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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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남의 마음에는 사라지지 않는 방들이 있었다. 언제든 그 문을 열면 기남은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생생했다. 그 중식당의 냄새, 식기의 모양,
음식의 종류, 노인 옆에 있던 젊은 남자, 그러니까 노인의 아들이입었던 옷과 큰언니라는 사람의 표정까지도 기남은 살면서 수시로 그 문을 열었다. 문을 열 때마다 기억의 세부는 조금씩 사라져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의 통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문을 열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여전히.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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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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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야."
"응."
"너 힘든 거, 나 줘・・・・・・ 가지고 갈게."
그녀는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여기."
그는 그녀의 마음이 무슨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자기 손 위에 그녀의 이야기를 올려달라는 듯이.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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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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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웃으며 사무실을 나왔지만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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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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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희와 같이 일하게 되면서 그녀는 다희에 대한 우려가기우였다는 걸 조용히 깨달았다. 다희의 솔직함은 사람들에게 흠만 잡힐 경솔함이 아니었다. 솔직하되 스스로를 낮추는 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실수를 해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깨끗하게 사과할 뿐, 자학하듯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매사에 눈치를 보고 저자세로 일관해온 그녀에게 다희의 그런 태도는 그녀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스스로를 질책하고 과도하게 몰아세우던 자기의 모습을 그리고 이상하게도다희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자신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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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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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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