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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시선 ㅣ 지만지 고전선집 582
파블로 네루다 지음, 김현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광화문 교보문고 현판에는 네루다의 시가 걸려있다. ‘한때 나였던 소년은 어디에 있을까.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나, 아니면 떠나버렸나?’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저 구절을 읽으면 어딘가에서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푸른 물병 그림 때문에 그런 것 일수도). 이 시는 <질문의 책> 시집에 나오는 시이다. 네루다 시인의 존재를 처음 인식하게 되었던 시는 “시”의 첫 구절이었다. ‘그래 그 무렵이었어....시가 날 찾아왔어. 난 몰라. 어디서 왔는지. 몰라.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이 문장을 읽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있을까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칠레 시인인 네루다의 시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수많은 그의 시는 담백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다. 이 책에서는 그의 시집 중 14권에 수록된 시들 중 몇 개를 뽑아 정리하였다.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시집은 <기본적인 것들에 바치는 송가>(1954)이다. 이 시집에서 엉겅퀴, 양파, 희망, 시간, 토마토, 옷 등에 바치는 시인의 언어는 빛이 난다(예전에 스페인어를 잠깐 공부했었는데 네루다의 시를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한몫 했다). 네루다의 시 경향은 점차 정치 참여 쪽으로 옮겨갔고 현실에 참여하지 않는 시인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 대사관직을 수행하였고 심지어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었다. 그의 삶 자체가 시가 된다.
비오는 오후, 조용히 앉아 그의 시를 읽고 있자니 행복하다. 느긋해진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책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 배달부>를 원작으로 한 영화도 생각나고, 칠레 와인을 마시며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번에 새로 나온 네루다 자서전도 읽어야 되는데 하는 온갖 생각들을 시와 섞어버렸다.
44 -<질문의 책>
한때 나였던 소년은 어디에 있을까.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나, 아니면 떠나버렸나
난 결코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아니?
이렇게 헤어지고 말 것을 왜 우린
그 오랜 세월 함께 성장하며 보냈을까?
나의 유년 시절이 스러져갔을 때
왜 우리 둘은 죽지 않았을까?
그 영혼은 내게서 떠나갔는데
왜 해골은 나를 뒤쫒아 오는 걸까?
20 -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이를테면, “별이 총총한 밤, 멀리서 별들이,
파랗게, 떨고 있다”라고.
밤바람은 하늘을 휘돌며 노래한다.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난 그녀를 사랑했고, 때론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를 품에 안고
가엾은 하늘 아래서 수없이 입 맞추었지.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때론 나도 그녀를 사랑했다.
그 초롱초롱하고 커다란 눈망울을 어찌 사랑하지 않았으랴.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그녀가 곁에 없음을 생각하며. 그녀를 잃었음을 느끼며.
아득한, 그녀가 없어 더욱 아득한 밤의 소리를 듣는다.
풀밭에 이슬 내리듯 내 영혼에 시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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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 - <지상의 거처>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멍하게, 양복점이나 영화관에
들어갈 때가 있다, 시원과 재인 물 위를
떠다니는 펠트 백조처럼.
이발소 냄새는 나를 소리쳐 울게 한다.
난 오직 돌이나 양털의 휴식을 원할 뿐,
다만 건물도, 정원도, 상품도, 안경도,
엘리베이터도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발이 내 손톱이 내 머리칼이
내 그림자가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그러나 붓꽃 한 송이를 꺾어 공증인을 깜짝 놀라게 한다거나
수녀의 귀싸대기를 후려갈겨 저세상으로 보내버린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꽥꽥 소리를 질러대며 시퍼런 칼을 품고
거리를 활보하다 얼어 죽는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는 더 이상 어둠 속 뿌리이고 싶지 않다.
떨며, 꿈결인 듯 몸서리치며, 아래로,
대지의 축축한 내장 속으로 길게 뻗은 채,
매일매일 빨아들이고 생각하고 먹어치우는.
내게 닥칠 그 숱한 불행이 싫다.
더 이상 뿌리와 무덤이고 싶지 않다.
쓸쓸한 지하실이고 싶지 않다, 시체 그득한 창고이고 싶지 않다.
뻣뻣하게 얼어붙은 채, 신음하며 죽어가고 싶지 않다.
내가 죄수의 얼굴로 도착하는 걸 보면
월요일은 석유처럼 불탄다.
하루가 흐르는 동안 월요일은 찌그러진 바퀴처럼 울부짖다가
밤을 향해 핏빛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나를 밀어붙인다, 구석으로, 축축한 집으로,
창문으로 뼈다귀가 튀어나오는 병원으로,
식초 냄새 풍기는 구둣방으로,
갈라진 틈처럼 무시무시한 거리로.
내가 증오하는 집들의 문에 걸린 소름 끼치는
창자들과 유황색 새들이 있다.
커피주전자에 잊고 처박아 둔 틀니가.
추시와 공포로 울어야 했을
거울들이 있다.
도처에 우산이, 그리고 독약이, 배꼽이 있다.
나는 태연하게 거닌다. 눈을 부릅뜨고, 구두를 신은 채,
분노하며, 망각을 벗 삼아,
걷는다, 사무실과 정형외과용 의료용품점들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철사 줄에 옷이 널려 있는 마당을 지나친다.
팬티와 타월과 셔츠가 더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