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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의 품격 - 마법 같은 유혹과 위로, 25가지 술과 영화 이야기
임범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뜨거운 여름을 나기 위한 필수품 중 하나를 꼽으라면? 차가운 술.
습한 여름밤에 책을 읽기 위해서는 차가운 술이 필요하다. 혼자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또 이상하게 주위 사람들은 술을 싫어하거나 못 마셔서 어쩔 수 없이 혼자 마셔야 할 경우가 많아, 주로 집에서 마시는 편이다. 따라서 냉장고엔 다양한 술들이 사이좋게 섞여 있고, 기본적인 칵테일 도구와 잔들도 구비되어 있다. 요즘 주로 마시는 건 스미노프.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스미노프 2온스를 넣은 후 토닉 워터를 가득 채운다. 좀 더 정성을 들인다 싶으면 애플민트를 살짝 찧고, 라임 대신 레몬즙, 설탕, 럼, 토닉워터를 섞어 모히토를 만든다. 꿩 대신 닭이라고 라임 대신 레몬도 나쁘진 않다. 이도 저도 귀찮을 때는 호가든이나 기네스. 와인이나 사케도 좋지만 따면 한 병을 다 마셔야 하기 때문에 혼자 마시기엔 무리가 있다. 술을 좋아하는 것이지 술 취한 걸 좋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두잔이면 족하다.
어쨌든 술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책 제목부터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기자 출신으로 문장이 깔끔하고, 명료하다. 저자는 각종 영화에 등장한 술을 매개로 글을 풀어간다. 영화와 술의 만남. 찰떡궁합이다. 책의 구성은 스피릿, 위스키, 폭탄주, 맥주, 칵테일로 나누어져 있다. 와인은 제외다. 한장 한장 넘길수록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지금은 눈부신 대낮이고 카페이다.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다. 책에 소개 된 영화 중 보고 싶은 영화도 있고 이래저래 마음이 급해진다. 술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책에 나온 영화와 술 목록을 적어보자면.
럼-캐리비안의 해적
보드카-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데낄라-노킹 온 헤븐스 도어
고량주-붉은 수수밭
압생트-토탈 이클립스
칼바도스-개선문
조니 워커-뷰티플 마인드
멕켈란-25시
버번 위스키-007 골든아이
짐 빔-이지 라이더
잭 다니엘스-여인의 향기
선토리 위스키-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제임슨-디파티드
보일러메이커-흐르는 강물처럼
회오리주-플란다스의 개
기네스-웨이킹 네드
밀러 라이트-아메리칸 뷰티
캡틴큐-질투는 나의 힘
해태 런던드라이진-우묵배미의 사랑
칵테일-칵테일
마티니-007 시리즈
블러디 메리-로열 테넌바움
마가리타-마타도어
화이트 러시안-위대한 레보스키
# 보드카의 숙취는 다른 술과 확실히 다르다. 내 경우에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많이 마신 다음날엔 머리가 아프거나 비위가 거슬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어깨와 무릎 관절 같은 곳에 힘이 빠져 연체동물이 된 것처럼 흐느적거린다. 순수 에탄올의 숙취는 자질구레하게 머리나 위장 따위를 건드리지 않고, 곧바로 인체의 기본 에너지를 빼버린다. 보드카는 마시고 취할 때도, 술 깨면서 힘들 때도 모두 깨끗하고 분명하다. 23
# <알코올과 예술가>라는 책에 따르면 랭보가 파리에서 압생트를 처음 맛본 뒤 시골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압생트가 주는 취기야말로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53.
# 마니아들에 따르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저마다 “퍼스낼리티가 엄연히 존재(하루키의 표현)하기 때문에 코로, 혀로 충분히 음미하면서 마셔야 하고, 향이 날아가니 얼음도 넣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79.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설가 존 쿳시는 한 소설에서 “창녀는 나이든 남자들로부터 젊은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썼다. 155.
# ‘드라이 마티니’에 대한 고집들은 한술 더 뜬다. 헤밍웨이는 통상 3대 1에서 5대 1인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을, 15대 1로 해서 마셨다. 존슨 대통령은 잔에 베르무트를 따랐다가 비워버리고 그 잔에 진을 따라 마셨다. 나아가 처칠 수상은 차가운 진을 마시면서 베르무트 병을 바라보기만 하는 게 완벽한 마티나라고 했고, 히치콕 감독의 마티니 레시피는 진을 다섯 번 마시고 베르무트 병을 잠깐 흘겨보는 것이다. 19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