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이길상 옮김 / 복있는사람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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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 기독교 신학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다양한 신학사상이 출현했고, 몰락했다. 여러 신학사상들이 서로 대립과 반목을 반복했다. 이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
 19세기에 슐라이어미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 - 1834)는 성서비평을 발전시켜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의 탄생을 주도한다.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이성과 감정 및 경험 등을 강조하며 교회의 신학, 전통 등을 크게 변질시켰다. 이것은 온 유럽을 휩쓸었고, 19세기 중반에는 북미 대륙으로 침투한다.
 정통신학을 변질시킨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대로 미국 개신교회에서는 전통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 결과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 예수의 신성 등을 주장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가 등장했다. 전통을 지키기 위한 그 시도는 좋았으나, 근본주의자들은 극단으로 치우쳐서 개혁적 변화를 반대하고, 원리주의화, 정치화 되어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한편 1차 세계대전으로 신학 뿐만 아니라 철학 등에서 인간의 이성과 경험 등을 추구하는 낙관적 사조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칼 바르트(Karl Barth, 1886 - 1968)는 자유주의 신학, 다시 말해서 자연신학에 반대하며 신정통주의(Neo-orthodoxy)를 발전시킨다. 이는 정통주의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중심을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바르트의 노력은 계시를 강조하는 '말씀의 신학'으로 꽃을 피운다. 그러나 바르트는 한때 실존주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무엇보다 일반계시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시대의 요구는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옛사상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새사상이 탄생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교회의 권위를 반대하고, 과학이나 합리성을 강조하며 기계 문명과 도시 생활 등을 중시하는 (신학과는 거의 무관하지만) 모더니즘(Modernism)이 탄생한다. 다시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중반, 모더니즘에 반발하여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사상이 새로 전파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매우 포괄적인 사상이기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종교적인 특징만을 살펴본다면, 이것은 진리에 대한 반대를 주장한다. 즉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그것에 이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말한다. 이는 기독교의 절대 진리를 부정하며 다른 여러 종교를 포용하는 다원주의(Pluralism)의 한 양상이다.
 이러한 신학사의 틈바구니에서 눈여겨 볼 만 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 불리우는 신학운동이다. 복음주의는 하나의 뚜렷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고 다양성을 띄기에 한 번에 살펴보기는 힘들다. 어쨌든 이는 주로 종교개혁 전통과 17세기 청교도 운동 및 18세기 영국의 경건주의 운동과 미국의 대각성 운동 등에서 그 모체를 찾아 볼 수 있다. 20세기에 복음주의는 (위에서 가장 처음 이야기한)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며 기독교의 전통신앙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복음주의는 현재 진보적 움직임을 보이는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로 탈바꿈하였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이 책은 국내 외로 매우 유명한, 마지막 청교도이자 복음주의 설교자로 불리는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스(David Martyn Lloyd-Jones, 1899 - 1981) 목사가 쓴 책이다. 정확하게는 그가 1971년 국제 복음주의 학생회(IFES) 컨퍼런스에서 세 차례 강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로이드 존스는 복음주의의 최근(물론 1971년 당시)의 역사를 간략히 개관하고, 자유주의 신학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상황을 염려한다. 복음주의의 변질과 변화를 예고하고, 걱정한다. 이에 따라 그는 교회의 분열을 단호히 반대하고, 복음주의자들이 취해야 할 마땅한 자세를 가르친다. 또한 복음주의의 본질을 제시하며 그것을 붙들 것을 강조한다.
 로이드 존스가 강의한지 정확히 30년이 지났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의 메시지가 아직도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면 로이드 존스의 안목에 깊이가 있고, 그의 분별력이 참으로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같은 문제로 고민하며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아직도 같은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도리어 악화되고 확장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렇기에 로이드 존스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게 된다. 로이드 존스 만큼 깊은 혜안으로 바른 말을 하는 이가 적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는 다원주의 시대이다. 과장하여 말하면, 이 시대는 모든 것이 종교인 시대이다. 종교를 부인하는 무신론자들조차 일종의 종교성을 띄고 있다. 과학이 절대적 가치로 자리 잡은 지금, 그것을 신봉하는 이들은 부인을 하지만 과학에 대한 맹신은 또 다른 종교적 성향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은 극심한 혼돈의 시대이다. 기독교 일각에서는 연합을 주장한다. 겉보기에는 분명히 옳다. 그러나 단지 실리를 추구하는 것일 뿐 진지함이 없다. 성경을 중심으로 한 진정한 연합이 아니라 단지 야합에 불과하다. 다른 한쪽에서는 교회 및 기독교 단체가 내부적으로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스도인과 무신론자의 대립은 말할 것도 없다. 혼란이 극심하고, 분열이 반복되고 있다. 무엇 하나 정리가 안 되고 계속 어질러지기만 한다. 참으로 어수선한 시대이다. 
 이렇게 정신없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로이드 존스의 목소리를 빌리면 참된 복음주의자가 되어야 하고,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우선 무엇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윽고 이 시대 어딘가로 표류하여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이 오셨을 때, 그분을 못 알아보고 당신은 누구시냐며 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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