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결 문학과지성 시인선 457
이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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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법-서시

 

내 말은 온 길로 되돌아간다

신성한 말은 한결같이

먼 데서 희미하게 빛을 뿌린다

나는 그 말들을 더듬어

오늘도 안간힘으로 길을 나선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보아도

그 언저리까지도 이르지 못할 뿐

오로지 침묵이 그 말들을

깊이깊이 감싸 안고 있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가 닿고 싶은 곳은

그 말들이 눈 뜨는 그 한가운데,

그런 말들과 함께 눈 떠보는 게

한결같은 꿈이다

내 시는 되돌아간 데서 다시

되돌아오는 말을 향한 꿈꾸기다

침묵에서 다른 침묵으로 가는

초월에의 꿈꾸기다

 

 

* 너 보고 싶어

 

너 보고 싶어

 

밤 깊도록 강가에 서서

 

아득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불러도 불러도 무심한 허공,

 

별 하나 저토록 유난히 반짝인다

 

저 별 하나와 여기 나 사이,

 

바람이 차갑게 갈라놓아도

 

너 더듬어 가는 마음은

 

이토록이나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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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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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돌

 

오래전 그녀는 바닷가에서 흰 조약돌을 주웠다. 모래를 털어낸 뒤 바지 호주머니에 넣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서랍에 넣어두었다. 파도에 닳아 동그랗고 매끄러운 돌이었다. 속이 들여다보일 듯 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하지는 않았다.(실은 평범한 하얀 돌이었다.) 가끔 그녀는 그것을 꺼내 손바닥 위에 얹어보았다. 침묵을 가장 작고 단단한 사물로 응축시킬 수 있다면 그런 감촉일 거라고 생각했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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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퀘이크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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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다리는 시간을 선용한다. 나는 내가 결코 모시지 않을 멍청한 고용주들과 들어갈 일이 없는 직장들에 대해 알게 되며, 결코 가 보지 못할 세상의 장소들, 결코 걸리기를 바라지 않는 질병, 사람들이 기르고 있는 갖가지 개들 등등에 대해 알게 된다. 컴퓨터를 통해서? 아니다. 대화라는 잊혀진 기술을 통해서다.

마침내, 이 너른 세상에서 나를 정말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여자에게 봉투를 넘겨 무게를 달고 우표를 붙인다. 그녀에게 그것을 숨겨서 뭐 하랴.

이제 집으로 간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들어보라. 우리가 여기 지상에 온 것은 빈둥거리며 지내자는 것이다. 누구든 조금이라도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말라. 239-40

 

 

* 생애 마지막 10일 동안뿐이었지만, 올버니의 성 베드로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버나드와 알고 지낸 한 여성은 죽어 가는 동안 형이 보여준 행동거지를 “예의 바르다.”와 “기품 있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대단한 형이야!

멋진 말이야! 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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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아드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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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과 돌아온 탕자의 모티브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는 소설. 시라고 해도 좋겠다. <하우스키핑>도 좋았는데, 이 소설은 더 좋다. 삶을 향한 긍정과 따뜻하고 아름다운 문장.

 

 

*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플레전트 산에서 발견했을 때, 할아버지가 부상을 심하게 당해서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지. 사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했어. 그러자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은 “난 이 일에서도 큰 축복을 찾을 것으로 확신한단다”였어. 할아버지는 평생 무슨 일이 생기든 그렇게 말씀하셨어.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모두 힘든 일이었는데도 말이지. 언뜻 기억나는 것만 해도 팔목이 접질린 게 두 번, 갈비뼈에 금이 간 일이 한 번 있었지. 언젠가 할아버지는 ‘축복 받는다는 것’(being blessed)은 ‘피 흘린다’(being bloodied)는 뜻이라고 말씀하셨어. 영어로는 어원상 그렇지만, 그리스어나 히브리어에서는 다르지. 그러니 성경에는 그 어원에 대한 근거가 없겠지. 그렇게 억지로 해석을 하는 것은 할아버지답지 않았지. 그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폈겠지. 우리 모두 그렇잖니. 57-8

 

 

* 죄, 그건 율법주의지. 한 가지 죄란 없단다. 인생에는 치료되어도 흉터를 남기는 상처가 있고, 결코 치유되지 않는 상처도 흔히 있지. 죄를 피할 것. 그것이 충고란다. 167

 

 

* 보턴은 매일 천국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지. “세상의 멋진 점에 대해 생각하고 그걸 두 배로 곱하는 거야. 기운이 있으면 열이나 열둘을 곱하고 싶네. 하지만 내 기운으로는 두 배로도 충분하지.” 그러니까 보턴은 거기 앉아서 바람결을 두 배로 곱하고, 풀 냄새를 두 배로 곱하지. 199

 

 

*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고린도전서 2:11) 나는 저마다 서로에게 비밀이며, 저마다 다른 언어가 있다고 믿는다. 미적 가치관도, 법도도 각각 다르지. 각자는 앞서 있었던 무수한 문명의 폐허 위에 세워진 작은 문명이지만,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무엇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이 있지. 일반적으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것에 맞춰 살려고 발버둥친다는 점을 덧붙여야겠구나. 주위 사람들이 같은 관습과 풍습, 인식, 예의범절, 건전성을 이어받았기에 우린 뜻밖에 비슷함도 갖는단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침범할 수 없고 뒤집을 수 없는, 넓은 공간이 있기에 공존할 수 있지. 262-3

 

 

* 창조의 신성한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드러나는 경우는 두 가지이고, 그것은 함께 일어난단다. 하나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절대적인 부족함을 느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이 우리에 대해 절대적인 부족함을 느낄 때이지.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독생자처럼 사랑하신다고 말했고, 그것은 사실이지. ‘그분은 모든 이의 눈물을 닦아주신다.’ 그것만 있으면 족하지 무엇이 더 필요할까.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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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독서의 힘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고정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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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표정은 어떤 것을 보느냐에 따라 변화한다. 아기는 엄마를 통해 표정의 변화를 배우고 엄마의 미소를 보면서 웃는 것을 흉내 내게 된다. 그것이 바로 거울 효과다. 이런 이유로 TV 앞에 앉혀 놓기만 한 아이의 표정은 풍부하지 못하다.

동물도 그렇다. 강아지만 해도 혼나면 풀 죽은 표정을 짓고 칭찬하면 웃는 표정을 짓는 등 표정의 변화가 풍부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람과 책 또는 TV 또는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상대가 누구든,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거울 효과에 영향을 받는다. 모두 고체끼리의 관계이지만 분자, 원자, 소립자가 난비하고 있으므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말이다. 마이크로의 세계에서는 가까운 곳에서 사는 것끼리는 서로 섞이게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미디어와 오랜 시간 교류하는지, 또 어떻게 미디어와 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미디어의 인터페이스는 어떤 빛깔과 피부를 가졌는지는 우리 모두의 표정 변화에 확실히 영향을 끼친다. 189-90

 

 

* “우리들 이름은 구리와 구라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건

요리 만들기와 먹는 일

구리 구라, 구리 구라

신나게 노래 부르면서 빵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립니다.” 258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중에서/나카가와 리에코 글, 오무라 유리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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