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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사랑이야기
무라카미 사치 지음, 최수정 옮김 / 인디고 / 2011년 6월
평점 :
표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낯익다고 생각했더니 역시나! 단편집 『목요일의 연인』과『밤, 그대의 사랑을 알다』에 등장했던 인물이었군.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무라카미 사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슷비슷한 이미지이긴 하지만 말이지. 어쨌거나.
적당한 질투는 사랑의 양념
사랑을 하다 보면 웃기지도 않게 이상한 것에 질투를 느낄 때가 있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고, 혹은 무생물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 모두 질투의 대상이 되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질투란 건 적당하면 사랑의 약이 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되기도 하는 법.
디자이너인 아리마와 회사원인 사에키 커플은 알콩달콩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지만 그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옆집에 사는 다나카 (사에키의 전 남친)의 존재이다. 물론 대놓고 훼방을 놓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옆집에 산다는 이유가 두 사람을 신경쓰게 만드는 것이겠지. 지금까지는 무난하게 피해왔지만 옆집에 사는데 언제든 마주쳐도 이상할 건 없다. 게다가 벽이 얇아 옆집 소리가 잘 들린다면 더더욱 그렇겠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리마는 이사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사하고 같이 살자는 아리마의 말에 사에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도대체 왜?! 아직도 다나카가 신경쓰이는 걸까... 하고 속상한 아리마였으니.
아리마와 사에키 커플의 이야기를 보면 참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고, 별거 아닌 것에 질투를 한다, 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게 삼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그런 것이지 당사자라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오해할 만한 일도 여러가지 있으니 더욱 그렇겠지.
그럴 때 필요한 건 뭐? 당연히 대화다. 혼자 끙끙 앓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질투하고, 혼자 삐쳐봤자 남는 건 신경질과 불안이니까. 아리마와 사에키는 현명하게도 이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나간다.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하다고.
사랑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질투와 오해와 불안을 잘 다스린다면 그 사랑은 공고해질 것이고, 그러하지 못하다면 남는 건 이별뿐이다. 잘 했어, 두 사람.
날 이름으로 불러줘
같은 회사에 다니는 미나미와 키지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의외로 여러가지 면에서 잘 맞아 연인으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미나미는 늘 불안하다. 키지마가 자신을 떠날까 봐. 그런 상황에서 키지마의 고교 후배가 등장하니 그 불안은 더더욱 커지기만 한다.
인기남에다 이제껏 바람둥이로 살아온 키지마 같은 사람을 연인으로 둔다는 건 소심하고 걱정 많은 미나미 입장에선 무척 힘든 일이겠지. 하지만 문제는 미나미의 걱정이 너무 앞선다는 것.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두면 생각이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한없이 나쁜 쪽으로 기울어져 스스로 격침된다는 것이다.
키지마를 이름으로 부르는 키지마의 후배. 그리고 그가 목격한 장면. 미나미는 혼자서 별별 상상을 다하다가 결국 어떤 결심을 하게 되는데, 보는 나로서는 미나미의 걱정이 기우란 것을 알기에 큭큭하고 웃음이 나지만 너무나도 진지한 미나미를 보니 가엽기도 했다. 이런 타입은 사랑받고 있다는 걸 끊임없이 각인시켜줘야 하는 걸까?
약속
고교생인 아키라와 타츠미는 소꿉친구로 타츠미는 아키라에 대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어린 시절 아키라가 자신에게 했던 약속. 그건 타츠미만 기억하는 걸까.
우리는 약속을 하고도 그걸 수시로 잊고 사는데, 어린 시절의 약속까지 기억하는 타츠미를 보면 참 대단하다 싶다. 물론 그 약속이란 게 타츠미에게 매우 중요한 추억이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게 실현될지 아닐지는 시간이 흘러 봐야 아는 것이고, 아키라에게 그 약속을 할 당시의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도 미지수잖아? 때문에 타츠미가 그런 식으로 아키라와 거리를 두고 싶어한 것이겠지.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그저 곁에라도 있는 게 낫단 생각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이런 소꿉친구 설정을 읽다 보면 나에게도 멋지게 성장한 소꿉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멋지게'가 중요. 쿨럭)
남들에겐 최악이라도 내겐 최고
마지막에 수록된 이야기는 사에키의 전 남친이자, 아리마의 옆집 남자 다나카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남자 재수 없고 참 싫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이 있는 건 사실이다. 미즈사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니까.
첫만남부터 최악. 수시로 구박. 못된 말 내뱉기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다나카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게 되었군. 그러나 내 입장에선 하도 어이없어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던 다나카였다.
끝맺음
사랑을 하다 보면 오해도 생기고, 불안해 지기도 하고, 질투도 하는 등 별별 일이 다 생긴다. 하지만 혼자서 꽁하고 있다가는 스스로 격침될 수 있으니 적당히 하자. 그러면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을 터이니. (내 주제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웃기는군)