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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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예고 한다...라. 굉장히 섬뜩하다. 괴도 이십면상이나 괴도 뤼팽처럼 도둑질을 하겠다는 예고장은 애교로 보일 정도다. 살인이란 것은 그 자체로도 끔찍한데, 예고장을 보내 게임처럼 살인하겠다는 범인. 도대체 그의 머릿속은 어떤 것으로 채워져 있는 것일까. 살인자의 심리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태어나도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동기 정도는 우리의 이해 범위 안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에르큘 포와로에게 ABC로 부터 이상한 편지가 한 통 도착한다. 몇 월 몇 일, 어디를 주목하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속에는 악의가 흘러 넘친다. 영국 경찰을 비웃고, 에르큘 포와로를 시험에 들게 하겠다는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편지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그 편지는 진짜가 된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른 예고장이 도착하고, 그 편지의 내용은 악몽이 되어 되풀이된다.

A시에 사는 A씨, B시에 사는 B씨, C시에 사는 C씨. 이런 순서로 살인이 일어나지만 희생자들 사이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그저 이니셜에 맞춰 살인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도 모르고 범인만이 아는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일까. 포와로를 비웃는 범인에 맞서 포와로의 회색 뇌세포가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포와로와 헤이스팅스 팀은 홈즈와 왓슨을 떠올리게 하지만 포와로 쪽이 좀더 친근하다. 홈즈는 머릿속으로 생각해 한꺼번에 내뱉는 경향이 있어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포와로의 경우 관계자와의 수없이 많은 대화를 통해 범인의 정체와 범인의 동기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다른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은 포와로가 가진 장점 중의 하나이고,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ABC 살인 사건이라는 거창한 살인 방식과는 달리 범인의 동기는 별 것 아닌지는 몰라도,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사용한 트릭은 기발했다. 하지만 범인의 동기와 범행 뒤에 숨겨진 하나의 진실을 파헤쳐 단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는 포와로의 말이 더욱 기막히다. 핀은 핀꽂이에 있을 때 찾기 어려운 법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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