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 디지털 시대의 자기결정권
브리기테 비어만 외 지음, 김현정 옮김 / 책세상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은 <빅이슈코리아> 112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피로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몇 시간만 지나도 산처럼 쌓여있는 읽을거리들이 시끄럽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못지않은 정도로 불안했다. 끊지는 못했다. 다만 대폭 줄였다. 개인적인 SNS 활동의 짧은 역사다. 이후 몇 가지 괴담(에 가까운 뉴스들)이 전해졌다. 직원 채용 과정에서 SNS 검열 후 채용 결정을 취소한 회사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가 하면, 모바일 메신저 회사가 대화 기록을 검찰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이용자들이 대거 ‘사이버 망명’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랬다. 필요하다면 우리(가 자발적으로 남긴) SNS 기록은 우리에게 어떤 혐의를 씌우는 정보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디지털 세상에 속한 우리 모두의 위치다. 


디지털 정보에 관한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나. 포털에 검색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지우려면 얼마나 걸릴까? 한 시간? 하루? 글쎄. 담당자 찾는 데만 며칠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정보는 얼마든지 무한 복제되고 검색될 수 있다.

한 가지 상상을 더 해보자. 누군가가 포털에 공소시효, 살해방법, 연쇄살인범, 미제 살인사건 등을 검색했다. 그는 살인을 계획하는 예비 살인범일까? 그가 다만 추리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였다면? 혹시, 그 자신이 결백하기만 하면 된다고 순진하게 믿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부디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디지털 정보는 객관적이지 않다. 정보를 해석하는 인간이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이터는 우리에 대해서 우리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30쪽)다.

 

아마존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마약상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마약을 거래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존에서 미세저울, 작은 플라스틱 봉지 등 불법 마약거래를 위해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존은 특정 저울을 둘러보는 사람에게 마약거래 경험자들이 필요로 했던 다른 모든 물건도 제안한다.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100쪽)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의 저자 말테 슈피츠는 이동통신회사, 카드사, 공공기관, 여행사, 병원 등에서 부지불식간에 보관하고 있는 자신의 정보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결과는? 놀랍게도 이동통신회사가 보관하고 있는 최근 6개월의 사용기록은 3만 5,730 건에 달했다. 그 정보가 저자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엄청나게 정교한 자료라는 점은 부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비행 시 작성되는 승객예약정보에는 여권번호는 물론이고 15년도 넘은 비행기록, 그가 공항 검색대 어디에 줄을 섰는지, 어떤 직원이 저자를 검색했는지까지 모두 저장되어 있었다.

 

내 데이터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이 ‘탐험기’에서 저자는 종종 SF 소설에 등장할 법한 상상을 한다. 그 모든 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었기에 무척이나 섬뜩하다.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수사기법)’이 이미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 침실에서 회사까지 당신이 다니는 모든 곳에 함께 하는 휴대전화 하나만으로도 당신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얼마나 많은지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처럼 국가는 예비적으로 모두를 감시하고, 국민은 모두가 잠재적인 피의자가 된다. 디지털 세상에 무죄추정의 원칙은 없다. 과연 새로운 ‘빅브라더’가 감시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진보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개인은 그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의 저자 송명빈은 개인이 ‘잊혀질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삭제하려고 해도 삭제되지 않는 디지털 정보 앞에서 잊혀질 권리는 아주 협소한 한 줌 권리에 불과하다. 한 개인이 디지털 정보 삭제를 요구한다고 해서 순순히 들어줄 기업도 아니다. 대체 왜? 이 정보는 그대로 기업의 자산가치기 때문이다. 자산을 애써 삭제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세상은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에 열광하는 중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정보로 다루어질 것이다. 아기에게 입힌 옷이 아기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침대가 심장 기능을 점검하고, 변기가 소변 검사를 하는 세상이 곧 온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세상 아닌가!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의 문제의식에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이 자신의 디지털 정보를 통제할 수 없다면, 디지털 정보가 지금처럼 결코 소멸하지 않고 무한히 복제될 수 있다면, 디지털이라는 정글에서 개인은 무기력하게 대상화되고 말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트위터에서 내가 독감에 걸렸다거나 두통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거나 팔이 부러졌다는 등의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으로 전송되는 그러한 정보들은 언젠가 분명히 우리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테니까.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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