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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남은 생을 양로원에서 보내고 싶어 하는 할머니, 채무자의 행정서류를 정리하여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일을 하는 아빠, 투자전문가였으나 지금은 뇌경색으로 몸이 살짝 불편한 삼촌, 다발경화증이라는 병을 앓으며 21살의 나이에도 기저귀를 차고 지내는 오빠, 입에 욕을 달고 사는 고3언니, 그리고 17세 여울이. 오빠, 언니, 여울이까지.. 모두 낳아준 엄마가 다르다. 여울이의 엄마는 유흥업소의 댄서였다고 한다. 여울이는 코스튬플레이에 빠져있다.
코스프레 행사에 참가한 어느 날 40대 아줌마를 만나게 되고, 그 아줌마가 다음 행사에 하고나올 캐릭터인 미하일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권해 받게 된다.
학교도서관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고 사랑이라는 답을 찾아낸 여울이는 그 결론에 반문을 갖게 된다. 사랑은 고사하고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집에서 가출만을 꿈꾸며 사는 여울이에게는 그 책이 주는 교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슬아슬 위태위태한 집은 결국 차압딱지가 붙고, 서로 으르렁대며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가족들은 나름대로 가족을 위하는 마음의 표현을 할 줄 몰라서 으르렁대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했었던 것이다.
그런 집안에서 무슨 기대를 가지고 얼마나 잘 클 수 있겠냐.. 싶지만, 가출한 언니는 언니대로, 오빠는 오빠대로, 삼촌은 삼촌대로 꿈을 향해 나아가며, 집안 살림이 싫고, 무엇보다 어린 여울이 기저귀를 가느라 힘들어서 더 이상은 뒤치다꺼리하기 싫다던 할머니는 부산동생네에 내려가지 않고 여울이와 함께 지내기로 한다.
어려운 환경으로 휴학을 하지만 여울이는 가족의 가장이 되어 다시 꿈을 꾸게 된다.
재혼으로 힘들어하는 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아이들, 혹은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에게 권한다.
사실 코스튬플레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건 사실이다 . 어떤 사람은 일본 문화를 생각 없이 따라 한다며 한심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놀이고, 예술이고,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다. 나 역시 코스에 빠진 게 자신감이 없는 내가 싫어서였다. 다른 캐릭터로 분장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면 또 다른 내가 된 것 같아 없던 자신감이 생긴다. 존재감 없던 내가 이곳에서는 관심을 받기도 하고 인기를 얻기도 한다. -p.47
정말 냉혈한이 따로 없다. 이런 집에서 더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집에서 견딘다고 누가 모범생이라고 추어올려 주지도 않을뿐더러, 나까지 사라져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스스로 알아서 일찍 독립하는 게 우리 집의 효도 방법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빠의 저런 태도는 부모로 서 있을 수 없다. 딸이 가출했는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아빠라는 위인밖에 없을 거다. - p. 97
“그게 말이야, 어른이 되면 얼마나 말이 늘어나는지 아니? 말이 잔뜩 늘어나서 자기가 내뱉는 말들에 발목을 잡혀 얽매이게 돼. 말을 통해서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그러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하지만 그 사람들도 알고 보면 마음 깊숙한 곳에 사랑이 숨겨져 있어.”- p.180
사실 아무리 미운 할매지만, 할매가 거두지 않았다면 나는 길바닥에 버려졌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할매가 세상을 뜨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늘 옆에 잔소리꾼으로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할매의 잔소리가 잠잠해지자, 왠지 더 불안하고 리듬이 깨진 것 같았다. 정말 묘하다. -p.185
구치소로 가는 길에 아빠에게 필요한 속옷과 세면도구, 그리고 큰마음 먹고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한 권 샀다. 아빠가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있듯이 아빠도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기대보다는 구치소에서 하루 종일 답답해할 아빠가 성질에 못 이겨 사람을 패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어 샀다.
며칠 만에 만난 아빠는 무척 수척해 보였고 면도를 하지 못해 수염이 거뭇거뭇 나 있었다. 아빠를 보니 긴장감으로 목이 잠기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빠가 민망해할 것 같아 내가 먼저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p.187
“내는 니 속 다 안다. 와 모르겠나! 니 에미라고 하룬들 속이 편했겠나. 니 속이나 니 에미 속이나 연탄처럼 시커멀 끼라는 거 다 안다. 다 팔자치레 하는 게지, 너나 니 에미나……. 울지 마라, 여울아. 니라고 만날 눈물 뺄 일만 있지는 않을 끼다. 세상에는 부모 없는 사람들도 억수루 많다 아이가. 사람마다 다 지 몫에 지고 갈 짐 보따리는 하나씩 지고 가는기 세상살이다.”-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