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그들의 행동 양식이, 그들의 어려움과 고민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라서요. 계속해서 현실의 저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요. 무엇이 정상일까요? 우리는 ‘다름‘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요? 다름 앞에서 여성 (엄마)에게는어떤 역할이 요구되는가요? 그것이 정당한가요?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며 그를 고립시키고 있진 않나요? 그것이야말로 폭력 아닌가요? 지금도 다섯째 아이는 계속 태어나고 있지 않나요? 우리는 다섯째 아이를 사회에서 어떻게 배제하고 있나요? 다섯째 아이는 가해자일까요? 피해자일까요?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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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 운명이 다른 사람에게 가면 우연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정답이 누군가에게는 불완전한 진실이 됩니다. 조가 열여덟 살의 도카스를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도, 도카스가 50대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도, 바이올렛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와 계속 사는 것도, 각자의 솔로 연주 안에서 비로소이해가 됩니다. 물론 독자인 우리가 동의하건 말건 소설 속 인물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아버리니, 우리는 꼼짝없이 그들의연주에 붙들려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지요.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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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알라딘에서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구입할 때, 


만 오천원이 넘지 않으면


정가 할인이 들어간 책들을 구입하곤 한다. 


가벼운 에세이나 웹툰이 주로 당첨되는데, 


스피츠 봄동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는 일상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따뜻하다. 


20260418


p.s : 오늘 날씨가 좋아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데 나른하게 잠이 온다. 이런 느낌도 좋다. 도서관에서 한 숨 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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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언젠간 죽습니다. 이 명제를 피해 갈 수 있는사람은 아무도 없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갑니다. 이 인생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건지 어떤 건지는 몰라도, 인간은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카뮈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이 삶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필연적으로 죽음 앞에서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죠. 인간의 기본 조건을 직시하는겁니다. 하지만 그는 무책임하게 허무로 빠지지 않습니다. 죽음으로 회피하지도 않고,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고통을, 죽음을 또렷하게 바라봅니다. 여기에서 인간에겐 기이한 형태의 ‘자유‘가 생깁니다. 어차피 유한한 인간의 삶이라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면, 오늘을 아낌없이 살아버릴 자유도 우리에겐 있으니까요. 내일에 대한 헛된 희망을 가지지도 않고, 지금이것이 나의 삶이며 나의 시간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순간순간의 주인이 되는 거죠.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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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글을 읽는 건 제게, 제안에 있는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물론 누군가에겐 자신의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이 힘겨운 일이 될 수있지요. 타인의 그림자를 묵묵히 지켜보는 것도 물론 힘겨운작업이고요. 하지만 밝아야 하고, 늘 바쁨을 강요받고, 욕망으로 들끓는 이 세계를 견디고 돌아와 한강 작가의 책을 펼치면,
그곳엔 늘 저의 깊은 우물이 있었지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나의 진짜 세계가 있다는 것에 그세계가 설명하기 힘든 나의 슬픔을 다 이해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한강 작가의 책 속에 깊이 스며 있는 고요가, 고통이, 각자 견디고 있는 무게가 위안이 되었던 것 같아요.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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