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연구 - 갈라디아서에 대한 성경신학적 해석 이신칭의 신학의 교회론적 이해
이재복 지음 / 칼빈아카데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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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는 기존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무척이나 급진적이고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이었다. 구원에 있어 율법의 준수, 인간의 행위를 중요시 했던 유대교의 관점에서 믿음과 복음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주장은 급진적이다 못해 폐기해야 할 거짓 주장이었다. 따라서 (열렬한 유대교 신자였,던 바울의 회심 전 관점에서 봤을 때) 그러한 주장을 하는 기독교인들은 질타의 대상을 넘어 몰아내야 할 악한 존재들로 여겨졌다. 유대교와 로마 카톨릭은 구원에 있어 인간의 행위를 강조한다. 하지만 구원에는 인간의 행위가 자리 할 곳이 전혀 없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구원을 뜻하는 '이신칭의'. 여기서 의롭게 된다는 말은 상태 자체가 의로워짐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법정적 용어로써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 하시는 것이다. 그 선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 값없이 거저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은혜가 얼마나 큰가! 이때 그 믿음 조차도 우리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감화를 통해 얻는 것이니 우리는 그 큰 은혜에 감사치 아니 할 수가 없다!

 

 '갈라디아서 연구'

 

 본서는 개신교의 핵심 교리인 '이신칭의'에 관한 연구를 담고 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신칭의'를 꽤 심도 있게 논의한다.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그 설명을 통해 율법과 복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어 갈라디아서 본문 분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와 '이신칭의'의 관련성 등을 설명한다. 그리고 교회의 기반이 되는 '이신칭의', '이신칭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교회의 관련성을 논의 함으로 '신자의 삶의 원리를 밝힌다.

 본서에 특기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먼저 갈라디아서의 저작 연대에 대한 저자의 확증을 들 수 있다. 갈라디아서의 저작 연대는 세 가지가 제시 되어 있다.

 

 ①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이 끝난 후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 전에 기록

 ② 2차 전도 여행 중에 기록

 ③ 3차 전도 여행 중에 마게도냐에서 기록

 

되었다는 견해가 제시 되어 있는데 저자는 가장 처음,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 전에 기록 되었다고 본다. 그 이유는 공의회 후에 기록 되었다면 '이신칭의' 사상은 바울 고유의 사상이 아니라, 사도들에게 전수 받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눈여겨 볼부분은 '이신칭의' 사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통상 '이신칭의'는 구원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개인 구원의 서정의 단계로 이해된다. 이러한 이해는 교회의 존립보다는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하지만 바울은 '이신칭의'를 교회의 존립과 밀접하게 연관 시킨다. 본서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갈라디아서를 예로 들면, 당시 갈라디아 지역 교회에는 율법을 통한 구원을 주장하는 유대인 교사들의 잘못된 주장이 퍼져 있었다. 이에 바울은 교회를 보호하고 바로 세우기 위하여 '이신칭의' 사상을 주장하며 교회를 보호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신칭의'에 대한 오늘날의 구원론적 이해와 적용은 물론 바른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한 일방의 이해와 적용은 바울이 원래 의도하였던, 바른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워나가려는 그 원칙과 적용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신칭의'를 단지 개인의 구원과만 연결시키는 좁은 이해와 적용을 넘어 바른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교회를 세워 나가는 좀더 넓은 이해와 적용으로 가져 갈 필요가 있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이신칭의'에 대한 분명하고 바른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신칭의'를 개인 구원과만 연결시키는 좁은 적용이 아니라 교회의 근간이 되는 그 사상의 배경을 선명히 알게 됨으로 그 사상을 통해 교회를 세워나가는 좀더 넓은 적용에로 나아가는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

 

 구원이 만약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희생은 전연 쓸모가 없는 헛된 희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구원이 만약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구원은 결코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희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귀한 희생인 것이다. 원은 결코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은혜는 한량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하는 '이신칭의'라는 그 사상. 신자와 교회의 구원과 존립의 기초가 되는 그 사상을 우리는 고이 간직하고 전하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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