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대선 결과가 나오고 며칠을 답답한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주변에 징징대다가 혼자 한숨 쉬다가 결국 할 말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글쎄요. 
다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답답함이 좀 덜 했을까? 하는 질문에는 쉽게 답 할 수 없습니다만.  아무튼 답답했고 힘들었습니다. 

그 후, 어쩌다가 박노자의 책을 꺼내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는 일종의 선언이 유혹적이었는지도요. 국가에 대한 원망, 존재 이유와 국가 기동 원리에 대한 회의 같은 것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나 봅니다. 
결과적으로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는 게 지금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국가폭력을 비판함과 동시에, 우리는 통상적으로 국가에 너무나 많은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우리가 강력하게 요구만 하면 국가가 비정규직 양산을 정지시킬 것이고, 반값 등록금 실천부터 시작해서 기초적인 복지망을 구축, 확대시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31~32쪽 


국가는 과연 우리를 위한 조직일까요? 
모든 국민의 이익을 위해 선의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이성적 합의체일까요? 

새로운 질문은 아닙니다. 
얼마 전 친구와 이 질문에 대해 짧은 토론을 벌였었죠. 친구는 '역사는 발전하고 있고 사회체제는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어요. 그런데 그 말이 저에게는 얼마나 '낭만적'으로 들렸는지 모릅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이 사회에 나타나는 몇 가지 징후들. 맑은 눈으로 그 징후들을 직시하고도 '합리적인 국가론'에 대해 주장할 수 있을까요? 


오늘자 뉴스 몇 꼭지를 담았습니다. 
합리적인 국가가 기능하고 있다고 믿기 힘든 징후들. 매일 보도되고 너무 많이 보도되어 별 것 아니게 느껴지는 이 뉴스들의 무게감이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 찰나의 사건들이 모두 발전적으로 해결되고 있나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가 합리적으로 국민을 보호하고 있나요? 아닌 것 같습니다. 


박노자는 일관되게 국가 체제가 기득권, 지배계층을 위해 작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책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충분한 역사적 근거들이 함께 담겨 있는데요. 지배계층의 '사무총국'으로서 국가를 명명하는 근거로 전쟁과 종교, 문화 영역까지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전쟁을 통해 국가(지배계층)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았고,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국가는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정의로운 전쟁' 운운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국가의 이득이 있으니 전쟁을 합니다. 전쟁에 동원되는 건 힘없는 피지배계층이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터에 나가 개죽음(!) 당하느니 가족들과 함께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국가는 그런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세뇌시킵니다. 전쟁영화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이야기를 담아 희생하는 개인을 순결한 영웅으로 만들어 대중을 호도합니다. 종교인들도 거들죠. 이 모든 일련의 과정으로 국가는 유지됩니다. 아, 정확히 말하면 국가의 지배계층이 안정적으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카르텔은 이제 너무나 공고합니다. 적극적으로 투쟁하지 않는 이상 국가 스스로 어떤 선의를 발휘하여 자연스럽게 권력을 이양하거나 나누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낭만적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제 원망스러울 지경입니다. 

이제 저에게는 개개인의 희생에 기대, 그야말로 역사에 무임승차한 우리 세대가 뒷세대에게 남겨줄 유산은 무엇이냐. 이런 질문이 남게 되었습니다. 

2013년 해가 밝았고, 앞으로 더 많은 분노의 나날이 되겠지요. 
부디 강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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