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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으로 - 문학의 공간
김응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8월
평점 :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선 아름다운 글이 나온다.
아름다운 글을 읽으면 어느새 아름다움이 내게 옮겨온다.
캔퍼스에 물을 적시고 붓으로 물감을 바르면 종이 위로 은은히 번져 나가듯.
* 몽롱한 가운데 바닷가 푸른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 검푸른 하늘엔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고향> 101면 인용- 2
* 저는 구심력과 원심력을 생각해봤어요. 아픔이 있는 진앙지에 찾아가는 ‘곁으로의 구심력’이 있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곁으로의 구심력’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했던 순간이 파리 코뮨이고 3.1 독립운동 때 평양 기생들이 치마를 찢어 태극기를 만들던 순간이고요, 광주 민주화항쟁 때 몸을 팔던 여인들이 헌혈하고 시체를 치워주었던 순간이지요. 아픔의 진앙지로 찾아가는 순간들 말입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곁으로’라고 표현합니다. 원심력을 따라 진앙지에서 도망가는 사회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겉으로의 구심력’이 강한 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42
* 내게 위로가 있다면 발터 벤야민이 좋아하던 안드레아 피사노의 ‘희망’이 주는 저 메시지다. ‘곁으로’ 가는 저 방향성이야말로 나 자신을 희망이 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곁으로’ 가겠다는 생각, 방향성만이라도 우리는 희망이 될 수 있다. 소설가 한강과 박민규, 자이니치 사상가 서경식 선생은 자신이 동의하든 말든 저 방향을 찾아 스스로 희망이 되는 선택을 한 존재들이다. 서경식 선생은 말한다. 고통의 진앙지에 가지 못하면 ‘증언’이라도 하라고, ‘상상’이라도 하라고, 그래야 참살을 막을 수 있다고 권한다. 그래서 루쉰은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된다’고 썼다. 49
* 서둘고 싶지 않다 -신동엽
내 일생을 시로 장식해봤으면,
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봤으면,
내 일생을 혁명으로 분질러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 무서운 현실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참여하거나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이 나라의 먹이사슬은 ‘경영진-정규직-비정규직-용역-품팔이-노숙인’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요즘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싸우는 모습도 있다. 경영진은 팔짱을 껴고 보고 있고, 공장뿐만 아니라 회사나 언론사나 학교에도 비슷한 먹이사슬이 있다. 깜빡 실수하면 아래로 끊임없이 밀려나는 냉혹한 신자본주의 사회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영성’이 필요하다.
사회적 영성이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깨닫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주변에서 누가 죽어가는지, 누가 굴뚝에 오르는지, 누가 망루로 올라 호소하고 있는지, 누가 송전탑에 오르고 있는지, 오르기 전에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려 하는 정치가, 종교인, 학자, 작가가 필요하다. 그 고통을 들으려 하는 마음을 ‘사회적 영성’이라고 호명하고 싶다. 1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