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지는 담을 보며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싫었다. 담을 그렇게 쳐다보는 게. - P43
전구다. 나는 이 역시 단박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둠에 대해 자꾸 물었다. 나도 이모처럼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끈기 있게 대답을 해주던 이모는 결국 화를 냈고 나는 울었다. 울면서도 모르는 게 죄냐고 물었다. 이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있다고. 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이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대들었다.내가 지금 죽어버리면 그건 영영 모르는 게 되잖아!이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잠시 우리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아마 그때 이모와 나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생각. 우리에게 죽음이란 바로 할아버지. 이모는 한숨을 쉬며말을 말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을 하고 싶었다. 이모와말하는 게 나의 유일한 놀이이자 사랑표현이었으니까. - P23
나는 너를 먹을 거야.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따라 죽게 만들 거야.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살아남을 거야.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 P20
천년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때가 천년 후라면 좋겠다. - P7
사실 김신지라는 작가는 올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가 너무 좋아서 그녀의 전작 '평일도 인생이니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 이어 이 책까지 올해만 이 작가의 에세이를 4권 연달아 읽고 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 그녀가 했던 일들을 나도 기록해 놓고 따라하고 있는 중이다.
202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