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란 대학 시절엔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늘 누군가가 다녀왔더라는 유럽 배냥 여행이야기들. 부럽고 또 부러웠다. 어린 시절 동화와 소설, 그리고 역사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유럽을 늘 꿈 꾸었다. 특히 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로마는 늘 내게 그리운 도시였다. 특히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로마인들의 문화유적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긍지와 로마라는 도시 자체가 부러왔다. 물론 우리에게도 천년의 고도 경주가 있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생과 나는 둘이서 조용히 결심했다. 매년마다 해외여행을 떠나자고. 젊고 돈 벌때 떠날 수 있을때,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다니자-우리 두 자매의 모토라면 모토였다. 그리하여 첨 떠난 패키지는 이탈리아의 5대도시-이름만 늘어놓아도 녹아버릴 것 같은 ^^~밀라노, 로마, 피렌체, 폼페이, 쏘렌토, 베니스-와 프랑스 파리, 스위스의 융프라우를 다녀오는 9일간의 정말 빡신 일정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꿈꾸던 로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시끄러운 도시였지만 수많은 인파를 제외하면 멋진 곳이었다. 정말 시간이 멈춰진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하지만 인파에 치여서 애틋한 감정이고 머고 전혀 감상에 젖을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울뿐.. 이탈리아에서 예상외로 날 신세계로 이끌어준 건 옵션상품이었던 카프리섬이었다. 쏘렌토에서 배로 40분정도 걸려서 힘들게 찾아갔는데 그 보상을 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바다와 섬의 절벽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숨이 막힐 듯한 경치가 딱 들어맞을 정도로 너무너무 이뻐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실제로 울 동생은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한방울 ㅋㅋ- 맥주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설마 이탈리아의 섬이라니. 나의 무식함에 탄식이 절로..ㅎㅎ
지난 여름을 떠올리게 해준 책들이다.
읽은 순서대로 1. 김영하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2.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 3. 전망 좋은 방.
1. 별 넷
별 넷반을 주고 싶을 정도다. 이탈리아에 대한 내 그리움을 모조리 담아놓은 듯한 한 권의 책이다.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 출간되는 대다수의 여행 안내책자들, 혹은 여행안내를 겸한 간단한 기행문들-어디어디가 근사하더라, 어디어디의 식당이 맛있더라, 어디어디의 가게에서 쇼핑하면 멋진 아이템들을 살 수있더라 등등의 정보 위주의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기행문의 탈을 쓰고는 글보다 사진이 더 많고 저자가 겪은 일보다 현지 정보투성이인 책들을 아~~~~~~~~주 싫어한다. 때론 필요에 의해 사보기도 하지만 웬만해선 사지 않고 필요한 정보만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필요한 부분만 서점에서 서서 읽는다.
김영하의 이 책은 소설가 김영하, 그냥 한 개인이 여행을 떠나서 , 아니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여행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 고민들, 생각들 그리고 겪은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공감도 많이 가고 공인이 아니라 "김영하"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베스트셀러 소설가답게 그의 글은 읽기 쉬웠고 문장들도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다. 꾸밈없이 그의 생각들이 여기저기 늘어놓아져 있어서 참 좋았다. 나도 떠나고 싶다. 떠나서 이렇게 많은 걸 느끼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싶다. 이런 대리만족엔 안성맞춤인 책인듯.
떠나기를 꿈꾸는데 떠나지 못한다면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책의 앞부분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많은 것들 버렸다고 하지만 잃어버린 것은 없다고 말하는 저자. 참 멋있다.
어떻게 보면 본격적인 기행문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에세이에 가깝다. 그래도 인간 김영하를 느낄 수 있어 좋았고,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알고 있는 관광객의 나라 이탈리아가 아닌 소박하고 조용한 섬 시칠리아-이탈리아에서도 엄청 소도시이고 폐쇄적인-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2. 별 넷
무라카이 하루키는 내가 20대초반 몇 년 동안 열광했던 이름이다. 그 시절 그의 주요작품들을 다 읽었었다. 가장 유명한 상실의 시대부터 시작했다. 정말 잘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베스트셀러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댄스댄스댄스, 양의 모험 시리즈,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등..90년대 후반에 쓴 그의 책은 다 읽었다. 그러다 어느 날 질려서 -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마음에 안드는 구절이 있었던거 같다-그의 책을 읽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몇년 만에 빼든책이 먼 북소리다. 97년도에 첨 나왔지만(당시에 왜 이 책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도무지 스스로 이해가 가진 않지만) 별 눈길을 끌지 못했고 2004년도에 재출간되었다. 그런 책을 난 최근에서야 발견한 것!!
사실 굳이 찾아본 건 아니고 김영하의 책이 넘 좋았기 때문에, 여행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형편이어서 기행문코너를 기웃거리다 건진 책이다. 김영하책 옆의 옆의 옆쯤(?)에 진열되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싶진 않았지만 제목에 끌려서 읽었다. 오래된 책이고 10년전 이야긴데 현재 나에겐 딱 들어맞더라. 책속에서 주로 이탈리아 로마와 그리스를 오고 갔는데, 난 다음 여행지(올해 여름? 혹은 내년 여름?)를 그리스로 가려고 맘 먹었던 터라 그 쪽으로 기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는 로마 다음가는 나의 로망. 나의 대리만족은 100점 만점이었다.
중간중간 여행지랑은 전혀 상관없는 그의 이야기들도 괜찮았다. 이런 기행문들은 소설가들의 소설가가 아닌 부분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 난 솔직히 김영하의 이야기가 더 맘에 와 닿았다. 문장들도 그렇구.
오랜만에 읽는 하루키는 가볍고, 솔직했다. 특히 솔직함이 좋았다. 겨울의 그리스라니 참 생소하지만 그래도 난 아마 뜨거운 여름의 그리스만 체험할 테니, 내가 체험할 수 없는 그리스를 알게 해 줘서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 가슴속에도 지금 북소리가 둥둥 울려퍼지고 있다. 언젠가는 떠날 테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있는 중이다.
북소리야 울려 퍼져라.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도.
3. 별 셋
기행문에 이어서 누군가의 블로그에 로마로 여행을 떠나 두 남녀가 여행지에서 만나 사랑하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 소개에 낚였다. 열린 책들의 전망 좋은 방은 등고 다니기 좋은 사이즈라 좋았다.
유쾌하고 재밌는 로맨스 소설이다. 고전이라 하기엔 참 발랄하다. 우울한 날 읽기엔 딱 좋은 책인듯. 지하철 통근때 가지고 다니며 읽었는데 혼자서 키득키득하기를 여러번. 상상만 해도 즐겁다. 로마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거기다 그남자 밀어부치는 실력이 장난 아니다. 키스까지 당하는 여주.ㅋㅋ 여주는 미처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기한테 찾아온지도 모르고 그를 피해 다니기 바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고의 혹은 운명의 장난으로 다시 재회하게 되고..정말 뻔한 스토리이건만 포스터는 인물 하나하나에 강한 개성을 집어 넣어서 진부하지 않은 로맨스소설을 창조했다.
사랑하기 좋은 봄날. 읽자. 로맨스 소설을 ..ㅋㅋ
하나 아쉬운게 있다면 내 배경지식이 문제인지 중간중간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들이 더러 나와 있다는 것이다. 오역은 아니지만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서 쉽게 이해를 못해서 몇번이고 같은 문장을 되씹은 뒤에야 겨우 넘어간 문장들이 꽤 있었다. 처음 나오는 건물들이나 배경들은 역자 주를 달아서 설명을 좀 해줬으면 더 좋았을 듯.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떠나고 싶다. 그게 어디라도 좋지만 올해는 꼭 그리스로 가보고 싶은 소망이다. 여행으로 유럽 제패를 꿈꾸며..실천에 옮길 그 날까지 당분간 내 열병은 가라않지 않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