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모두 여덟 살이라는 시절을 분명히 지나왔는데, 어째서 여덟 살 아이의 머릿속은 이해되지 않는 걸까요? 어렸을 때는 그토록 '어른들은 몰라요'를 외쳐놓고 정작 크고 나니 '아이들 머릿속은 알 수 없다'고 하는 건 역시 인간이라는 얕은 이해와 자기 중심적 존재의 증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는 이럴 것이다'라고 하는 상식, 혹은 편견이 대체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심정으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생각해야겠다고 매일 새롭게 다짐하게 됩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 수지 아줌마까지도 테오의 머릿속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듯 테오 역시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테오의 눈에 엄마는 예쁘지만 불안하고, 아빠는 단순한 질문을 합니다. 사춘기 누나 역시 "엄마의 줄자를 허리에 두르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고요. 


이긴다는 게 어색하게 여겨질 만큼 지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실이 아닐까 봐, 금방이라도 꿈에서 깰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걸까? (25쪽)

테오는 그래서 어른들이 늘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늘 전투에서 집니다. 늘상 지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게 지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될까 두려워요. 테오가 바라는 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행복한 가족(27쪽)'인데 말이지요. 그러다 우연히 모든 전투에서 이겼다는, 한 번도 진 적 없다는 나폴레옹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거다! 테오는 나폴레옹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테오의 진정한 전투입니다. 


호기심 많고 철학적인(!) 여덟 살 테오가 나폴레옹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나폴레옹은 진즉 죽었거든요. 그럼 어떻게 만나야 하지? 여기에 이 소설의 매력이 있습니다. 

엉뚱한 소년 테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그동안 제가 알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집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 선문답을 늘어놓는 수지 아줌마, 무언가 알 것 같았지만 테오를 대실망으로 몰아넣은 화가 랭보까지 테오는 모두에게 영향 받고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그렇게 성장한 테오가 어떤 어른이 될까 너무 궁금할 정도로 말이에요. 원래 그런 것 같던 세상은 조금만 달리 보면 엄청나게 궁금한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테오 덕분에 알게 된 사실.


줄리아는 친구들이 자기 공책을 베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선생님 말씀을 잘 따랐으니 착한 아이일까? 아니면 친구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니 나쁜 아이일까? 또 수지 아줌마처럼 자기 자식이 아닌 다른 집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부가 돈을 벌어서 집에 보내면 착한 사람일까, 아니면 자기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니까 나쁜 사람일까? (40쪽)

테오는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마이너스 인간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죽기로 마음 먹은 것이죠. 죽는다 하더라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철학적 결론을 내립니다. 마이너스 개념을 테오에게 일깨워준 친구 시엔에게도 이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시엔은-우리처럼- 테오의 고백에 불안한 것 같지만 달리 말릴 수가 없습니다. 테오가 워낙 확고하니까요. 테오의 선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로 인해 닥칠 엄청난 결과도 무시무시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여덟 살 사람들의 대화에 감동 받은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이 아름다운 대화 내용 말이에요. 


-이해할 것 같아. 내 짝이 없어지면 슬프겠지만.

-그건 걱정 마. 내가 안 보이게 되면 널 만나러 교실로 올게. 네가 만든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니게 만들게. 그러면 내가 네 옆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 돼. (181쪽)

테오는 어떻게 될까요? 이 아이의 짧은 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 엄청난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까요? 사랑스러운 아이 테오가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혹시 발견하지 못한 테오가 주변에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테오 같은 아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테오 같은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구겨지지 않고, 세상을 더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이런 예쁜 마음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