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선을 지나다 - 단편
한혜연 지음 / 시공사(만화)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연말이 다가오고 슬금슬금 또 유혹의 손길에 지고 만 건지, 마음의 양식을 위해서라고 나름 위로하면서 하나, 두 권씩 산 책들 중 가장 먼저 구입한 책. 역시 한예연님 단편은 좋다.  인상이 강렬하지 않지만 마음 한구석 은밀히 스며드는 만화 속 인물과의 동질감이 참으려 해도 헤집고 나오는 웃음처럼 내 마음도 잔잔히 울렸던 작품들이 두어편. 

 가장 인상이 남았던 작품은 "시안의 오후"-조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비유로 시작되는 이 단편은 조직속에서 조은 사람으로만 치부되고 평가되던 주인공이 자신을 이용한 이들에게 작은 되갚음을 함으로써 마치 조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그저그런 테마를 그렸나보다 싶었는데, 마지막 반전이 결코 단순치 않았다. 상처를 입는 쪽과 입히는 쪽 그리고 "마음의 상처"에 휘둘려서 보지 못했던 혹은 깨닫지 못한 진실들이 주위에 숨겨져 있다고나 할까. 은근 작은 충격을 주는 반전이 숨어있었서 였는지 인상에 남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개같은 날의 오후"-제목이 솔직히 가장 탁월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살 재수시절 찾았던 고시촌을 몇년이 지나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업공부를 위해 다시 돌아온 주인공. 참 오늘날 나의 모습이었고 우리의 모습이었다. 고백은 했지만 어정쩡하게 친구사이로 남는다거나, 짝사랑이라도 좋으니 얼굴이라도 보구 지내니 이걸로 된거야 하고 포기하거나, 매번마다 떨어지는 로또 당첨을 꿈꾸는 아버지나 늘 보는 일상들. 그래도 희망이 1%라도 있으니 그걸로 살아가는 게지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 어쩌다가 한번은 [엿같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의 이야기.

 사실 나온지 좀 된 단편인데도 구매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표지도 고급스럽고 무엇보다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어감이라고 하나, 자오선, 지나다 라는 두단어가 참 어울린다. 소리로 냈을 때 울려퍼지는 듯한 느낌이 좋아서 고심하면서 이 제목을 고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타이틀이었던 "자오선을 지나다"라는 단편. 이산의 아픔이나 우리네 현실을 그린 것은 좋았는데 왠지 와닿질 않았다. 주인공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상황을 좀 더 설득력있게 풀어나갔으면 더 공감할 수 있었을 텐테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 한 자락~ 

"어느 특별한 하루"라고 03년 작품인데 역시, 단편집이다. 역시 구할 수 없다. 품절도서 구하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초판 발매가 끝나고 나면 재판하지 않는게 순정만화계의 원칙 아닌 원칙이 되버린지도 오래. 좋아하는 책 좀 읽게 해주세요. 하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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