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윌 슈발브 지음, 전행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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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다 읽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암투병하는 엄마와 아들 간의 북클럽’이라고 해서 나도 모르게 굉장히 어린, 나이가 많아도 청년 정도의 아들을 상상하고 읽었다. 그래서 반항기를 겪던 아이가 어머니의 질병을 알게 되고 서로 소통하고 알아가면서 성장해서 어머니를 떠나보낸다는 조금은 식상하면서도 따뜻한 그런 가족드라마가 펼쳐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어머니와 함께한 이 아니라 ‘엄마’라고 되어있어서 그랬던 걸까? 어쨌든 몇 장 읽기도 전에 그런 나의 짐작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모자의 북클럽은 단순히 좋은 글귀를 나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읽게 되지 않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또 가끔은 검색도 해보느라 읽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죽음’이었다. 암을 진단받은 후 치료를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아들의 관점에서 그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은 항상 내가 암환자하면 그리는 그런 모습들은 아니었다. 여전히 삶을 살아가고, 자신은 운이 좋다며 남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그녀는 정말 멋졌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액션물에 나오는 히어로처럼 무적은 아니다. 힘들어하고 약한 모습도 보이는 그녀인지라 더욱 더 마음이 갔고, 나도 이런 분을 알고 지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책으로라도 알게 되어서 기뻤다.

 인턴으로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죽음은 정말 도처에 널려있었다. 죽어가는 환자들도 많고, 실제로 죽음을 대하는 것도 너무나 흔해서 조금은 무뎌져버렸다.실제로 사망선고를 하기도 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내 손을 멈추면 그 생명이 끝나는 상황도 몇 번이나 있었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느꼈어야 하지만 오히려 나는 그렇게 죽음과 마주하고 나서도 바로 밀려들어오는 일더미 - 보통 그런 상황들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자연히 내 일을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기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 로 바로 눈을 돌리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무뎌졌다기 보다는 그렇게 일을 하기 위해서 죽음이라는 것에 더 일부러 무뎌지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책에서 나온 암을 대하는 의료진의 모습에서 반성을 많이 했었다. 사실 병원에 그런 암을 앓고 있는 분들이 오면, 사실 신참 의사는 약간 거북하다. 우리에 비해 병원 시스템에 대해서도 더 잘 알고, 병에 대해서도 더 잘 알고, 무엇보다 우리가 뭘 잘못하는 지 너무나도 잘 캐내는 불편한 존재다. 그래서 가능한 그들과의 접촉시간을 짧게 하려고 했고,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실제적으로 그 환자들의 주치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치료의 한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로서 조금은 더 사람으로 따뜻하게 대할 것을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없었던 나는 정말 이기적이었구나. 

미국드라마“하우스”의 윌슨은 환자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리면서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말에 나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대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환자의 이야기를 듣다가보니, 그런 일을 해내는 의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치료보다도 상대적 약자라고 느껴지는 환자에게는 의료진의 사소한 태도이고 환자의 바람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말기환자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소한 질환에서도 치료의 효과 여부도 중요하지만 의사의 태도에 대해서도 환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다시 한 번 반성.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은 사촌오빠와 아들을 잃은 숙모를 계속 떠올랐다. 죽음의 방식도 많이 달랐고 죽은 이도 달랐지만,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죽음이라 그랬던 것 같다. 작년 사촌오빠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죽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입원을 하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바로 떠났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딸도 두고 갔다. 사실 그냥 놀라고 안타깝다는 마음은 있었는데, 얼마 전 까지도 크게 실감은 안 났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사촌오빠의 동생이 결혼을 하는데, 그 때야 왔다. 아, 이제 오빠는 정말 없구나. 나 말고 친척들도 다들 오빠를 떠올렸다. 특히 장남을 먼저 보낸 숙모는 차남의 결혼식으로 기쁘면서도 중간중간 눈가에 슬픔이 가득 차보였다. 폐백이 진행되면서 잠깐 밖에 나와서 쉬고 있는 숙모에게 다가갔지만, 친척들 아무도 오빠 이야기를 못했었던 것처럼, 나도 아무 말도 못하고 옆에 앉아서 손을 잡아드리는 것 밖에 못했다. 그 것 뿐이었는데도 숙모는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끝까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손만 더 꽉 잡고 안아드렸다. 이 책에서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어떻게든 그런 마음을 표현하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무슨 말이라도 건네는 것이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더라도 결국에는 입을 떼지 못할 것 같다.

 

 그 외에도 항암치료 받는 모습들을 읽으면서 영화 50/50에서 조셉 고든-래빗이 삭발하는 장면이나 토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잔잔하면서도 항암치료의 이야기를 잘 그려낸 멋진 영화였다.

 또 내 자신이 죽음에 가장 가까웠던 순간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에이즈 환자의 채혈을 한 후 정리하던 과정에서 그 바늘에 내가 찔렸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던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후 3주간 예방적 효과가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은 약을 먹으면서 토하고 설사하고 먹을 것을 입에 대고 싶지 않지만 그대로 약을 먹으면 더 아플 것을 알기에 대충 입에 쑤셔 넣었다.그 와중에도 환자는 밀려들고 일은 해야 했다. 환자들을 보다가도 내가 이제 입장이 바꿀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약은 먹으면 먹을수록 위장관을 다 헐게 만들어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져서 혹시 감염되었다는 판정이 나도 그냥 약 먹지 말까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항바이러스제제가 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확실히 먹는 것은 정말 다르더라.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0.3%라는 확률을 무사히 지났다. 물론 검사 받으러가기 전날은 잠도 안 오고, 연애라도 해볼 걸 하는 후회도 했고, 검사 결과를 들으면 그 이후로 내 삶이 완전히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과를 그 이후 3개월 동안이나 확인하지 못하긴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잠깐 지나가는 이벤트였을 뿐.

 이 책에서 죽음이외에도 봉사나 종교, 그리고 자녀의 양육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특히 죽음에 다가서면서도 남을 위한 봉사에 계속 힘을 쓴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봉사에 대해서도 새로이 생각하게 되었다. 충분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놓고 만다는 이야기. 딱 나였다. 이만큼 한다고 변하는 것도 없을 거야라는 핑계로 봉사를 미뤄왔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사이트(http://www.1365.go.kr/)에 가입 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중. 조금은 더 남을 도우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다시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니까 죽음이 저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생각만 했던 일을 실천에 옮겼다. 유언장 남기기. 글로 쓸까 하다가 녹음을 해보았다. 녹음을 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버렸다. 그렇지만 정말 남겨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기는 과정에서 더 열심히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주변 사람들과 세상 자체에 대해서 감사해야할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도 떠올릴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껄끄러워하고 피하고 싶어 한 나에게 죽음을 같이 들여다보면서 삶의 소중함, 내가 가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행운들을 알게 해주어 남들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 이 책. 이 책을 숙모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추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때 하지 못했던 말도 정성스레 적어서 함께 보내보려고 한다. 이 책의 작가에게도 그렇고 나에게도 그렇고 힘겹고 슬플 때 책이라는 것은 큰 위로를 주었으니까.


 그리고 책에게 모자간에 나눈 책들도 너무 끌리는 것들이 많았다. 이미 마음가는대로 사는 법은 주문했고, 그 외에도 안전함을 향하여,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 브랫 파라, 대륙의 이동, 파리 대왕, 마음, 다른 방, 다른 경이 속에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빅 머신 등. 하나씩 다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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