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와 개혁교회
스티븐 E. 스몰맨.필립 라이켄 지음, 류근상 옮김 / 크리스챤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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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오명을 받고 있다. 교조주의자라거나 호전적이라거나 말이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성경을 충실히 정리 해놓은 교리와 신조와 고백서를 잘 지키고 가르치려다보니 교조주의자라는 오해를 받게 된다. 그리고 모든 칼빈주의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칼빈주의자가 호전적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교리 논쟁 시에는 이유를 막론하고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상은 분명 사실인 동시에 오해이기도 하다.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발생하게 되는 오해이다. 물론 그렇다고 칼빈주의자들이 계속적으로 교조주의자처럼 보이고, 호전적인자로 낙인 찍힌 채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칼빈주의자들은 그러한 오해를 받도록 원인을 제공한 잘못도 있기 때문에 그 오명을 벗도록 노력하고, 그외의 사람들은 칼빈주의자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칼빈주의와 개혁교회'

 

 본서는 칼빈주의를 오해하고 있는 이들은 오해를 풀도록,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이해를 돕는다. 1부 '누가 진정한 칼빈주의자인가?'에서는 칼빈주의자의 신앙, 경건한 삶의 방식과 모습은 어떠한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진정한 칼빈주의자는 편협하고 불친절한 태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는 관용의 자세를 견지하는 가장 훌륭한 신자가 되어야(8p)"함을 역설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친다. 하나님 중심적인 마음으로, 회개와 감사, 순종과 거룩한 생황 등이 삶에서 필요함을 말한다.

 2부 '무엇이 개혁교회이가?'에서는 칼빈주의, 개혁교회의 교리를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간단히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언약과 율법,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단명료한 설명을 통해 개혁교회의 특성과 그 방향을보여준다.

 이 책은 비록 얇고 작지만 내용은 꽤 알차다. 개혁교회의 유산과 특징을 잘 요약하고 있어 개혁교회 혹은 칼빈주의에 대한 소개서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주제를 쉽게 잘 다루고 있어 칼빈주의에 대해 잘 모르고, 그것을 오해 하고 있는 이에게 그 안내와 소개를 위한 책으로 삼기에 좋다. 물론 내용의 깊이가 깊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이해와 오해를 풀도록 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작점으로 삼기에는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많은 칼빈주의자들의 신학과 신앙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귀한 유산을 이용한 체계적인 배움을 통해 성경에 부합하는 좋은 신학을 정립하고 있지만, 신앙은 엉망인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여기서 신앙이 엉망이라는 것은 (칼빈주의자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숙해져가는 그리스도인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성령의 열매가 전혀 보이지 않는 칼빈주의자가 많다는 뜻이다. 온유와 겸손이 없고, 대신 거칠고 교만한 경우를 자주 본다. 물론 24시간, 365일, 항상 온유 하고 겸손한 모습이 보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성화 되어 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일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성숙하고, 거룩해져 가는 모습이 가끔이라도 보여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칼빈주의들에게서 그런 성화의 모습을 가끔이라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들의 신학은 어딘가 잘못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학은 교회, 신자의 신앙이 바르게 유지 되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신학이 신자의 신앙과 삶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그가 추구하는 신학이 잘못 되었거나, 그가 신학을 추구하는 목적은 신앙을 위한 게 아니라 다른데 있다는 말일 것이다.

 신학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도록 하고, 특히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방법과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법을 알려주는 데 있다. 따라서 진정한 칼빈주의자라면 그 신학의 존재 목적을 바르게 이해하고, 선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비록 경우에 따라 교조주의자와 호전적으로 보일지라도, 평소에는 그리스도를 더욱 닮기에 힘쓰므로 말미암아 누가 봐도 그 중심에 계신 그리스도가 보여지게 될 것이다. 제대로된 칼빈주의자라면 칼빈주의자라 자처하지만 과연 그게 사실인지 의심이 드는 어느 누구들처럼 신학과 신앙이 분리 된 게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 바른 신학으로 말미암아 그 신앙과 삶은 경건에 경건을 더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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