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죄악사 -상
조찬선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당연히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 지음 받고 종교가 생긴 것이지, 종교가 생기고 인간이 지음 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을 따름으로 그것이 종교가 된 것이지, 종교가 만들어지고 인간이 그것을 따르게 된 게 아닌 까닭이다. 

 세계 3대 종교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이다. 그리고 힌두교와 그 외에 소수 종교가 세계에 분포 되어 있다. 이들 종교 중 유독 눈에 띄는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일 것이다. 두 종교가 여러 종교 중 가장 많은 신자 수를 자랑하고 있고, 서로 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반목과 대립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종교는 내부적으로 여러 파로 나뉘어 있어 그들 간에도 오랜 기간 반목과 대립을 하고 있다는 게 눈에 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역사가 오랜 만큼 인류 문화와 기술 등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또한 많은 병폐를 낳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대립이자 병폐는 단연 십자군 전쟁 일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2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총 9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루었다.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약탈을 당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인간의 씻지 못할 과오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유럽을 지배한 기독교는 근현대사를 주름잡는 종교가 되었다. 기독교로 인해 문학과 문화에 발전을 이루었다. 기독교로 인해 노예해방, 노예제 폐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의 노예제는 기독교로 인해 발생한 것이니 그리 칭찬 할 만 한 일은 아니다. 아무튼 기독교는 인류 문명에 득과 실을 가져 왔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면만을 본다면 장점만 있는 종교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이 책은 기독교의 2천년 역사 동안 기독교가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을 고발한다. 기독교는 선의 종교라 스스로 부르짖지만 그 이면에는 매우 추악한 과거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알게 모르게 그것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의 그러한 일면을 모두에게 고발한다. 

 먼저 기독교 내에 만연된 잘못된 문제들을 지적한다. 성직자의 잘못 등을 고발한다. 그리고 선교 등으로 인한 기독교의 외적 잘못을 지적한다. 이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기독교로 인해 발생한 큰 사건들을 낱낱이 파헤치며 그 죄악상을 드러낸다.  

 이 책을 보면 기독교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생생히 알게 된다. 기독교가 저지른 죄들이 얼마나 크고 끔찍한지 비록 활자로 보지만 눈으로 보는 듯 생생히 느껴진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런 끔찍한 죄들을 저지를 수 있을까? 아니 인간은 죄의 유혹에 약하기에 그러한 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죄를 그리도 태연하게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 참으로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와 오늘 우리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단지 기독교의 죄악을 고발하기만 하려는 책이 아니다. "보아라, 선의 종교라 자칭하는 네가(기독교가) 이래도 선의 종교인가? 너는(기독교는) 위선의 종교이다!" 라고 꾸짖는 것을 목적으로 출간된 게 아니다. 기독교의 죄악을 고발하여 잘못을 꾸짖고, 그것을 통해 사죄와 용서를 얻어내기 위해 출간 되었다. 무엇보다 기독교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지난 과거의 과오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을 담고 출간 되었다. 앞으로 모든 종교가 합심하여 인류 평화를 이루길 바라며 출간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을 보고 단순히 분노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이 책의 목적에서 한참 빚나간 것이고, 평화와는 또다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좋은 의도로 출간 되었지만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목사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보면 그는 결코 목사가 아니다. 그는 확실히 삯꾼이요, 거짓 교사이다. 왜냐 하면 그의 구원관이 심각하게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구원관은 기독교의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만이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 등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종교가 아니다" - 상권 84p. 

라고 말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수차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에 대한 결론은 분명하다. 그는 기독교, 정확히 말하면 개신교 목사가 아니다. 그는 명백히 종교 다원주의자이다. 그가 말하는 인류의 평화와 공존공영은 단순히 휴머니즘적인 주장이지 기독교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도 인류의 평화를 원한다. 다만 그가 목사라면 목사다운, 목사의 관점에서 주장을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를 비롯해서 오늘날까지도 기독교가 자꾸만 죄악을 범하는 이유가 무언지 아는가? 그것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기독교에 속한 자들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자와 같이 자기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분명히 선의 종교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 하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하지 않으셨다. 이 세상에 전쟁과 기근이 그치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다만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다. 당신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셨다.  

 기독교로 인한 인류의 혼란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분께 온전히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신자들이 주님을 제대로 따른다면 인류에 혼란이 멎을까? 그렇지 않다. 기독교 신자가 주님을 제대로 따른다 하더라도 주님을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혼란이 발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참 구원의 종교로써 이 땅에 평화 곧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다른 이들을 전도하는 것이다. 온전히 믿는 신자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혼란이 멎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혼란이 그치지 않는 것은 기독교의 모든 신자들이 온전한 신자는 아니라는 반증이다.  

 온 종교가 저자의 주장대로 함께 공존공영을 위해 애써야 한다. 어느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종교에도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들은 참이 아니다. 오직 기독교의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만이 참이다. 다른 종교의 구원 방법을 통해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오직 기독교의 방법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그것을 명심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으로 포용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배타성을 버리고 말이다. 마음은 고자세 그러나 태도는 저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자신을 교만하고, 우월하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지키되 마음을 넓게 가지라는 말이다. 굽신거리라는 말이 아니다. 관용과 섬김을 보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것을 주장해야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간과했다. 아니 무시했다. 그의 눈이 먼 까닭일까?  

 기독교의 구원은 이 땅에서의 평화가 아니다. 물론 이 세상에 평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기독교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다가 다른 세상에서 영원한 안식, 진정한 구원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구원관은 그것을 무시한 채 단순히 이 땅에서의 구원으로 그친다. 저자가 주장하는 구원관을 보면 내세적 구원은 전혀 없고, 오로지 이 땅에서의 구원으로 그친다. 그것은 기독교의 구원관이 아니다. 기독교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기독교의 진정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확언하건데 그는 목사가 아니다. 단지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한 명의 선생일 뿐이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이 못내 아쉽고, 저자가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누구나 참으로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도 해당 된다. 기독교에도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지난날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이 그것이다. 그것이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것은 단순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사과와 용서를 빌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말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것이 된다. 그것이 기독교의 진정한 잘못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잘못인 것이다. 

 애초에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렀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기독교의 잘못으로 피해를 받은 이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러면 기독교는 하나님께 한 발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특징은 회개이다. 지금과 같이 그것을 무시한다면 언젠가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가 그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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