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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늘 봐야지 했던 책을 이제야 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책 제목처럼 ‘이것이 인간인가’ 를 되뇌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홀로코스트의 비극. 사건에 관한 여러 책을 읽었지만 이 책처럼 절실하게 다가오진 못하였다. 직접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들어갔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의 담담한 고백. 그의 글에는 특정한 나치당원에 대한 증오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어떻게 홀로코스트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히틀러의 명령에 따르고 거리낌없이 학살을 자행했던 사람들은 자아가 분열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그들도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히 설명되어질까? 레비는 말한다. 히틀러 한 사람만을 악인으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독일 전체 국민이 그들의 악행을 모른 척 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되었다고. 600만.....
레비는 1919년 북이탈리아 토리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화학자가 되었지만 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유대인 차별은 전 유럽으로 확장되어 갔고 그는 점차 반파시즘 운동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1943년 독일군이 토리노를 점령하자 빨치산 부대에 가담해 투쟁하다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에서 그가 지냈던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책에서 그가 끊임없이 인용하고 있는 책은 단테의 <신곡>이다. 아우슈비츠 문에는 그 유명한 구절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는 문구가 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그는 <신곡> 지옥편 제 3곡의 ‘이 저주받을 망령들아, 비통할 지어다!’를 떠올린다. 이 말은 지옥과의 경계를 가르는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이 단테에게 던진 절규이다. 작품해설을 쓴 서경식은 ‘홀로코스트’의 지옥에서 살아남아 증언하는 프리모레비야말로 현대의 오디세우스이자 단테라고 적고 있다. 레비는 수많은 작품을 써내려가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탐구하였다. 그리고 1987년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토리노 시의 공동묘지에 있는 레비의 묘지에는 17451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왼쪽 팔뚝에 문신으로 새겨진 수인 번호다. 책을 덮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인가.
# 알베르토는 당당하게 수용소에 들어왔고 상처 입지 않고 타락하지도 않은 채 수용소에 살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빨리 이 삶은 바로 전쟁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스스로 응석 부리는 것 따위는 허락하지 않았다. 불평을 하거나 자신과 타인들을 연민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첫날부터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그를 지탱하는 건 지혜와 본능이다. 그는 정확하게 사고했다. 종종 아예 생각을 안 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옳은 일이다. 그는 모든 것을 즉시 이해한다. 그가 아는 건 약간의 프랑스어뿐인데 독일인이 말해도 폴란드인이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 84.
# ‘변화란 무조건 나쁜 것이다’, 수용소의 격언 중 하나였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경험은 우리에게 모든 예측이 헛되다는 것을 수도 없이 보여주었다. 우리의 그 어떤 행동도, 그 어떤 말도 미래에 눈곱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뭐하러 고통스럽게 앞일을 예측하려 하겠는가? 우리는 고참 해프틀링이었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미래를 상상하지 마라, 모든 게 어떻게 언제 끝나게 될지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마라’는 게 우리의 지혜였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도, 스스로 자문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178-79
# 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과 지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단테 지옥편 중-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