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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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친구와 떨어져서 앉게 되었다. 나는우리가 지나는 역이 비르하켐역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친구에게 바로 문자를 보낸다.
‘지금이야. 창밖을 봐.‘
친구가 문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드는 바로 그 순간 지하철은 세느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건물들 사이에 가려졌던 에펠탑이 갑자기 탁 트인 세느강을 배경으로 튀어나온다. 빠르게달려나가던 모든 시간이 갑자기 느리게 흐른다. 매 순간이 분절되어 찬란하게 새겨진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몸서리를 친다. 그 장면에 이젠 친구의 표정까지 더해졌다. 친구의 저표정은, 진짜다. 이 아름다움은, 진짜다.
우리가 이 아름다움 속에, 같이, 있었다.
이 문장은 오래도록 믿기지 않을 것만 같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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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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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차,
치즈, 와인, 루콜라, 낯선 식재료, 공연, 미술관, 오래도록 원하던 걸 하나씩 이루는데 이상하게 기쁨이 지나간 자리엔 허무함이 자꾸 맴돌았다. 예상치 못한 방문객을 마주하고 앉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 저는 허무입니다. / 무슨 일이시냐고요.
/제가 왜 왔는지 모르시나요. / 난감하네요. 그쪽을 기대하지않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와버렸고, 그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 허무가 찾아오다니, 무슨 의미일까요. / 저는 텅 비었고,
그래서 허무입니다. / 왜 텅 비어 있나요. / 저는 텅 비어 있으므로 어떤 답도 없습니다. / ・・・・・・ 결국 스스로 답을 찾으란 이야기네요.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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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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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알았다. 똑같은 그림을 나에게 넣고 섞었는데, 슬픔이나왔던 시절이 있었고, 용기가 나오는 시절이 있다는 걸. 내가바뀐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이 바뀐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건 나의 색깔대로 살아버려도 된다는 용기였다. 좋은 롤모델이 없더라도, 좀 이상해 보이더라도, 내 마음의 방향대로 살아버리는 것. 스스로가 나의 롤모델이 되어버리는 것. 내가 긋고싶은 선을 긋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색을 칠하는 거다. 불안과 싸우며, 의심을 떨쳐내며, 계속 나아가는 거다.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시작된 거니까.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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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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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렇게 좋았을까. 또렷하게 말하긴 조금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그곳에 있는 나를 좋아했다.
처음 보는 그림에 그토록 마음을 내주고, 처음 알게 된 화가의전시실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 나를 좋아했다. 위로할 길 없는슬픔을 가진 조각상이 마음 쓰여서 퐁피두 센터 앞을 지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매번 다시 들어가는 나를, 찬찬한눈길로 그 조각상의 구석구석을 토닥이며 위로하는 나를 좋아했다. 모네의 그림도 좋아하고, 반 고흐의 그림에도 열광했지만 그 감정과 이 감정은 달랐다. 20대의 나는 유독 특정 슬픔에예민하게 반응했다. 토해내는 슬픔이 아니라 속으로 삼키고또 삼켜 내장이 너덜너덜해져 버린 슬픔을 잘 알아봤다. 그런슬픔이 퐁피두 센터에 있어 나는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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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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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엔 안도감부터 지나갔다. 다행이었다. 오래 걸려야만 했다. 쉽게 도착할 수 없어야만 했다. 쉽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파리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쉽게라니. 짧은 시간에 쉽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파리에 가지 못해 그토록 오래 방황했던 시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22년을 그리워하다 가는 곳이라면, 그에 합당한 시간을 써야만 했다. 티켓에는 ‘PARIS‘라는 지명이 무심하게 적혀 있었다. 이 무심한 도시를 나는 실향민처럼 오래도록그리워하고, 방금 실연당한 사람처럼 애틋하게 기억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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