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거인 - 위대한 사람들의 숨겨진 멘토
권민 지음 / 해피니언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새벽 예찬론자들이 있다. 그래서 한 때 아침형 인간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유행을 하면 당연히 반대 세력이 나온다. 역시 아침형 인간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사람마다 성향과 생활 방식이 다른데 어떻게 그 모습을 획일화시킬 수 있느냐면서...
 어쨌든 두 언쟁은 참으로 무용하다. 어떤 사람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그날 하루를 계획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 날을 계획할테니 말이다. 각자에게 맞는 방식이 있고, 필요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알아서 적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책은 수많은 자기계발서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주장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인생의 자기 주도'이다. 즉 적극적으로 살라는 것이다.

 성공(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이란 별거없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남의 인생을 이렇게 함부로 단정 해서는 안 되지만,) 사람의 차이는 '자신의 인생을 능동적으로 이끌었는가? 수동적으로 이끌렸는가?'이다.
 그래서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그것을 부르짖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가려운 곳을 일시적으로 긁어주는 '효자손' 노릇밖에 하지 못한다. 책을 집어들기까지는 능동적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수동적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처지를 자위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이책은 스토리텔링형이다. 그만큼 읽기 쉬우나 책의 무게처럼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또한 다른 자기 계발서들과 뚜렷이 큰 차이는 없다.

 첫 장을 넘겼을 때 그 내용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하지만 '새벽 안내자'니 '새벽거인', '코엘의 숲'(이것은 어디서 차용한 것인지, 저자가 만든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이니 하는 의인화된 '가치 발견에 필요한 요소'(갑자기 보다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들이 나왔을 때 책을 덮고 싶었다.
 '무슨 동화도 아니고... 새벽을 깨우면 정말로 그런 (살아있는)존재들과 맞대면할 수 있는게 아니라, 단지 그것들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 뿐인데... 아무리 이해하기 쉽게 하려했어도 너무 미화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계발서들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화된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아무튼 이 책에서 주인공이 '자신만의 집과 정원을 얻고 가꾸는 것', 순서대로 '새벽나라의 안내자', '가치의 거인', '비전의 거인' 등을 만나는 것은 우리가 새벽거인이 되려면 거쳐야 할 일련의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우선은 (책에서의 표현대로)새벽을 깨워 자신을 만나기 위한 조용한 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곳으로 발을 내딛게 해줄 안내해 줄 인도자가 필요하며, 나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비전을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완성되면(물론 그것은 결코 영속적이지는 않다.) 마침내 그 모든 것들을 성찰할 수 있는 '성찰의 거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책에서와 같이 '자신의 집과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 안내자는 이렇게 말했다.
 '... 이 정원을 잘 가꾸세요. 이 정원은 당신이 하루만 가꾸지 않아도 벌레와 잡초가 무성해질 테니까요."
 그렇다. 새벽을 깨웠어도 그것을 유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단순히 새벽에 일어났다는 것만으로 가치와 비전을 얻지 못한다. 그 시간을 잘 가꿔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이 책(혹은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참에 도전해 봐야겠다 혹은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과연 그들 중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성공을 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단지 오늘도 신세 한탄을 하며 지난 날을 후회한다. 그리고 미래를 아름답게 꿈꾸며 자위한다. '그래 언젠가 되겠지...'
 계속 그런 식이라면 더 이상 이런류의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성공의 열쇠를 매우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얻을 의지가 없거나 단지 미몽으로 그 상태를 즐기는 것에 만족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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