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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군대 간 아들에게
공병호 지음 / 흐름출판 / 2013년 5월
평점 :
열심히 사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니 만큼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더 잘 살 수 있게 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책이다.
‘군대 간 아들’에게라고 제목은 붙여져 있기는 하지만 군대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군대에서부터 끌어낸 사회생활, 연애, 정치, 사상 등 여러 삶의 이야기를 전부 담고 있다.
요즘은 기대체감의 시대이다. 취업난에 불황이 더해지면서 청년들의 어깨도 축 처지고 말았다. 스스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사치스럽게 생각하거나 자신에게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정말 운이 나쁩니다.”라든가 “우리 세대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남아 있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청년들을 자주 만난다.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직장을 구하기가 워낙 힘들고 눈앞의 과제들을 하나둘 손에 꼽아보면 도저히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고 싶어 하고, 부모님들도 자주 그렇게 말하고, 언론에서도 그런 주장들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스스로를 "세태에 밀려 기회를 잃어버린 억울한 낙오자"로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같은 이야기라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깊은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이 남의 이야기인지 자기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로 동화되어버리기 쉽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그런 모습이다.87-88p
“자유롭지만 비참해질 수 있다.”는 말은 참으로 명언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출애굽기에는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떠나는 전후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다. 이집트 치하에서 그들은 노예처럼 취급받고 있었지만 빵은 주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탈출 후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그들 가운데 자유보다는 오히려 빵이 보장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지만, 그만큼 쉽게 비참해질 수도 있다. 누구도 빵을 공짜로 주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에 대한 대가는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지 않으며 빵을 달라고 애걸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스스로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과거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211-212p
청년들 중 일부는 마치 다 살아본 것처럼 성급하게 인생에 대한 판단을 내려버리는 이들도 있다. 그러고는 “우리 세대는 더 이상 기회가 없어요.” “우리 세대가 겪는 어려움은 이전 세대가 겪은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라고 말한다.
지난 30여 년을 되돌아보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회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삶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나는 누구에게나 세상의 주역이 될 가능성의 문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출발선부터 ‘우리 세대’라는 모호한 용어로 기회를 잡을 가능성을 거부해버리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단, 그런 가능성의 문이 열려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바닥부터 시작해서 차곡차곡 하나씩 삶의 경험을 쌓아가겠다는 굳건한 믿음이다. 223-224p
얼마 전에 타계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 교수는 ‘공공선택이론’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이론은 정치가나 관료들은 공익을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많은 경우 그들 역시 재선과 권력의 추구 때문에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게 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사적 이익의 극대화란 현재의 적자를 감내하더라도 자신에게 표를 던질 수 있는 유권자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사용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 가까울수록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의 비중이 현저하게 높아지는 것이다. 제임스 뷰캐넌 교수가 제시한 ‘적자 속의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이런 현상을 정확하게 말해주는데, 지금 선진국들이 처한 현실과 꼭 같다.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라면 점점 더 국가부채 규모를 키워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불황과 같이 단기적인 고통에 아우성을 치는 시민들과 언론의 목소리를 외면할 만큼 담력이 강한 정치인이나 관료는 사실상 찾기 힘들다. 그래서 미래에 부작용이 충분히 예상되더라도 단기적인 고통을 완화하는 경기부양책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국가부채가 누적되고, 풀린 돈 가운데 상당 부분은 낭비되고 만다. 281-282p
이런저런 좋은 내용을 많이 담았지만, 책의 서두에서도 경고(?)했듯이 아버지의 말이라 잔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구성이 몇 차례 반복이 되면서 술 취한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도 잠깐 들었다.
그래도 역시 얻을 것은 많다. 내가 거의 신봉하는 ‘극한까지 밀어붙이기’를 작가도 추구하고 있었다. 게임도 집중해야 재미있듯이 삶도 치열하게 집중할수록 재미있다는 것. 정말 집중하고 치열하게 매달리면 결과와 상관없이 즐거울 수 있다.
책임의 이야기도 좋았다. 부모의 사소한 행동으로 아이들을 망가뜨릴 수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그놈의 나쁜 친구 타령.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해서 학교에 불려온 부모가 가장 많이 하는 변명은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이다. 나는 이런 변명은 자식을 두 번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와 잘못에 책임을 지고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자녀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자녀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을 탓하며 면피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질 기회를 부모가 박탈해버리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이런 부모 옆에서 아이는 남을 탓하는 방법만을 배울 뿐이다. 200p
내 자식이 나쁜 친구를 사귀어서 물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우선 나쁜 친구를 사귄 것에서부터 내 자식의 잘못이 분명히 있는 거다. 나중에 나쁜 친구 탓을 하는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식새끼를 기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책은 고맙게도 완벽한 상태에서 시작을 하고 싶어하는 나를 혼내주었다. 위즈돔을 열어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조금 더 채워지면, 조금 더 준비가 되면 이라는 식으로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런 나를 정신차리게 해준 구절.
사람들이 하는 가장 흔한 오류는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준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서 오랫동안 구상한 전쟁계획조차 첫 총성이 울리는 순간 엉망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른 계획이나 준비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따라서 준비를 완벽하게 한 후에 시작하겠다는 생각은 실패를 반복하게 할 뿐이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일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그 일을 큰 덩어리로 정리하고 이를 잘게 나눈 다음, 쉽게 마무리할 수 있는 작은 조각부터 시작하면 된다. 37p
이번에 집에서 벤치프레스를 조립하면서 직접 느꼈다. 처음에는 못할 것 같고 막막했는데 그냥 바로 앞에 있는 일 하나씩 해결하다보니 완성이 되어있었다. 삶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봐야지!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좋기는 좋은데... 정도?
군대를 가지 않는 여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군대 생활 그리고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108. 웨스트포인트처럼 하라]에서 나왔던 육군 사관학교 이야기처럼 군대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얻어낼 수 있는 점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조금 더 원론적인 내용이다.
그러고서 제목을 다시 읽어보니 ‘군대를 가는 아들’이 아니라 ‘군대를 간 아들’이다. 아!! 군대를 가는 사람의 경우 조금 더 실제적인 조언이 필요할 수 있지만 군대를 이미 가 있는 사람은 이미 몸으로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있을 테니까. 구체적인 조언보다 마음을 움직이고, 또 저 안쪽에 숨어있는 진짜 고민타래를 풀어주는 것이 도움이 되겠구나!
군대를 다녀왔든 가야 되는 입장이든 또 군대를 보내는 부모 역시도 읽어볼만한 책이다. 군대를 단순히 시간 낭비로 만들지 않고 인생의 반석으로 만드는 것에 보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