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천사란 꽤나 어려운 직업이로군요.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고, 끝없는 업무에 지칠대로 지치고, 마음 맞지 않는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사소하지만 중요해 보이는 사소하기만한 업무에 상처 받고 긴장하는 직장인... 이 아니라 천사들. 이들이 <천국주식회사>의 등장인물들입니다. 천사들의 모습이 놀랍도록 우리네 모습과 닮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천사.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있는 '하나님'은 또 얼마나 우리네 그들의 모습과 닮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니까요. 받아들이고 읽어야겠지요? 


이들의 '천국주식회사'는 몇 가지 규칙에 의해 운영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해야 하고 중력의 법칙과 시간 같은 중요한 기본 규칙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천사들은 화산 분출을 통제하고 물 관리를 하기도 하지만 주인공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기적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에요. 기적부의 업무는 가히 창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레이그는 그래서 이 일이 좋습니다. 작지만 어느 인간의 삶을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꾸어 줄 수 있는 자신의 업무를 사랑하지요. 


아직도 크레이그의 첫 기적이 기억난다. 크레이그는 48시간을 투자해 흰개미들이 널빤지를 파먹도록 하여 비실비실한 여자아이가 태권도 시범에서 그것을 깰 수 있게 해줬다. 아이가 때린 널빤지가 박살나자, 기적부가 있는 17층 전체에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83쪽

그는 기적부 안에서 인정받는 천사기도 해요. 그 사실이 짜릿하리만치 행복합니다. 크레이그는 이 일이 인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좋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의 일상이 엉망이고 연애 사업이 매번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크레이그는 그런 천사랍니다. 


문제는 하나님입니다. 그는 게으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일들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독교 방송이라든지 자신의 말을 세상에 전달하는 노숙자 라울과의 대화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가 신성에 둘러싸인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어요. 신은 지구와 인간들을 만들 때처럼 인간들을 사랑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이 사실에 경악합니다. 하지만 경악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요. 그들은 기적부의 업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천사들이잖아요. 열혈 신입 천사 일라이자는 직접 하나님을 찾아가 직언을 합니다. 

그런데 아니 이런, 하나님은 "그래? 역시 그렇지? 안 되겠어. 이제 지구를 없애자." 는 결론을 내립니다. 맙소사. 


이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할 일은 어느 허점 많고 게으르고 소심한 인간 둘을 엮어주는 일입니다. 그 인간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도 못한 채 여전히 소심함을 잃어버려선 안 되는 보물처럼 꼭 끌어안고 집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중에도 샘은 자신의 이불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편의점에 한 번 들른 걸 제외하면, 그는 3일 내내 집을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146쪽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짧은 시간 동안 로라는 벌써 8,000달러가 넘는 카드 빚을 졌다. (...)던킨 도넛에 매일 커피를 사러 가는 일을 제외하면 그녀가 아파트 방구석을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152쪽 

답답한 천사들. 회사의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기적을 일으킬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두 명의 사랑스러운 천사와 두 명의 사랑하고픈 인간. 이들의 고군분투가 <천국주식회사>입니다. 이 소설은 재치있고 유쾌합니다. 내용은 꽤 심각한데 유쾌해서 좀 혼란스럽기까지 하지요. 지구가 없어진다면? 신의 간단한 선택으로 지구에 꾸린 모든 인간들의 삶이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안하지 않아요. 천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신이 없어져도 상관 없다고 판단할만큼 하찮아보이는)우리 삶을 지키는 천사들이 있으니까요. 어쩌면 천국에는 정말로 신에 맞서 인간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크레이그와 일라이자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책을 덮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단 하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자체가 기적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 천사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은 인간들의 사랑에 비하면 별 것 아닐지도 몰라요. 천사들이 아무리 엄청난 노력을 들여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해도 각자의 마음이 그냥 구름처럼 지나갈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실제로 많은 순간 그렇게 천사들의 노력이 실패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결국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천국이 아니라 지구, 땅 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었어요.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바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런, 기적 말이에요. 

그러니 샘과 로라의 사랑이 지구를 지켜낸 엄청난 기적이라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그나저나 한 가지, '천국'이라면서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이라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는데요. 그건 그냥 천사 '크레이그'가 맡은 업무 탓이라고 해두면 어떨까요? 

크레이그 자신이 천국 안에서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너무 진지하게 따지진 말자고요! 


천국은 너무나 드넓었으나, 그중 아주 작은 구석탱이에서 그의 일생 전체를 보내고 있었다. -46쪽




 

그들의 손마디 뼈는 서로 손을 잡았을 때 불편하게 느끼게끔 배치되어 있었다. -137쪽


제가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알아요. 우리 천사 모두 그런 존재들이죠! 이 모든 게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저에게 의미가 있어요. 당신한테 의미 있는 건 도대체 뭐죠? -159쪽


그가 한 일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을 받는데도 여전히 그걸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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