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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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을 양로원에서 보내고 싶어 하는 할머니, 채무자의 행정서류를 정리하여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일을 하는 아빠, 투자전문가였으나 지금은 뇌경색으로 몸이 살짝 불편한 삼촌, 다발경화증이라는 병을 앓으며 21살의 나이에도 기저귀를 차고 지내는 오빠, 입에 욕을 달고 사는 고3언니, 그리고 17세 여울이. 오빠, 언니, 여울이까지.. 모두 낳아준 엄마가 다르다. 여울이의 엄마는 유흥업소의 댄서였다고 한다. 여울이는 코스튬플레이에 빠져있다.


 코스프레 행사에 참가한 어느 날 40대 아줌마를 만나게 되고, 그 아줌마가 다음 행사에 하고나올 캐릭터인 미하일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권해 받게 된다.


 학교도서관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고 사랑이라는 답을 찾아낸 여울이는 그 결론에 반문을 갖게 된다. 사랑은 고사하고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집에서 가출만을 꿈꾸며 사는 여울이에게는 그 책이 주는 교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슬아슬 위태위태한 집은 결국 차압딱지가 붙고, 서로 으르렁대며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가족들은 나름대로 가족을 위하는 마음의 표현을 할 줄 몰라서 으르렁대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했었던 것이다.

 그런 집안에서 무슨 기대를 가지고 얼마나 잘 클 수 있겠냐.. 싶지만, 가출한 언니는 언니대로, 오빠는 오빠대로, 삼촌은 삼촌대로 꿈을 향해 나아가며, 집안 살림이 싫고, 무엇보다 어린 여울이 기저귀를 가느라 힘들어서 더 이상은 뒤치다꺼리하기 싫다던 할머니는 부산동생네에 내려가지 않고 여울이와 함께 지내기로 한다.

 어려운 환경으로 휴학을 하지만 여울이는 가족의 가장이 되어 다시 꿈을 꾸게 된다.


재혼으로 힘들어하는 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아이들, 혹은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에게 권한다.

 

 

사실 코스튬플레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건 사실이다 . 어떤 사람은 일본 문화를 생각 없이 따라 한다며 한심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놀이고, 예술이고,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다. 나 역시 코스에 빠진 게 자신감이 없는 내가 싫어서였다. 다른 캐릭터로 분장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면 또 다른 내가 된 것 같아 없던 자신감이 생긴다. 존재감 없던 내가 이곳에서는 관심을 받기도 하고 인기를 얻기도 한다. -p.47

 

정말 냉혈한이 따로 없다. 이런 집에서 더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집에서 견딘다고 누가 모범생이라고 추어올려 주지도 않을뿐더러, 나까지 사라져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스스로 알아서 일찍 독립하는 게 우리 집의 효도 방법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빠의 저런 태도는 부모로 서 있을 수 없다. 딸이 가출했는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아빠라는 위인밖에 없을 거다. - p. 97

 

“그게 말이야, 어른이 되면 얼마나 말이 늘어나는지 아니? 말이 잔뜩 늘어나서 자기가 내뱉는 말들에 발목을 잡혀 얽매이게 돼. 말을 통해서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그러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하지만 그 사람들도 알고 보면 마음 깊숙한 곳에 사랑이 숨겨져 있어.”- p.180


사실 아무리 미운 할매지만, 할매가 거두지 않았다면 나는 길바닥에 버려졌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할매가 세상을 뜨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늘 옆에 잔소리꾼으로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할매의 잔소리가 잠잠해지자, 왠지 더 불안하고 리듬이 깨진 것 같았다. 정말 묘하다. -p.185


구치소로 가는 길에 아빠에게 필요한 속옷과 세면도구, 그리고 큰마음 먹고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한 권 샀다. 아빠가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있듯이 아빠도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기대보다는 구치소에서 하루 종일 답답해할 아빠가 성질에 못 이겨 사람을 패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어 샀다.

며칠 만에 만난 아빠는 무척 수척해 보였고 면도를 하지 못해 수염이 거뭇거뭇 나 있었다. 아빠를 보니 긴장감으로 목이 잠기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빠가 민망해할 것  같아 내가 먼저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p.187


“내는 니 속 다 안다. 와 모르겠나! 니 에미라고 하룬들 속이 편했겠나. 니 속이나 니 에미 속이나 연탄처럼 시커멀 끼라는 거 다 안다. 다 팔자치레 하는 게지, 너나 니 에미나……. 울지 마라, 여울아. 니라고 만날 눈물 뺄 일만 있지는 않을 끼다. 세상에는 부모 없는 사람들도 억수루 많다 아이가. 사람마다 다 지 몫에 지고 갈 짐 보따리는 하나씩 지고 가는기 세상살이다.”-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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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9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조영학 옮김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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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트는 경찰에게는 취조전문가로 불리우나, 심문기술자 혹은 자백전문가로 불리기도 한다. 완벽한 시나리오로 무고한 사람을 사건의 용의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는 다양한 사건의 취조협조를 받게되며,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고나자 더욱더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야심을 드러낸다. 그러던 중 제이슨사건의 취조요청을 받으며 상원의원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말에 사건이 일어난 그 곳으로 향한다.


책상 두 개와 캐비닛 하나가 방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그건 용의자와 책상 양쪽에 거의 무릎을 맞댈 정도로 붙어 앉아 씨름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의도된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용의자를 끊임없이 갑갑하고 불안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좀 더 빡빡하게 만들기 위해 책상 하나를 더 넣었소.“

“완벽합니다.”

“주문대로 의자 하나를 다른 것보다 높은 것으로 했소, 물이나 다과가 필요하겠소?”

-중략

하지만 열 두살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기번스와 그가 한 약속을 떠올렸다. 자네가 필요한다면 뭐든 성심성의껏 도와줌세. 이는 그에게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원이 되어 줄 것이다.

“용의자를 데려오시죠.”

그가 말했다.-p.75~p.76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무고한 아이를 용의자로 만들어 가는 순간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녹음기와 아이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는 공간뿐이였다.


그는 소년에게 자리를 권했다. 물론 아이가 낮은 의자를 찾아가도록 교묘히 이끌었다. 트렌트는 맞은편에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앉았다. 아직 우위를 드러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나, 나중에도 그의 우위는 잠재적으로만 표현될 것이다.

“제이슨, 우선 협조해 줘서 정말로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마.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불편하지 않게 끝내 주겠다. 멋진 정보를 기어해 내 끔찍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정말로 멋질 텐데 말이다.”

온화한 목소리에 할 말은 모두 담았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열심히 할게요.”

그의 첫 번째 말이다. 잘 절제된 목소리. 대답하기 전의 가벼운 호흡,. 두손이 조금 움직이긴 했으나 방어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그래, 믿는다.”

제이슨은 재빨리 방을 둘러보았다. 비로소 주변을 확인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사무실이 좁아서 미안하구나. 빈 방이 하나밖에 없다니 우리가 참아야지 어쩌겠니.”

‘우리’라는 단어는 아이가 이 상황에 함께 참여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는 파트너이자 같은 편이었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편안해졌는지 의자에 등을 기대기도 했다.

트렌드는 녹음 버튼에 손을 갖다 댔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대화를 녹음할 생각이야. 그래도 괜찮겠지, 제이슨?”

아이가 고갯짓으로 동의를 표했다.

트렌트는 소년의 선한 얼굴과 커다란 두 눈에 비친 순수함을 보았다. 정말로 순수한 걸까, 아니면 그것마저 가면인 걸까? 사람들의 가면을 감지해 벗겨 내는 것이 그의 임무다. 완전히 벗겨내지는 않더라도, 가면 아래 감춰진 악의 본성을 엿볼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 소년한테도 악마가 들어 있을까? 아니, 그 능력은 누구한테나 존재한다. 그는 칼시튼의 순수한 눈빛을 떠올렸다. 그 눈은 제이슨 도런트의 눈과 비슷했다.

트렌트는 우선 큰아버지같은 목소리를 사용하기로 했다.

“자 편안하게 가자, 제이슨. 더도 덜도 말고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해라. 우린 먼저 월요일 사건에 대해 얘기할 게다. 네가 무엇을 보고 기억하는지 말이야.”

 그는 의식적으로 ‘살인’이라는 단어를 피했다. 심문이 끝날 때까지 되도록 부담 없는 단어들만 사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제이슨의 이름을 지속적으로 불러 주는 것도 중요하다. 친밀감을 유지해주고 냉랭한 분위기를 풀어 주기 때문이다.

“기억은 이상한 거란다. 제이슨. 가끔 장난을 치기도 하지. 우리가 기억하거나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일들, 그리고 그 반대로 잊었거나 잊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다 그런거야. 우린 함께 그런 장난들을 파헤쳐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하려무나.”

“저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제이슨. 그냥 편하게 있으면 돼. 여긴 우리뿐이니까. 단둘뿐이지. 친구들하고 떨어져 혼자 있어도 괜찮지?”

이제 최초의 중요한 발걸음을 뗄 때가 되었다.

“ 내 말은, 네가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부를 수도 있단다. 변호사나 상담 선생님이라든지……. 아니면 어머니도 괜찮아.”

이 말의 목적은 소년을 고립시키고 변호사나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떼어 놓기 위한 것이다. 그건 처음부터 확실하게 해 두어야 했다. 또 아이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해치워야 했다. 물론 빼먹을 수는 없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카세트와 녹취록 모두. 기록으로 남지 않는 것은 트렌트의 세세한 몸짓들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불러들인가는 게 우스꽝스럽지 않느냐는 뜻의 어깨짓 같은 것. 어머니를 언급한 것도 의도적이었다. 아이의 미숙한 자존심을 건드려 어머니의 지원을 바란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수순이다. 결국 이런 요소들이 결합하면, 소년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뇨, 괜찮아요.”

확인 사살도 칠요하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하자. 어머니 안 모셔 와도 괜찮지?”

“예.”

“좋아, 제이슨. 계속할까? 우선, 네 소개를 조금 해 보겠니?”

“에.열두 살이지만 11월이면 열셋이 되요. 9월엔 중학교 2학년이 되고요.”

그러고는 끝이었다. 더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 거지?

“취미는?”

제이슨이 어깨짓을 했다.

“취미같은덴 별로 관심없어요. 가끔 책을 읽고, 인터넷 하고 이메일도 해요. 호주에 펜팔이 있는데 멜버른에 산댔어요.”

“인터넷 채팅방?”  “십대 채팅방이 있는데 전 그냥 듣기만, 아니 보기만 해요. 말 해 본적은 없어요.” “수줍어서? 그런거지?”그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런가 봐요.”“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니?”

-중략-

“어떤 종류의 책을 읽지?” 트렌트 형사가 물었다. 마치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냥 닥치는 대로요. 미스터리를 제일 좋아해요. 공포소설. 스티븐 킨. 공상 과학물.”

“그런 책들이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그러잖아?” “그냥 이갸기인걸로. 진짜가 아니에요.” “영화나 텔레비전은 어때? 그것도 폭력적인 장르를 좋아하니? 공포 영화 같은거?”

제이슨은 당혹스러웠다. 공포소설들을 좋아하기는 해도 눈에 불을 켜고 보는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질문은 왠지 그가 공포물에 환장한 놈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다른 소설과 영화도 좋아하는 걸로. 그러니까.「인디애나 존스」나「스타 워즈」같은 모험이야기 말이에요.”

트렌트는 더 질문하고 싶었다. 이 소년의 태도, 불안해하는 모습,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가거나 파을 긁는 행위. 그 모든 것이 그의 결백함과 당홈감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기록되는 건 폭력적인 영화와 소설들을 즐기는 취향뿐이었다. 나중에 그 얘기들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는 모르겠지만.p78-p84


순진한 아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들은 교활한 트렌트의 입을 거쳐나오면서 순식간에 아이는 용의자로 변하게 된다. 말이 얼마나 무섭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 ,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해 보자. 그 정도는 괜찮지?“

“예.”

제이슨이 동의했다. 마무리. 마무리를 잘하면 얼리셔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이 그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넌 얼리셔 바틀릿을 알고 있었다. 그애는 어린 소녀이고 너를 좋아했지. 똑똑한 아이라 게임에서 종종 너를 이기기도 했어. 창피를 주기도 했고.”

제이슨은 항변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이유는 몰라도 이 트렌트라는 형사는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사가 한 손을 들었다. 교통경찰처럼. 그러자 제이슨은 의자에 털퍼덕 주저않았다.

“너는 폭력적인 책을 즐겨 읽는다. 네가 언급한 책들과 영화들 얘기다. 이따금 현실과 상상의 차이가 불확실하다는 얘기도 했고, 공상을 즐긴다는 말도 했어.. 대개는 폭력적인 공상…….”

“하지만…”

다시 교통경찰의 동작.

“너는 얼리셔가 살해된 숲을 잘 알고 있어. 그 애를 살해하는 데 돌이 쓰였다는 말도 했지. 경찰이 그 정보를 공표한 적이 없는데도 돌이 살인 무기라고 말한거야., 맞지?”

“그래요. 하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 가장 큰 요소는 기회와 동기다, 제이슨. 그리고 넌 둘 다 갖고 있어.”

“동기요?”

“얼리셔가 너를 놀렸으니까, 너를 쪽팔리게 만들었으니까.”

“난 얼리셔를 좋아했어요. 그앤 한 번도….”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것도 증오하는 건 종이 한 장 차이다. 불꽃은 순식간에 타오를 수 있지. 제이슨,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 다른 사람들한테는 동기가 없어. 그날 오후에 네가 그 애하고 있었고, 그것도 단둘이….”

“단둘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건 이해할 수 있어. 그애를 다치게 하고 싶었던건 아니잖아. 그렇지?”

“예, 난…”

“그런 일은 늘 일어난단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고, 당황하고……. 그러면 모든 게  순간이지. 네가 원해서가 아니라 일이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야. 주변에 돌도 있었고…….”-p124-126


아이의 거짓자백을 받아낸 트렌트는 위풍당당하게 취조실을 빠져나오게 된다.


심리학 공부를 하며 취조기술자가 된 트렌트는 사회에 부적응하는 아이의 거짓자백을 받아내며 자신의 성공을 꿈꿨지만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그는 몰락하고, 거짓자백을 한 아이도 정신적 폭행을 당하게 되면서 함께 몰락해버리는 정말 무거운 내용의 책이였다.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불편했다. 아이의 한 마디 한마디를 자신이 필요한대로 해석하여 아이를 궁지에 몰아넣는 몰염치한 어른의 모습을 보며 사람의 야망이, 욕망이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느꼈다.


책 무게는 가벼우나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였고,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과 묘사가 잘 되어있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였다. 청소년 도서이지만, 청소년보다는 성인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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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소년 비룡소 걸작선 19
팜 무뇨스 라이언 지음, 피터 시스 그림, 송은주 옮김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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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적인 아버지와 따뜻한 새엄마와 같이 살았던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겨있다.  잔잔한 이야기는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를 펴기에 충분했고, 중간 중간 삽화 또한 글을 읽고 그리는 이미지와 비슷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에 좋았다.

 모든 사물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기 좋아하던 아이였던 네루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서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다.

 

초록잉크로 쓴 글을 더 좋아했다는 네루다. 

책도 희망의 색인 초록으로 활자는 프린트되었고, 자간의 간격이 넓어 공간이 많아 천천히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듯하다.


작가는 파블로 네루다의 어린시절 사건들의 기초에서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책에도 등장하는 담장 구멍을 통해 넘겨받은 양인형을 집에 불이 나서 잃어버리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양을 받았던 그 상황을 기억하고 그일에 관해 어린시절과 시라는 에세이를 쓰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에게 있어서 그 양 한 마리는 아주 위대한 사건중에 하나였을것이다.  “그 물물교환은 소중한 것을 깨우쳐 주었다. 그것은 모든 인류가 어떤식으로든 함께 라는 것이다. 언젠가 담장 곁에 솔방울을 놓아두었던 것처럼 그 후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감옥에 있거나, 사냥을 하거나, 홀로 있는 수많은 이들의 문 앞에 내 말들을 놓아 두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유년시절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혹은 유명한 시인의 유년생활이 궁금한 사람들, 상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면 좋겠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아이들이 천천히 읽히는 이 책의 묘미를 알아갈 때 쯤이면 한창 시끄러운 학교폭력 소리들은 조금 더 잠잠해지지 않을까? 

 

 

“비 때문에 지겨워서 다들 기분 전환할 거리가 필요했구나. 이 방안에서 오래 버텼다. 가자. 응접실에서 책을 읽어 줄게”

네프탈 리가 말했다.

“하, 하, 하지만 응접실에는 들어가면 아, 아, 안되잖아요.”

마마드레는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오늘은 괜찮아.”

마마드레와 올란도 삼촌이 핫초콜릿을 만들 동안, 네프탈리와 로리타, 심지어 로돌포까지 킬킬대며 방에서 응접실로 담요를 끌고 갔다.

 곧 모두 담요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듯한 음료를 홀짝거렸다. 마마드레가 책을 한 권 집어 들고는 목청을 가다듬고 읽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요정과 공주들의 나라로 빠져들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로리타는 뒤집어썻던 이불을 벗어 던지고는 벌떡 일어나 응접실을 깡충대며 빙빙 돌았다.

“난 공주야! 공주라고!”

로돌포가 놀렸다.

“넌 전혀 공주처럼 안 보이는데.”

올란도 삼촌이 마마드레를 쳐다보았다.

“맞아, 그렇게는 안 보여, 우리가 솜씨 좀 발휘해 볼까?”

마마드레는 생긋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참나무 띠에 청동 장식이 달린 큼지막한 트렁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무도 트렁크 속에 뭐가 들었는지 본 적이 없었다. 네프탈리가 형 쪽을 보자, 로돌포는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로리타는 기대에 가득 차서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마마드레가 둥그렇게 굽은 묵직한 뚜껑을 들어 올렸다. 네프탈리는 곰팡이 슨 옷과 삼나무 냄새에 이끌려 더 바짝 다가갔다.

 마마드레는 고이 접은 드레스, 양모 외투, 털모자를 꺼내어 네프탈리에게 건네주었다.그러고는 더 깊숙한 곳에서 레이스 페티코트와 얇은 스카프를 찾아냈다. 로리타가 잽싸게 옷 위에 페티코트를 걸쳤다. 마마드레는 다시 뒤적거리더니 기타를 꺼냈다. 올란도 삼촌이 그것을 가져다 줄을 조이며 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마마드레는 정장용 모자를 찾아내 로돌포에게 주었다. 마마드레가 로리타의 스카프를 매어 주는 사이 네프탈리는 트렁크 쪽으로 다가갔다. 뚜껑너머로 엿보니 바닥에 공단 리본으로 묶은 편지와 엽서 꾸러미가 보였다. 얼마나 많은 낱말들이 그 안에 간직되어 있을까?

 네프탈리는 몸을 기울여, 손을 뻗어, 꾸러미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만 트렁크 안으로 거꾸러지고 말았다.

마마드레가 몸을 홱 돌렸다.

“네프탈리!”

트렁크 밑바닥에서 목이 막힌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예요.”

올란도 삼촌이 네프탈리를 들어 올려 소파에 앉혔을 때도 그는 여전히 손에서 꾸러미를 놓지 않았다. 편지는 죄다 가장자리가 뜯긴 데다 봉투 입구는 밀랍으로 봉해진 하트 모양의 도장이 찍힌 상태였다. 맨 위의 편지에는 봉인에 ‘사랑’이라는 낱말이 적혀 있었다.

 마마드레는 네프탈리의 손에서 꾸러미를 빼앗아 안에 도로 넣고는 트렁크를 조심스럽게 닫았다.

“네프탈리, 뚜껑이 네 머리 위로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니. 손 위에 떨어졌다든가. 게다가 뭐 때문에?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친척들한테서 온 낡은 편지와 카드 때문에 말이냐? 다시는 이 트렁크를 열어 보지 않겠다고 약속하렴!”

네프탈리는 아쉬운 눈길로 꾸러미를 쳐다 보았다.

“야,야,약속할게요.”

그때 올란도 삼촌이 기타를 가볍게 퉁겼다.

“네프탈리, 이리 와서 내 옆에 서 보렴. 파트너로서 어떻게 진행했으면 좋겠니?”

네프탈 리가 고개를 들었다.

“노,노,노래 말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내 감정이지.”

삼촌은 한쪽 발을 의자 위에 올리고 기타를 무릎에 놓았다.

“로돌포, 우리를 위해 노래 한 곡 불러 주겠니? 우리 집안에서 너만큼 노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잖냐.”

삼촌이 연주를 시작했다.

로돌포는 머뭇거리며 정말 불러도 괜찮은지 마마드레와 올란도 삼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여기 안 계시잖니, 로돌포. 나를 위해 한 곡 불러 다오.”

로돌포가 마마드레를 다시 돌아보았다.

마마드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략.

네프탈리는 로돌포나 로리타가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마마드레가 크게 웃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지가 언제인지도. 네프탈리는 이 들뜬 기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며 달려가 식구들을 얼싸안았다.

 그러나 너무나도 빨리 마마드레의 몸이 굳어졌다. 마마드레는 한 손을 들고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다들 마마드레와 함께 귀를 기울인 채 말이 없었다. 과연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한 기차기적 소리였다. 매일 몇 대의 기차가 테무코를 통과해 지나가든, 마마드레는 항상 아버지의 기차 소리를 가려냈다. 마마들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네프탈리는 로돌포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마마드레가 입을 열였다.

“걱정하지 말렴. 아직 기차가 가까이 오진 않았어. 자, 어서…….”

모두 서두르기 시작했다. 로돌포와 올란도 삼촌은 트렁크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로리타는 컵과 컵 받침을 황급히 그러모았다. 하지만 손이 너무 떨려서 컵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려 깨고 말았다. 로리타가 울기 시작했다.

네프탈리는 동생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로리타. 침실에 담요를 도로 가,가,갖다 놔. 깨진 건 내가 치울게.”

로리타가 눈을 크게 뜨고 코를 훌쩍였다.

“하지만, 하지만…….”

“아버지가 눈치채시면 내가 깨뜨렸다고 말씀드릴게.”

네프탈 리가 동생을 달랬다.

로리타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다정하게 웃음 지어보이고는 담요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동안 마마드레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준비에 qkQKt다. 부엌에서 식탁보를 찾아 식당에 가져다 놓고, 찬장에서 촛대를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마마드레는 주도면밀하고 질서있게 말 한다미 없이 냅킨을 접고 유리잔과 접시를 놓았다.

 네프탈리는 컵과 컵 받침을 닦은 다음 로돌포와 올란도 삼촌에게 달려가 여분의 의자를 식탁으로 옮기는 것을 도왔다. 벌써부터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며 질문을 던질 어른들이 드려웠다.

“의,의, 의자는 몇 개나 놓아요?”

마마드레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적어도 열두 개는 있어야 해. 아버지는 그만한 손님들을 집으로 데려오지 못하면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이라도 데리고 와서 자리를 다 채울 테니까. 머리 빗으렴. 손도 씻고 나는 가서 따듯한 엠파나다(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나 야채를 넣고 구운 아르헨티나의 전통요리)랑 스테이크를 가져오마.”

네프탈리는 감자 파이와 양파를 잔뜩 얹은 스테이크를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그 음식들이 기차 기적 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을 덮쳐오는 기분을 채워 주기를 바랐다.

 네프탈리는 마마드레가 돌아서서 부엌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이제 마마드레의 얼굴은 핏기를 잃고 얼이 빠진 듯 보였다. 마마드레의 웃음과 반짝이던 눈망울과 발그스레하던 뺨은 어떻게 된 걸까? 마마드레는 그것들을 어디에다 묻어 버렸을까?

채 한 시간도 안 되어 아버지의 장화 소리가 마룻장을 쿵쿵 울렸다. 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버지 왔다!”

아버지는 기관사가 쓰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네프탈리, 로돌포, 로리타가 달려 나와 아버지 앞에 섰다. 아이들은 검사를 받기 위해 손을 쫙 펴서 내밀었다. 네프탈리의 손바닥은 있는 힘껏 박박 문지른 탓에 아직도 불그스레했다.

“이만하면 됐군.”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당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문이 다시 열리더니 남자들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철도 노동자, 가게 주인, 심지어 테무코에 하룻밤 들렀다가 초대를 받고 온 떠돌이 행상들까지 있었다.

아버지는 천장에서 술을 꺼내 따르고 모두에게 앉을 자리를 정해 주었다.-p6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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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6
로이스 로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비룡소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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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비밀이 없었다. 그건 지도자가 제안한 규칙 가운데 하나이며 마을 사람들 모두 그 제안에 찬성했다. 다른 고세서 온 사람들, 즉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비밀이 있는 곳에서 왔다. p36

 

기억의 전달자로 뉴베리 상과 보스턴 글로브 혼 북상을 수상하고 두 번째 SF소설 파랑채집가에 이은 로이스 로리의 세 번째 소설이다.

주인공인 맷티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숲속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을은 비밀이 없고, 아이들을 비롯한 마을 시민 모두가 읽고, 배우고 , 참여하고 서로 돌보며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마을로 들어온 새 사람들은 조언자, 보는자 등과 같은 이름을 얻게 되는데 맷티는 숲을 자유롭게 다니며 자신도 ‘메신저’라는 새 이름을 얻고 싶어한다.

맷티는 눈은 보이지 않지만 보는자라는 이름을 가진 아저씨와 함께 살고 있다. 맷티는 다른 곳에서 보는자의 딸을 만나 그 마을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이 곳에서 새 삶을 살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도자는 썰매를 타고 괴로운 삶을 살던 마을을 벗어나 이 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마을에는 각 지역에서 마을로 넘어오면서 역경을 넘긴 사람들의 유물을 전시하여 옛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할 새 고장을 일굴 수 있도록 박물관을 마련해 두었다. 가난과 고통에서 도망쳐 새로운 곳에 들어와 환대를 받으며 새로운 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던 그들이 거래장에서 은밀한 것들을 내놓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로 바꾼 뒤 마을 사람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다정하고 남편을 사랑하던 이웃아줌마는 장애인인 남편을 비웃고, 놀리는 행동을 취하며, 얼굴에 모반을 가지고 구부정한 외모와는 반대로 아이들을 사랑으로 교육하며 시를 외우던 조언자는 모반이 사라지고 단단한 외형을 갖고, 여인을 얻는 대신 난폭해지며 외부인들이 더 이상 마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벽을 세우려한다.

 

"그 애가 어땠는지는 나도 기억해요. 우리가 문을 닫는다면 더 이상 그 고생을 할 필요도 없을 거요! 맷티가 처음 왔을 때처럼, 도둑과 거지, 머리에 이가 그득한 애들 치다꺼리를 할 필요가 없는거죠.!"

 맷티는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에게 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이웃 아줌마가 아닌가! 넝마 차림의 맷티를 세워 놓고 치수를 잰 다음, 골무를 끼고 바느질을 시작했던 아줌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따. 그땐 바느질을 하면서도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기도 했건만.-p.117

 

그들은 무엇 때문에 적대적으로 변하였으며 넘치는 이기심으로 더 이상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숲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맷티는 메신저라는 새 이름을 얻을 수 있을까?

 

글은 sf소설답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보는자와 너머를 볼 수 있는 지도자, 손끝으로 자수를 놓아 미래를 예언하는 키라까지.. 글을 재미있게 읽히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읽을 수 있겠으나 중간 중간 자극적인 묘사로 인상이 써지기도 한다. 그리고 숲이 변하게 되는 이유와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살피며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글은 재미있게 읽히나 뒷심이 조금 부족하다. 하지만 긴 줄글을 읽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권하면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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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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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캐스린스토킷/문학동네/2011년08월29

★★★★★


표지에 ‘남부 짐 크로 법(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되었다) 모음’이라고 쓰여 있다.나는 사각거리는 표지를 넘긴다.

 책자는 남부의 여러 주에서 유색인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단순히 열거한 것이다. 나는 첫 페이지를 훑으며 이것이 왜 여기 있는지 의아해한다. 이 책자는 위협적이지도 않고 우호적이지도 않다. 그저 사실을 열거한 것이다.

누구도 흑인 남자가 입원한 병동이나 병실에서 백인 여자에게 간호를 요구할 수 없다.

 백인이 백인 이외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위법이다. 이 조항을 위반한 결혼은 무효다.

 유색인 이발사는 백인 여자나 소녀의 머리를 손질할 수 없다.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 간에는 책을 돌려 볼 수 없고, 처음 읽은 인종이 계속 본다.

우리를 갈라놓는 법이 얼마나 많은지 아연해져서 나는 총 스물 다섯 쪽 중 네 쪽을 내리 읽는다. 흑인과 백인은 분수도, 영화관도, 공중 화장실도, 야구장도, 전화박스도, 서커스도, 공유할 수 없다. 흑인은 나와 같은 약국에 가지 못하고 같은 창구에서 우표도 사지 못한다. 예전에 우리 가족이 콘스탄틴을 데리고 멤피스로 놀러가는 길에 고속도로가 거의 빗물에 잠겼는데도 호텔에서 콘스탄틴을 들이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쉬지 않고 곧장 차를 몰아야 했다. 아무도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우리 모두 이런 법의 존재를 알면서 이곳에 살아가지만, 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을 활자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간이식당, 주 박람회, 당구장, 병원.47조는 모순된 내용이라서 두 번 읽어야 했다.

위원회는 모든 유색 인종 맹인의 교육용으로 분리된 땅에 분리된 건물을 마련해야 한다.

- p.294

멀대같은 큰 키에 번번한 데이트 한 번 못해보고, 독립해서 삶을 영위할 나이인 24살에도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백인여자인 유지니아는 스키터라는 별명으로 등장한다. 결혼한 친구들과는 달리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뉴욕에 있는 하퍼&로에 지원서를 넣고 그 곳의 편집장에서 온 편지를 받고 난 뒤 눈길을 끌만한 내용으로 책을 쓰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에가 하는 일이라고는 연맹의 신문을 만드는 일, 지역신문사의 미스머나 라는 칼럼에 가사를 돕는 글을 쓰는게 전부였다. 미스머나 칼럼도 살림한 번 해보지 않은 그녀가 유색인가정부인 아이빌린의 도움으로 미스머나에게 보낸 편지에 답하는 것이 고작이다. 콘스탄틴이라는 흑인가정부와 유년시절을 보낸 스키터는 글의 주제를 ‘유색인 가정부가 백인가정에서 가정부일을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색인의 인터뷰를 모아서 글을 써보기로 하고 유색인 가정부인 아이빌린에게 조심스레 접근한다. 하지만 유색인들은 자신들이 받는 차별과 무자비함에 치를 떨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백인에게 꺼내기를 두려워하거나, 경멸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아이빌린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스키터에게 건네고 다음으로 잭슨에게 가장 말대답 잘하기로 유명한, 음식솜씨가 아주 빼어난 미니, 그리고 유색인이지만 대학까지 나온 율메이까지 동참하기로 한다.

미니는 잭슨에서 가장 요리솜씨가 좋은 가정부이다. 힐리어머니를 돌보며 그녀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돕지만, 어느날 갑자기 해고를 당했다. 알고 보니 힐리가 그녀를 해고하고, 물건을 훔쳐간다는 누명을 씌워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놨다. 그리고 힐리는 그녀에게 자신의 집에 와서 일하라 명령하지만 바른말잘하기로 자자한 그녀는 힐리의 말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에게 힐리는 자신이 다른 어디에도 고용되지 못하도록 이야기를 꾸민게 화가 나서 아주 통쾌한 방법으로 그녀를 골려준다. 그리고 아이빌린의 도움으로 잭슨에서 좀 떨어진 샐리아의 집에서 가정부일을 맡아보게 된다.  

샐리아는 결혼 후 잭슨으로 온 순진한 시골아가씨였다. 가정부를 구하려해도 번번히 실패, 여성연ㅁ맹에 가입해서 여러 가지 일을 도루여 해도 연맹의 회장인 힐리의 방해로 그녀는 집안에만 오도카니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미니가 가정부로 오면서 미니에게 요리를 배우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샐리아의 남편 조니는 힐리의 첫사랑이였다. 둘은 아주 오랫동안 교재를 하고 있었으나 조니가 대학을 다니면서 샐리아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힐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아간 그녀가 눈에 곱게 들어 올 리 없다. 자신들의 브런치 모임에도, 연맹에 들어오게도, 자선바자회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에도 조소를 띄며 그녀를 따돌리는데, 힐리가 하는 연맹의 일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자선바자회를 열어 아프리카 유색인을 돕는단다. 지금 자신의 집에 있는 혹은 동네에 있는 유색인들을 말로,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그녀가 하는 선행이 바로 유색인 돕기이다. 이 아이러니한 여자는 입으로 여러 사람을 못살게 군다. 율메이는 힐리의 가정부로 있었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그녀는 결혼후 가정부로 일하면서 쌍둥이 아들을 잘 키워 대학에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평생 일하며 모은 돈은 한 아이의 학비밖에 될 수 없었고, 그녀가 스키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인터뷰를 하기로 한 며칠 전에 교도소에 수감이 된다.. 아들의 입학금이 조금 모자란 그녀는 힐리에게 도움을 구했고, 힐리는 아주 모멸차게 거절한다. 율메이는 힐리의 루비반지를 훔쳐서 벌금으로 쌍둥이 학비를 모두 날리게 생겼고, 그 루비반지는 싸구려 석류석반지였다. 율메이의 수감으로 인해 유색인 가정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며 나섰고, 백인 여자와 유색인 가정부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라고 하지만, 글은 전혀 지루한 분위기가 없다. 오히려 조바심내어 읽다가,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아이빌린의 현명한 육아방법은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를 생각하게 하였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아이가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하는 그녀를 보면서 감탄했다. 옛날이야기..혹은 인종차별이 심했던 당시의 이야기.. 지금과는 다른이야기.. 하고 생각을 하게 했지만 읽다보면 지금도 다르지 않은 여전한, 방식만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전히 우린 우리도 유색인이면서 흑인에게 보이지 않는 희미한 선을 긋고 있으며, 백인, 벽안의 눈을 가진 금발의 머리를 보며 선망의 눈빛을 보내지 않는가……. 두 권의 책을 읽으며 1권에서 2권으로 넘어갈때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장이 빨리 넘어갔고 남은 책장이 줄어들면서는 현명한 아이빌린과 유쾌한 미니와 헤어지는 것이, 딸아이 같은 스키터와 아이빌린 없이  혼자 커야하는 미스 리폴트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책장을 일부러 천천히 넘겼다. 2012년 따뜻한 내용의 육아지침서를 잘 읽은 기분다. 


핵심은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무엇이 자라는지 우리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p.256


“꼬마아가씨도 예쁘지요.” “아이빌린은 왜 색깔이 있어요?” “하느님이 색깔을 넣어서 만들었으니까요.”내가 말한다.“ 다른 이유는 이 세상에 없지요.” “테일러 선생님이 유색인 아이들은 똑똑하지 않아서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못 다닌댔어요.”나는 조리대에서 돌아선다. 아이의 턱을 들고 우스꽝스럽게 자른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저도 멍청해 보여요?” “아니요.” 아이는 자기가 정말로 진심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듯 힘주어 속삭인다.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면 테일러 선생님은 어떻다는 말일까요?” 아이는 열심히 듣는 것처럼 눈을 깜박인다.

“테일러 선생님이 항상 옳지는 않지요.” 내가 말한다. 아이가 내 목을 끌어안고 말한다. “ 아이빌린이 테일러 선생님보다 더 잘 알아요.” 그 말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손에 든 잔이 넘친다.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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