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제가 아는 건 한 가지뿐이에요. 지수 씨도 당신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지수 씨는 식물이 잘짜인 기계라는 사실을 자신에게 알려준 사람에 대해 제게 말해주곤 했어요. 정원에서 허공에 흩어지던 푸른빛을 지켜보던 지수 씨를 보면서, 저는 그렇게 한 사람의 평생을 사로잡는 기억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죠.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당신의 마음이 실제로 전부 유도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무엇도 지수 씨의 잘못을 해명해줄 수는 없어요. 어쨌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레이첼은 말없이 아영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눈빛이 슬퍼 보인다고 아영은 생각했다. - P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