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무지개 색이 일곱이 아니라 둘이면 어떨까? 흰색과 검정. 두 가지 색의 무지개라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채색의 띠가 하늘을 수놓는다 해도 조금도 감동적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흑백의 무지개는 아름답지 않아요. 흑백의 무지개는 무지개가 아니라 그냥 빛과 그림자로 흩어지는 말이 될겁니다. 우리가 무지개에 반한 이유는 다름 아닌 다채로운 빛깔 때문이었으니까요. 무지개는 그래서 아름답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빛을 내야 합니다.
사실 무지개는 일곱가지 색으로 정확히 나눌 수 있는 종류도 아닙니다. 경계에 있는 무수히 많은 색의 영역들을 외면할 수 없지요. 빨간빛인가 하면 어느새 노란빛을 띠었다가 푸르고 검푸른 색으로 흩어지는 나열이 놀랍고 감격스러워요. 경계를 구분지어 빨주노초파남보로 이름 붙인 것은 그저 우리의 편리에 불과합니다.
편리함은 상식에도 뿌리박힌 것 같습니다. 상식이 무엇인가요? '흔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 쯤 되려나요? 그게 정답인가요? 답답합니다. 자꾸 되묻고 싶습니다. 더 불편해지고 싶습니다. 우리네 상식이란 폭력에 얼마나 다양한 빛깔이 뭉개지고 있는지 생각하면 누구라도 지금 저처럼 상식에 불만하고 기존의 상식을 탓하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지금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국가 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곳곳에서 차별을 받고 있나요? 흑백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과 색이 같지 않다고, 너무 다양한 색이라고 차별 받는 소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들이 '비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당신은 정상인가요? 상식이니 정상이니 하는 것들은 어디서 비롯된 건가요?
<차이>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다. 차이에 의한 각각의 경험이 해당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고립시킬 수도 있지만 그들이 모이면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고, 그들의 투쟁은 서로를 단단하게 묶어 준다. 이례적인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오히려 완벽하게 정상인 것이 드물고 고독한 상태다. -23쪽
정상이니 비정상이니 해도 우리 모두는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하나쯤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이라 경험한 차별, 서울 출신이 아니라 경험한 차별, 정규직이 아니라 경험한 차별, 성인이 아니라 경험한 차별... 이 차별의 경험을 조금만 확대시켜 봅시다. 이주 노동자라 경험한 차별, 장애인이라 경험한 차별, 성소수자라 경험한 차별과 많이 다른가요? 놀랍도록 비슷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에게 똑같은 권리가 있습니다. 그가 듣지 못해서, 몸이 작아서, 게이라서, 염색체 이상이라서 권리를 박탈하거나 축소할 수는 없습니다. '완벽하게 정상인 것이 드물고 고독한 상태'라는 구절에 밑줄 그은 이유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이 결코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세상, 그게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선 이 세상입니다.
이 책은 그러나 그저 그런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좀 더 깊이 접근해요. 질병과 정체성을 구분하고 모호한 경계를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봅니다. 인권문제, 차별이나 국가폭력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고민해왔다고 생각했음에도 이 지점에서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식증 같은 질병(사망율이 높고 위험한 질병)을 '정체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흔히 얘기하는 장애, 그러니까 청각장애와 같은 경우에 대해서는 나름의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저는 이 차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지요. 심지어 거식증을 정체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단체도 있다고 하니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결국 책은 이토록 다양한 빛깔을 들여다보고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아 그들의 삶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해요. 편리에 의해 거칠게 구분지어 놓은 경계에도 무수히 넓은 스펙트럼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게이 부부의 트렌스젠더 자녀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 청각장애인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듣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식이라는 바보 같은 가면 뒤에 숨어 진짜 세상을 모르고 살게 마련입니다. 이런 목소리는 계속 나와야 하고 열심히 들어야 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발짝 씩 나아가야 합니다.
책은 질문합니다.
이 사회에서 소수자들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학적 진보가 장애를 제거하듯이 사회적 진보는 장애를 지닌 채 보다 수월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51쪽
사회적 진보를 기대하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