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어 막 잠의 세계로 빠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문명의 이기는 종종 삶의 질을 방해한다. 전화를 받고 나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책을 펼쳤는데,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시계를 보니 이미 새벽. 일찍 자려다 되려 당해버렸다. 책을 펼치는 게 아니었는데. 하루키의 글은 갈수록 노련해져서 독자의 마음을 가볍게 휘어잡는다. 이 정도 쯤이야 하는 태도로.

   줄거리는 간단하다. 다자키 쓰쿠루 라는 주인공이 고등학교 때 만난 네 명의 친구들과 똘똘 뭉쳐 깊은 우정을 나누다 대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친구들이 다시는 쓰쿠루를 만나고 싶지 않다며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 것. 쓰쿠루는 너무 깊은 충격을 받아 그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된 사라라는 여성에게 고등학교 시절의 일을 털어놓게 되고, 그녀는 쓰쿠루에게 그 친구들을 만나 이유를 물어봐야 한다고 권유한다. 그리하여 쓰쿠루가 한 명씩 친구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

   자신에겐 색채가 없다고 생각하는 쓰쿠루. 나와 가장 친한 친구도 자신에겐 색채가 없다고 생각한다. 친구는 종종 쓰쿠루처럼 말했다. “난 모든 것이 평범해. 키도, 학력도, 외모도, 성격도, 취미도.”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처럼 개성이 풍부하고, 독창적인 사람은 드물다. 쓰쿠루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쓰쿠루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

   1949년생의 작가는 여전히 고등학생들의 감수성을 그려낼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 초창기 <상실의 시대>를 썼던 그때에 비해 글은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이것이 하루키가 가진 힘이다. 글을 읽다보니 온다리쿠의 <밤의 피크닉>이 떠오른다. 고등학생들이 밤을 새어 길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다섯 명의 친구들과 겹쳐진다. 그런데 쓰쿠루와 사라는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할까? 결혼할 수 있을까?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결말로 끝이 맺어지니 살짝 괴롭다. 네루다의 시 구절처럼 ‘한때 나였던 소년은 어디에 있을까?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나, 아니면 떠나버렸나?’ 마음이 아득해진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하루키는 역시나 이번 작품에서도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제목부터 전면 들여?왔다. 작가 덕에 음악의 세계도 확장된다.  

 

#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32

 

#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고 잠들었다. 의식의 꼬리에 매달린 빛이 멀어져 가는 마지막 특급 열차처럼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작아지더니 밤 가운데로 빠져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만 남았다. 4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의 묘약 - 프로방스, 홀로 그리고 함께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 여행이 너무 너무 가고 싶다면? 내가 취하는 방법은 두 가지. 떠남이 주제인 영화를 보거나 여행 책을 읽는 것. 지금 나의 상태는 시간은 많은데 돈은 조금밖에 없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집어들은 책. 프로방스 여행기를 담은 이야기. 프랑스에선 파리밖에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간다. 작가 김화영 교수는 프랑스 소설 번역가로 유명하며, 그가 직접 저술한 책들 또한 깊이가 있다. 그러니 더더욱 마음이 끌릴 수 밖에. 표지도 얼마나 산뜻한지, 푸르름이 뚝뚝 묻어난다. 이 책은 저자가 프로방스에서 파리까지 여행한 여정을 산문으로 옮긴 것이다. 시기는 2011년에서 2012년 두 해에 걸친 여름이지만 그 속에는 30년 전에 저자가 프로방스에서 공부하였던 시간까지 아우르고 있다.

   저자의 여행은 엑상프로방스에서 시작된다. 거기서 그는 세잔의 길을 거닐며 신선한 과일과 빵을 먹으며 사색에 잠긴다. 글에서 묘사되는 풍부한 음식과 와인들은 읽는 이를 너무도 괴롭게 한다. 차가운 백포도주를 마시고, 단맛이 풍부한 멜론에 코냑을 채우고, 짭짤한 햄과 치즈와 고기를 먹고.,,, 음식 묘사가 얼마나 생생하고 사실적인지 당장이라도 비행기 표를 끊고 싶은 충동이 끊임없이 생긴다. 책을 읽으며 꼭 이곳에 가리라 몇 번이나 다짐했다.

   저자는 알베르 카뮈의 집을 방문하고,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정신병원을 둘러보며, 조르주 상드의 동네에 머문다. 그 밖에도 마르셀 프루스트, 말라르메, 장 그르니에, 지오노 등 뛰어난 작가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그의 여정은 차분하고 아름답다. 문장 또한 유려하고 품위 있어 글을 읽고 나면 괜히 내가 귀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습도 높은 여름, 이 책을 읽으며 프로방스의 깨끗하고 선명한 여름을 맛보았다. 그의 <알제리 기행>도 읽어봐야겠다.

 

# 유럽에서는 기다림의 지혜가 없으면 인생살이가 우울해진다. 13.

 

# 삶의 기쁨은 바로 이곳, 과일과 채소와 소금과 기름과 향료의 색채와 냄새가 소용돌이치는 이 시장에서, 즐거운 표정들 속에서 빛난다.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슈퍼와 달리 여기서는 사람과 사람이 눈빛과 목소리와 미소로 만난다. 프로방스의 아침 시장에 우울한 얼굴은 없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다. 29.

 

# 프로방스 여름날의 타오르는 화염이 땅속의 서늘한 물을 만나 과육 속에 썩지 않는 시간의 단맛으로 스며들면, 우리의 혓바닥에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만나 삶의 희열이 된다. 31.

 

# 문자 도착. 베네치아는 새벽 4시다. “BYC 신설점. 회원 대상 10% DC. 행사기간 9월 1일부터 11일까지 11일간.” 서울의 속옷 상점이 보내는 광고가 신새벽 머나먼 베네치아의 여행지까지 찾아온 것이다. 월드 와이드 웹의 세계화가 주는 벌이다. 저 먼 곳에서 지칠 줄 모르고 기다리는 비루한 일상이 꿈같은 바캉스의 시가 끝나간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보내는, 산문적인 너무나도 산문적인 신호다. 150.

# 길고 긴 여로의 끝. 마침내 도착한 집. 무거운 짐을 부려놓고 서늘한 물로 손과 얼굴을 식힌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덧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오! 목을 쓰다듬는 바람의 가벼움이여, 날아갈 것 같은 홀가분함이여! 나는 여행에서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수단으로서의 긴 여행은 끝났다. 이제 설레는 기대와 즐거움의 시간만이 망망대해처럼 앞에 펼쳐진다. 움직임은 수단이고 머무름이 비로소 삶인 것인가>? 아니, 움직임 속의 짦은 머무름, 그것이 삶의 기쁨인지도 모른다. 왼발이 앞으로 나가고 오른발이 아직 뒤에 있을 때 그 중심에 머무는 몸의 짧은 순간, 전신의 모공을 열어 빨아들이는 세상의 빛과 냄새와 소리와 촉감, 그것이 여행이다. 165.

 

# 그는 알고 모르는 것의 구별이 확실하고 아는 것은 확실하게 알고 정확, 간명하게 설명할 줄 아는 명쾌하고 상쾌한 지식인이다. 2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30년 전쟁의 한 연대기 범우희곡선 25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연희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대부분 이름은 들어보았을 억척어멈. 하도 예전에 읽어 다시 읽어보았는데 역시 좋다. 브레히트가 추구했던 소격효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카트린이 울면서 북을 두드리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이 났다. 이 극은 전쟁을 따라다니며 돈을 벌려다 자식 셋을 잃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억척 엄마는 30년 동안 군대를 따라다니며 전쟁 중 획득한 물건을 사고팔아 생계를 잇는다. 그러나 그녀가 전쟁터에서 군인들과의 거래를 위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그녀의 세 자식들(슈바이처카스, 아일리프, 카트린)을 차례로 잃고 만다. 이것은 커다란 모순이다. 억척엄마는 자식들을 위해 억척스럽게 돈을 벌려고 하는데 정작 그 돈 때문에 자식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모순이 개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그의 마르크스주의적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억척엄마는 이윤추구의 규칙을 따르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 있으며 카트린은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인간적인 삶을 택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억척엄마는 자식을 모두 잃은 뒤에도 여전히 마차를 끌고 전쟁을 따른다. 전쟁터에서 흥정하며, 전쟁을 찬양하며 삶을 이어가는 그녀의 용기는 무지에서 비롯된 용기이며 이것은 자식들을 모두 죽음으로 이끈다. 그렇다고 우리는 억척엄마를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식의 목숨을 돈으로 흥정하는 그녀의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극 중에서 억척어멈과 카트린이 포장마차를 끌며 한 농가를 지나갈 때, 안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 - 장미 한 송이 우리를 즐겁게 하네.

             정원 한 가운데에 있는

            장미꽃은 아주 예쁘게 피어났다네.

            삼월에 씨를 심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네.

            정원이 있는 사람은 좋겠네,

            장미가 그렇게 예쁘게 피었으니.

                          :

   이때 지문에서는 억척어멈과 카트린이 귀를 기울이느라고 멈춰 섰다가 다시 길을 간다고 적혀 있다. 억척어멈이 노래를 듣기 위해 멈춰 섰다는 지문을 읽으며 그녀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예술적인 혹은 인간적인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정원이 없고 지붕이 없는 억척어멈은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냉혹하게 버려야 했을 것이다.

    서사극으로 유명한 작가는 이 극 역시 30년에 걸친 삶이 담겨 있으며 극 중에서 ‘낯설기 하기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12개의 장면들이 단순한 나열을 연상시키는 몽타쥬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면들 시작에 앞서 앞으로 일어날 일이 짧게 설명된다. 따라서 관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기에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작가는 극 진행 사이에 수시로 끼어드는 노래들 등을 사용하여 관객이 극중 인물에 대해 감정 이입을 통한 동일화를 느끼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러한 장치들은 극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대본만 읽었으니 실제로 연극을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역시 좋은 책은 다시 읽어도 재밌다. 짦은 문장도 두고두고 생각난다. 요즘엔 그런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억척 어멈ー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억척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그들은 버림받았기 때문이에요.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부터가 그들의 상황에서는 필요해요. 또는 그들이 밭을 갈어엎거나, 그것도 전쟁중에(!) 자식들을 낳는 것도 그들이 억척이라는 것을 보여주죠.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전망이 없으니까. 서로 얼굴을 마주보려고만 해도 그들은 서로 죽이고 죽는 싸움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억척이 필요해요. 그들이 황제 한 명과 교황 한 명을 견뎌낸다는 사실도 엄청난 억척을 증명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들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도를 기다리며 - 1969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8
사무엘 베케트 지음, 홍복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대체 고도는 누구란 말인가? 누군가는 희망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끊임없는 회의와 절망 가운데에서도 고도를 기다리는 존재란 말인가? 이 극은 예전에 읽으나 지금 읽으나 이해하기가 어렵다. 주인공들은 작품 내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자기 말만 주장하며 다른이의 말은 듣지 않는다. 맛없는 당근이나 무를 먹고 나무에 목이나 매자고 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다. 이유는 단 하나. 고도를 기다리기 때문에.

    극은 총 2막으로 되어 있으며 장소는 시골길, 무대 장치는 나무 한 그루, 시간은 저녁 때이다. 5명의 등장인물이 있으며 이중 에스트라곤(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가 주요 인물이다. 처음 시작은 에스트라곤이 장화를 애써 벗으려고 하는 장면이다. 어느 책에서 이 행동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극을 볼 때 모든 틀에 박힌 선입견을 다 벗어던지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 것이 생각난다. 에스트라곤이 장화를 벗는 것에 계속 실패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들을 놓아 버리는 것이 불가능 하긴 하겠지만.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극은 절망적인 현대인의 구슬픈 노래라고 말한다. 지친 인간의 피로한 모습을 보여주나 그 속엔 꺼질듯이 꺼지지 않는 등불이 있다는 것이다.

    대본을 읽으며 고고와 디디, 포조와 럭키가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본 영화 <마스터>가 생각난다. 여기에서도 주인공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갈등하고 부딪힌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말만 늘어놓으며 나를 좀 봐달라고 애원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극에서는 결국 고도가 오지 않지만, 우리 삶에서는 고도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상처받고 혹은 상처주면서도, 착취당하고 혹은 착취하면서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구나...설마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아니겠지.

 

# 포조 - 저놈이 울음을 그쳤어. (에스트라곤에게) 당신이 저놈을 대신하게 되었구려.

(서정시를 읊듯이) 세상에는 눈물이 일정한 분량밖에 없어. 다른 데서 누가 또

울기 시작하면 울던 사람이 울음을 그치게 되는 거야. 웃음도 마찬가지지....

 

# 포조 - 나는 못할 것 같아......(오랫동안 주저하다가).......출발을 못할 것 같아.

에스트라곤 - 그런 것이 인생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루다 시선 지만지 고전선집 582
파블로 네루다 지음, 김현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광화문 교보문고 현판에는 네루다의 시가 걸려있다. ‘한때 나였던 소년은 어디에 있을까.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나, 아니면 떠나버렸나?’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저 구절을 읽으면 어딘가에서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푸른 물병 그림 때문에 그런 것 일수도). 이 시는 <질문의 책> 시집에 나오는 시이다. 네루다 시인의 존재를 처음 인식하게 되었던 시는 “시”의 첫 구절이었다. ‘그래 그 무렵이었어....시가 날 찾아왔어. 난 몰라. 어디서 왔는지. 몰라.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이 문장을 읽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있을까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칠레 시인인 네루다의 시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수많은 그의 시는 담백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다. 이 책에서는 그의 시집 중 14권에 수록된 시들 중 몇 개를 뽑아 정리하였다.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시집은 <기본적인 것들에 바치는 송가>(1954)이다. 이 시집에서 엉겅퀴, 양파, 희망, 시간, 토마토, 옷 등에 바치는 시인의 언어는 빛이 난다(예전에 스페인어를 잠깐 공부했었는데 네루다의 시를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한몫 했다). 네루다의 시 경향은 점차 정치 참여 쪽으로 옮겨갔고 현실에 참여하지 않는 시인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 대사관직을 수행하였고 심지어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었다. 그의 삶 자체가 시가 된다.

   비오는 오후, 조용히 앉아 그의 시를 읽고 있자니 행복하다. 느긋해진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책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 배달부>를 원작으로 한 영화도 생각나고, 칠레 와인을 마시며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번에 새로 나온 네루다 자서전도 읽어야 되는데 하는 온갖 생각들을 시와 섞어버렸다.

 

 

           44 -<질문의 책>

한때 나였던 소년은 어디에 있을까.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나, 아니면 떠나버렸나

 

난 결코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아니?

 

이렇게 헤어지고 말 것을 왜 우린

그 오랜 세월 함께 성장하며 보냈을까?

 

나의 유년 시절이 스러져갔을 때

왜 우리 둘은 죽지 않았을까?

 

그 영혼은 내게서 떠나갔는데

왜 해골은 나를 뒤쫒아 오는 걸까?

 

 

         20 -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이를테면, “별이 총총한 밤, 멀리서 별들이,

파랗게, 떨고 있다”라고.

 

밤바람은 하늘을 휘돌며 노래한다.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난 그녀를 사랑했고, 때론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를 품에 안고

가엾은 하늘 아래서 수없이 입 맞추었지.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때론 나도 그녀를 사랑했다.

그 초롱초롱하고 커다란 눈망울을 어찌 사랑하지 않았으랴.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그녀가 곁에 없음을 생각하며. 그녀를 잃었음을 느끼며.

 

아득한, 그녀가 없어 더욱 아득한 밤의 소리를 듣는다.

풀밭에 이슬 내리듯 내 영혼에 시가 내린다

:

:

 

          배회 - <지상의 거처>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멍하게, 양복점이나 영화관에

들어갈 때가 있다, 시원과 재인 물 위를

떠다니는 펠트 백조처럼.

 

이발소 냄새는 나를 소리쳐 울게 한다.

난 오직 돌이나 양털의 휴식을 원할 뿐,

다만 건물도, 정원도, 상품도, 안경도,

엘리베이터도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발이 내 손톱이 내 머리칼이

내 그림자가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그러나 붓꽃 한 송이를 꺾어 공증인을 깜짝 놀라게 한다거나

수녀의 귀싸대기를 후려갈겨 저세상으로 보내버린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꽥꽥 소리를 질러대며 시퍼런 칼을 품고

거리를 활보하다 얼어 죽는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는 더 이상 어둠 속 뿌리이고 싶지 않다.

떨며, 꿈결인 듯 몸서리치며, 아래로,

대지의 축축한 내장 속으로 길게 뻗은 채,

매일매일 빨아들이고 생각하고 먹어치우는.

 

내게 닥칠 그 숱한 불행이 싫다.

더 이상 뿌리와 무덤이고 싶지 않다.

쓸쓸한 지하실이고 싶지 않다, 시체 그득한 창고이고 싶지 않다.

뻣뻣하게 얼어붙은 채, 신음하며 죽어가고 싶지 않다.

 

내가 죄수의 얼굴로 도착하는 걸 보면

월요일은 석유처럼 불탄다.

하루가 흐르는 동안 월요일은 찌그러진 바퀴처럼 울부짖다가

밤을 향해 핏빛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나를 밀어붙인다, 구석으로, 축축한 집으로,

창문으로 뼈다귀가 튀어나오는 병원으로,

식초 냄새 풍기는 구둣방으로,

갈라진 틈처럼 무시무시한 거리로.

 

내가 증오하는 집들의 문에 걸린 소름 끼치는

창자들과 유황색 새들이 있다.

커피주전자에 잊고 처박아 둔 틀니가.

추시와 공포로 울어야 했을

거울들이 있다.

도처에 우산이, 그리고 독약이, 배꼽이 있다.

 

나는 태연하게 거닌다. 눈을 부릅뜨고, 구두를 신은 채,

분노하며, 망각을 벗 삼아,

걷는다, 사무실과 정형외과용 의료용품점들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철사 줄에 옷이 널려 있는 마당을 지나친다.

팬티와 타월과 셔츠가 더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