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 여행자 오소희 산문집
오소희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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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년이 옥탑방을 터덜터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나는 벽장 속으로 몸을 숨길 것이다.
소년이 잠들면 벽장에서 빠져나와구멍 뚫린 구두 밑창을 기워줄 것이다.
그리고 소년이 계속 꿈꿀 수 있도록벽난로에 장작을 지펴주고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올 것이다.
너는 푹 자고 일어나 세상의 험지를 모두 걸으렴.
멈출 줄 모르는 네 가여운 발이가자는 대로 걸어가렴, 아이야.
꿈꾸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소년처럼,
나는어느 하룻밤쯤은.
별이 되고 달이 되어숨겨둔 마을의 미친 이야기 속을잊었던 속도로 거닐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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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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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 다시 읽어줄래?"
"어디? ‘현실하고 다른 일을 상상해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세요?‘ 이 부분?"
"그래, 그 부분"
나는 앤의 대사를 다시 읽어주었다. 선이는 꿈을 꾸는 듯한눈빛으로 말했다.
"어렸을 때 그 지하실에 동화책이 몇 권 있었다고 그랬잖아."
"그래, 네가 『빨간 머리 앤 얘기했던 거 기억나."
"방금 든 생각인데, 그때도 나는 좀 전에 네가 읽어준 부분을 참 좋아했어. 그후로 나도 앤처럼 늘 현실하고 다른 일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수는 없다고, 그럴 리는 없다고 말이야. 그 덕분에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몰라. 다시 들으니 참 좋네. 또 듣고 싶은데 괜찮아?"
"어디? 앤이 ‘마릴라 숙모님이라고 부르면 참 좋겠어요‘라고 하는 여기?"
"그래, 거기."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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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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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은 달라요.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정말 정말 드물어요. 비록 기계지만 민이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감각과 지각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어요. 고통도 느꼈지만 희망도 품었죠. 이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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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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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이의 세계관에서도 생에 대한 집착은 당연했다.
지금의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개별적인 의식을 갖고 있지만죽음 이후에는 우주정신으로 다시 통합된다. 개별성은 완전히사라지고 나와 너의 경계 자체도 무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선이에게도 이 생의 의미는 각별했다. 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니 너무나 짧은 이 찰나의 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고,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우치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선이에게는 그래서 모든 생명이 소중했다. 누구도 허망하게 죽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자신의 목숨도 헛되이 스러지지않도록 지켜내야 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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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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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자, 담을 넘자, 여러 의견이 나왔다. 다가올 죽음‘을 예감하고 기계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던 그 전투용 휴머노이드들의 모습에 강한 흥미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에너지가 바닥날 때가 되면 다급하게 충전을 원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에너지가 방전되면 먼저 움직임이 멈추고, 움직임이 오래 멈추면 몸속의 ‘대사‘도 중단되고, 곧 진짜 ‘죽음‘을 피할 수없게 된다. 따라서 이들이 에너지가 방전되는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필사적으로 충전할 곳을 찾아다니도록 만든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인간이 심한 굶주림이나 갈증으로 위기감을 느낄 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시야는 좁아지고, 마음은 급해지며, 극단적으로 이기적인행동을 한다. 언젠가 나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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