분명하다. 이것은 하나의 예술이라기보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작업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얼마만큼 위대한 인물이며, 위풍당당한 풍채를 가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스 고전주의 - 그리스의 인물상들은 어딘가 영원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는 듯한 아득한 느낌을 주며 동시에 초연한 무상성과 무관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스인들은 고전주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자연주의적이기도 했다. 그들은 예술은 아름다움 자체만을 위한, 학문은 지성 그 자체만을 위한 동기를 지녀야 한다고 믿었으며 또한 그것을 과감하게 실천해 나갔다.
로마제국의 예술 - 로마의 전통적인 예술은 상당히 사실주의적이며 실천적이었다. 로마인들은 ‘미를 위한 미’의 개념에 냉담했다. 그들에게 예술은 생존경쟁에서 하나의 직접적인 무기에 불과할 뿐, 보고문이나 설명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로마인들은 공간을 절약한다. 그들은 한정된 장면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그리스 예술 특뷰의 음악적인 우아함과 율동은 사라진다. 로마인들은 시를 희생시키고 산문을 택한다. 로마의 예술은 그림으로 읽는 이야기이다. 그리스의 인물상들은 대체로 젊고 균형잡힌 몸매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인물상은 주로 나이든 사람들을 주제로 한다. 로마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힘, 권력이었다. 그리스 인물상들은 전신상이지만 로마인들의 인물상들은 대체로 흉상이나 두상이다.
고딕 - 12세기. 그리스 신전이나 로마네스크 건조물들이 지표와 평행이 되는 천개와 그것을 떠받치는 기둥과 벽이라는 수평선과 수직성의 비례적 균형에 중심을 둔다면, 고딕 성당은 하늘을 향한 수직적 운동을 강조한다. 즉 가늘고 섬세한 선들이 마치 바퀴살처럼 하늘을 향하는 상승운동을 보여줌으로써 수평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안정적 요소가 본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때 천상과 지상은 분리되고 만다. 신은 인간적 이해가 미칠 수 없는 머나먼 곳의 무한자가 된다. 이러한 수직적 구도는 성당 입구의 문설주에 부속된 인물들의 조각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난다. 고딕 성당의 경이로움은 그 엄청난 규모와 대비되는 전체적인 가뜬함이다.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빛과 기둥의 요철이 희미하면서도 떠오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딕의 빛은 신비의 빛이다. 고딕 건물은 그 내부에 어떤 특권을 지닌 공간도 인정하지 않는다. 첨형아치, 복합기둥, 공중부벽의 세 가지 요소는 그 자체가 자기 충족적이고 자기 지지적인 것이 되어 독립적 골조를 구성한다.
르네상스 - 13세기. 이 시대를 기점으로 서구사회는 스스로의 세계와 삶을 규정지었던 기독교적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세계관은 종교적으로는 종교개혁을 불러왔다. 르네상스인들은 교회의 세속화를 막고 성직자나 독신가를 현실세계에서 분리시키고자 새로운 철학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성서를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지상세계는 신과 교회의 권위로부터 독립해 나갔다. 지오토, 기베르티, 레오나르도 다빈치,라파엘로 등의 화가가 유명하다.
마니에리즘 -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냉정하고 메마른 형식주의. 마니에리즘의 개시는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불안과 동요로 나타난다. 이 시대 그림은 르네상스의 절제되고 안정된 고전적 조화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세계, 즉 뿌리깊은 내적 불안과 동요로 물든 다른 세계를 제시한다.
바로크 - 르네상스 예술이 구심력이라면 바로크 예술은 원심력이다. 미술사가인 하인리히 뵐플린은 이를 다섯 개의 대립 쌍으로 설명한다. 첫째,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이다. 두번째, 평면적인 것과 심층적인 것이다. 셋째, 닫힌 형식과 열린 형식이다. 넷째, 다원성과 통일성이다. 다섯 번째, 절대적 명료성과 상대적 명료성이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구성, 광선, 색조 등의 중요한 회화적 요소들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설명과 담화를 보조하는 입장에 있게 된다. 그러나 바로크 회화에서는 오히려 사물의 존재가 여러 회화적 요소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루벤스,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의 화가가 있다.
로코코 -18세기. 로코코는 자연법에 기초하고 있으며, 상당히 향락적이고 세속적인 예술이다. 이 시대의 이념은 지상적 행복이자 신의 소멸이었다. 이제 인간의 삶에서 지상적 즐거움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주제는 주로 공원이나 섬 등에서 펼쳐지는 향락적인 연회나 소풍, 혹은 숲 속의 음악 연습 등을 보여준다.
신고전주의 - 신고전주의는 거의 전적으로 프랑스 고유의 운동이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안일하고 향락에 빠져 있는 프랑스 귀족의 삶을 경멸하였다. 그들은 반로코코를 주장한다. 형식보다는 소재에 있어서 전형적인 로코코가 아니면 괜찮았다. 자크 루이 다비드, 바롱 앙투안 장 그로 등이 있다.
낭만주의 - 18세기 말-19세기 초. 낭만주의는 우리의 이성이 진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이제 모든 것에 대하여 가치의 무차별화가 진행되며 어느 것이든 균등한 가치를 누리게 된다. 동시에 문명과 권위와 절도도 폐기된다. 이제 멀고 이국적인 주제가 중요시된다. 낭만주의에는 완성이 없고 제한이 없다. 테오도르 제리코, 들라쿠루아, 오귀스트 프레오가 있다.
사실주의 - 귀스타브 쿠르베는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감정이나 상상력을 강조하는 낭만주의는 그 시대가 처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예술가들은 모름지기 자기 자신의 직접적 경험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인상주의 - 보통 현대미술은 인상주의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인상주의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화가가 순수하게 지각적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술가는 우선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사건과는 동떨어져 살아야 했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사건의 외면적 양태, 즉 색상, 색조, 명암인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망막에 비치는 직접적인 시각적 인상의 재현이었고, 이를 위해 그들은 가볍고 맑고 빛나는 색소를 택하여 물에 비치는 빛의 작용과 잔물결 위로 반사되는 색채를 그린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가 있다.
후기 인상주의 - 폴 세잔은 밝은 빛에서 어두운 빛으로 연속적으로 이행하는 톤에 의해 모델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사물 그 자태의 음영을 견고한 고유의 톤으로 처리한다. 그는 자연에 속한 모든 사물의 형태는 원추형, 구형, 원통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현상의 외연적 형태 속에서 이러한 본질들을 찾아내고자 했다. 외부 세계의 기초를 구축하는 이 내면적 진리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참된 주제였다.
고흐에게 있어 그림의 표현적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색조였다. 고갱의 작품은 때때로 종교적 주제가 대두되고 있다.
현대미술- 현대를 가장 크게 특징짓는 무의식적인 정조는 무의미와 절망이다.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가 부조리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세계와 그 안에 속한 나의 존재 의미를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세계는 침묵한다. 현대미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예술가들은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하나는 침묵하는 세계를 무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를 요구하는 스스로의 지성을 잠재우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의 극복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하나는 주변 모든 것의 탈 가치화이고 다른 하나는 흥미의 추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