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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니까 참 좋다 ㅣ 마음별 그림책 9
오나리 유코 지음, 하타 고시로 그림, 황진희 옮김 / 나는별 / 2019년 7월
평점 :
요즘 가을 장마가 일찍 찾아오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계속 비가온다. 빨래는 꿉꿉한 냄새를 풍기고 온 집안이 습기를 머금어 후덥지근하고 눅눅한 공기가 집안 곳곳에 숨어든다. 이런 날은 쳐지기 쉽상이지만 든든한 그림책 한 권 들여 놓으니 비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오나리 유코가 짓고 하타고시로가 그림을 그린 책 <비오니까 참 좋다>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을 유쾌하게 그린 그림책으로 일본 그림책 전문 잡지 '모에'에서 11회때 대상을 받은 책이기도 하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노오란 우산을 들고 노오란 티셔츠를 입은 꼬마 아이가 마냥 행복해 보인다. 처음 표지를 본 순간부터 반했는데 우리 아이 비홍이도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책을 받은 날부터 꾸준히 읽어 달라며 들고온다.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지만 몇 번을 봐도 그림이 너무 이뻐 원서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찾아봤다.
그런데 원서의 제목이 '작달비' 즉 장대비라는 단어로 쓰였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바뀐 모양이다. 나는 원서 그대로 사용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비에도 종류가 참 많다. 이슬비, 보슬비, 부슬비, 소나기, 가랑비, 장맛비, 장대비 처럼 비가 내리는 모양에 따라서 달리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은 무덥고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에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작달비'를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차용한 "비오니까 참 좋다"라는 표현보다 한 여름의 느낌을 정확하게 살린 '작달비'가 더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귀여운 두 마리 생쥐가 숲속에서 빵을 굽는 이야기인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의 원제는 '구리와 구라'다.
처음에 원서를 찾으려고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로 검색이 안되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내 짧은 일본어 실력을 탓하며 아쉬워 하던 참에 도서관에서 <구리와 구라>라는 제목의 원서를 발견하고 정말 허탈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나라별로 같은 책이 제목을 달리해서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 어떤 부분에선 아쉽고 (작달비로 사용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어떤 부분에선 한결 좋았다(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어느 것이 더 좋았다 나빴다 할 순 없으니 때때로 원서도 찾아 비교해보는 즐거움도 그림책의 매력이려나?
▶내용은..
어느 무더운 여름 투덜거리며 현관을 나오는 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시커먼 구름이 몰려온다. 그리고 후두둑 비가 쏟아져 내리는데 장대비. 아이는 우산을 펴 쏟아지는 비 소리도 듣고 온몸으로 흠뻑 즐기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빵빵 터지는 구간이 생긴다. 둥둥 울리는 북처럼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를 제대로 따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다닥 우다닥'.'토다다다다 투다다다'' 또로롱, 차앙, 핑포로롱. 읽어주는 내 말투가 얼마나 웃긴지 읽다가 그만 빵빵 터져버린다.(이렇게 웃기기 있기~ 없기?)
엄청난 의성어 의태어가 방출되고 읽어주는 것만으로 벅차 헉헉댄다. 그 모습과 목소리가 웃긴지 연신 싱글벙글한 아이의 표정에 없던 개그 본능도 샘솟는다. 또 하나 엄청난 매력은 어마어마한 그림이다. 아이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져 내리는 풍경, 거리가 흠뻑 젖어드는 순간이 잘 묘사된 그림책이다.
그 중에서 내가 뽑은 그림 한토막은 바로 이 장면.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너무 잘 표현한 것 같다. 이 그림은 꼭 하늘 높이 들고서 누워서 읽어준다. 그러면 함께 보던 아이도 함께 누워 빗방울을 손으로 만져본다. 마치 자동차 유리창으로 떨어진 빗방울을 만지는 기분으로.
그리고 아이가 뽑은 명장면은 바로 이 그림인 듯 싶다.
아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지만 이 그림에 유독 밝고 오래오래 들여다 본다. 아주아주 흠뻑 젖고 있는 이 아이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이는데 그 마음이 전달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그림에 멈춰서 오래 더 오래 들여다 본다.
마침 장마철이라 땡큐!
아이와 비를 마음껏 만나려고 투명 우산까지 준비해 집 주변 공원으로 나갔다. 그런데 왠일. 억수로 쏟아지던 비가 소강 상태로 접어들더니 소나기처럼 잠깐 뿌리고 지나가는 수준. 좀 아쉬워지려던 찰라, 공원 잔디밭에 큰 웅덩이 를 발견한 우리는 큰 순서대로 아빠, 엄마, 아이 웅덩이란 이름을 붙여가며 신나게 놀았다. 참방참방 첨벙첨벙!
그런데 아이가 '웅덩이'와 '엉덩이'가 헷갈리나 보다. '웅덩이'라고 하면 자꾸 자기 '엉덩이'를 손으로 가리키니까(엄마 발음이 안 좋은 거야?). 뭐, 웅덩이면 어떻고 엉덩이면 어떤가. '덩이' 속에서 즐거우면 되지!
# 마지막으로 마음이 찡했던 장면...
그림 속에는 작달비에 신이 난 아이가 우산과 장화도 벗어버리고 신나게 노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비가 그치고 맨발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왜 우산하고 신발은 안 챙겨 가는 거야 라고 생각했다가 뒤표지를 보고 마음이 찡했다.
아이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던 거다.
'우산 안 쓰면 감기 걸려' ' 빗길에 미끄러지니까 뛰면 안 돼' 같은 잔소리 일절 없이 아이가 다 훌렁 벗어놓은 우산과 신발을 챙겨들고 한 템포 천천히 걸어가는 엄마의 저 걸음걸이. 나도 이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림책의 마지막 까지 시선을 놓지 못했던 정말 멋지고 좋은 그림책 한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