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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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중에 숙주의 뇌를 조종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들이 있다. 개미에 기생하는 기생동물은 자신의 숙주인 개미가 스스로 천적에게 잡아먹히도록 유도하여 번식의 목적을 달성한다. 꼽등이나 사마귀에 기생하는 연가시는 자신의 숙주를 물가로 가도록 유인하여 익사시킨 후 몸에서 빠져나온다. 생각만해도 참 끔찍하다. 문득 기시 유스케의 작품 하나가 떠오른다.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기 보다는 호러스럽다.

반면 최면술은 사람의 행동을 조종한다는 점에서는 이런 기생동물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호러라기 보다는 판타지스럽다. 물론 모든 사람이 최면술에 걸려드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최면술을 이용해 의식 깊은 곳에 봉인된 기억을 끄집어 내거나, 사람의 행동을 조종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최면술이 쓰이는 장면이 티비에 종종 나온다. 의식적으로 봉인한 기억을 끄집어 내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전생을 본다는 건 좀 거짓말같기도 하고 사람의 행동까지 조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는 여전히 의문이 많다. 뭐, 내가 실제로 최면술이란 걸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까. (사실, 별로 경험하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는 마음이 크지만)

왜 내가 갑자기 뜬금없이 최면술 이야기를 꺼낸 걸까. 이 소설은 최면술이란 것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 이거 네타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책 뒷페이지에서 이미 최면술과 연쇄살인이란 말이 나온기 때문에... 라고 해두자.

소설은 누군가의 죽음에 관한 신문 기사로 시작한다.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의 죽음의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젊은 여성이란 것 외에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죽음. 소년 마모루는 자신의 친척 아저씨가 택시 사고에 관련되어 구속된 후 이 사고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친척 아저씨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나중에는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마모루는 어떤 의미에서는 불행한 소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부정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유일한 가족이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고, 그후 이제 겨우 안정을 찾게 되나 싶었지만 자신을 돌봐주던 친척 아저씨가 사고에 휘말리게 되었으니까.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마모루는 자신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사건의 진상에 다가간다. 물론 누군가가 길나잡이 역할을 해주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마모루가 추적하는 진실은 어린 마모루가 감당하기엔 어려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마모루는 자신이 선택해야 할 길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에게 마술은 속삭였다. 네가 직접 심판자가 되라고.
소년에게 마술은 속삭였다. 네가 직접 심판자가 되라고.
그는 선택했다. 스스로 심판자가 되기로.
소년은 선택했다. 그와는 다른 길을.

이 작품 속에는 최면술을 이용한 사람의 행동 조종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서브리미널 광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이런 광고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눈으로는 감지하지는 못하지만 뇌가 감지해서 쇼핑 욕구를 부추긴다든지, 절도 행위를 막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두 가지가 실행되는 방법은 다르지만 어쨌거나 인간의 무의식을 건드린다는 건 비슷하다. 이러한 것들이 선한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악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더욱 더 큰 문제가 된다.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의 죄를 심판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법의 심판을 받는다. 그 판결을 내리는 건 인간이지만 법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늘 그 판결이 피해자나 희생자에게 만족을 주는 것도 아니요, 때로는 심판할 근거가 없어 그냥 묻혀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天網이 恢恢하야 疎而不漏니라(하늘의 그물이 넓고 넓어 보이지는 않으나 새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지만, 정말 그럴까 싶은 경우도 많다. 죄 지은 놈이 발뻗고 자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스스로 심판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누군가를 직접 심판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결국 스스로도 똑같은 범죄자가 될 뿐인데.

이 소설을 성장소설 코드로 읽는다면 분명 잔혹한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그 성장과정이 잔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비록 마모루가 힘겨운 일을 겪으며 성장하게 되지만 소년의 곁을 지켜주는 따스한 사람이 있기에 소년의 성장은 잔혹하지만은 않다. 조금 달리 보자면 이 소설에서 살해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면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또한 최면술이란 소재가 등장해 약간은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소설은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소설이다. 사건의 배경이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문제들이며 이런 사람들을 직접 심판하고자 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미여사의 필력이란 바로 이런 점들에 존재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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