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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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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은 어째서 이토록 짧은가...!

모르긴 몰라도 적지 않은 분들이 책을 덮으며 저와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이 확신에 찬 예감은 비단 이 책이 '쿤데라'의 책이기 때문일 뿐 아니라 좀 더 많은, 좀 더 계속되는 농담과 이야기를 원하게 되는 책읽기라는 점이 크게 한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들, 재기 넘치는 인물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농담과 '무의미'한 생각을 늘어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한없이 목마른 사막의 동물 같은 심정에서 책은 참으로 달콤하고 갈증나게 하는 애증의 소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두 등장인물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알랭. 그리고 다르델로.

 

알랭은 어머니와 배꼽에 대해 생각합니다. 태초부터 대를 이어 자라나는 거대한 나무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과쟁이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합니다. 살인자(알려지지 않은)와 어깨를 부딪히고도 일방적으로 사과하고 말았던 자신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는 사과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사과하려고 합니다.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58쪽

알랭의 태도는 어쩐지 소심해 보이기도 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알랭이 사색적이고 겸손하고 다정하며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랭의 사소한 것에 대한 중대한 고민, 또는 중대한 것에 대한 사소한 고민은 과연 '무의미의 축제'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다르델로. 자신도 모르게 제가 암에 걸렸다고 거짓말 해버리는 등장인물. 저는 이 다르델로가 참 흥미롭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상의 암이 그를 즐겁게 했(19~20쪽)'습니다. 거짓말 한 자신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는 웃었고, 좋은 기분을 만끽했(20쪽)'지요.

 

자기 거짓말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나 이상하게도 그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 19쪽

이 장면에 <무의미의 축제>를 관통하는 상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의미. 습관적으로 '의미'를 찾고 '의미 없음'을 경멸하는 분위기가 분명 우리에게 있지요. 그래서 밀란 쿤데라가 설파하는 '무의미'가 생경하기까지 한데요. 그러나 작가의 '무의미'는 단지 무(無)가 아닙니다.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 본의 아니게 주어진(!) 삶에 대한 적확한 태도를 고민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끝났다고 거짓말을 해놓고 웃고 좋은 기분을 느끼는 다르델로에게서 저는 이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조금 힌트를 얻은 것 같습니다.

 

<무의미의 축제><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에서 이어온 작가의 독특함과 큰 틀에서 연결됩니다.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말이죠. 그에게 농담은 큰 화두입니다. 소설 <농담>에서 주인공 루드빅이 던진 농담 한 마디는 그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버려요. 농담이 나비효과처럼 여러 의도를 뒤집습니다. <무의미의 축제>에서 작가는 다시 특유의 농담을 독자 앞에 내던졌습니다. 농담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무의미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의미에 몰두하는 우리가 과연 작가의 말을 따라 무의미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85세의 노작가가 전혀 힘을 잃지 않고 이런 소설을 써냈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쁩니다. 철학적이고 유려하고 경쾌한 문장들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여러 곳에서 이 책에 대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열혈 독자인 저는 여전히 다음 작품을 기대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강한 믿음으로 말이죠.

 

 

 

보잘것 없는 것의 가치를 그 사람은 전혀 몰랐고 지금도 몰라. - 25쪽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 96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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